(사진=삼성자산운용) 지켜보는 이들에게 역전극은 언제나 짜릿합니다. 특히나 절대적 우위를 점하던 1위가 2위의 맹추격에 쫓기다 마침내 순위가 뒤집히는 상황은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점유율 격차 축소를 바라보는 업계 시각이 딱 그렇습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타이거(TIGER)’ 기세에 진땀 빼는 ‘코덱스(KODEX)’ 구도가 굳어진 순간부터 시장 일각에선 과연 ‘그 순간’이 언제쯤일까 궁금해하는 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봐도봐도 흥미로운 드라마는 최근 삼성운용이 점유율 40%를 마침내 내주면서 정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삼성운용은 채권형 ETF를 무기로 방어전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고독한 1위를 위협하는 건 비단 미래에셋만이 아닙니다. 중소형사들의 점유율 반등은 고전 중인 삼성운용에게 달갑지 않은 소식입니다. 어느새 100조원대까지 불어나며 자산운용사들의 주요 먹거리가 된 ETF 시장내 경쟁자들이 많아짐에 따라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운용 입장에서 되돌리고 싶을 아쉬운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삼성운용의 안이함은 빼놓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KODEX=ETF’로 불릴 정도로 삼성운용이 희대의 히트를 기록하며 ETF 시장을 ‘씹어먹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KODEX200’ 출시 이후 ‘레버리지 ETF’와 ‘인버스 ETF’ 쌍두마차가 지수형 ETF 시장을 주도하며 시장의 대부분을 삼성운용 품에 안겼던 그때입니다. 당시 삼성운용 전체 운용수익 중 ETF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이들 ‘3형제’ 덕입니다. 하지만 삼성운용이 3형제 ETF에 취해있는 사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틈새를 파고 들어 배수의 진을 칩니다. 투자자들이 직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테마 위주의 ETF를 출시하며 갈고 닦은 '호랑이' 발톱을 드러냅니다. 잠자던 코덱스는 어느새 숨통을 조여온 타이거의 전방위 공격에 혼비백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보적 ‘1위’였던 삼성운용의 인재 등용술, 이로 인한 인력 유출의 후폭풍도 되짚어봐야 할 부분입니다. 그간 삼성운용은 뛰어난 성과와 달리 임직원에 대한 처우는 업계 1위가 아니라는 평을 받아왔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거론됐지만 제조업 기반의 삼성 계열사라는 한계라는 지적도 일각에선 제기됐습니다. 실제 삼성운용 대표는 삼성의 금융계열사 출신들로 채워지는 게 공식이었지요. 2021년 말, 그룹의 ‘뉴 삼성’ 기조에 따른 세대교체 바람은 삼성 금융계열사들에도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삼성은 외국계 금융사 출신의 서봉균 당시 삼성증권 전무를 새 수장으로 택하고 배재규 부사장을 고문직에 앉힙니다. 배 부사장은 자타공인 'ETF의 아버지'로 불리며 삼성운용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었지만 그룹의 인사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밀려납니다. 삼성의 인사를 기회로 삼은 것은 한국금융지주였습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재건’이 절실했던 한국금융지주는 ‘적진’ 출신의 배 부사장을 대표로 영입하는 파격을 단행한 것이죠.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겠다는 그를 믿고 십수년간 이어온 ETF 브랜드마저 새롭게 갈아엎는 등 전폭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배 대표 뿐 아닙니다. 이를 전후로 삼성운용에선 인력 유출이 꽤 있었습니다. 김남기 미래에셋운용 ETF 운용부문 대표와 이경준 ETF운용본부장, 신한운용의 김정현 센터장 등. 이들의 공통점은 삼성운용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재주꾼'들이고 현재는 경쟁사의 파격적인 대우와 지원 사격을 등에 업은 채 ETF 시장에서 날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배 대표가 이끄는 한투운용은 최근 새롭게 선보인 ETF들의 선전 덕에 3%대였던 점유율이 5%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동기간 삼성운용이 뺏긴 점유율의 일부가 한투운용으로 흘러들어간 셈이죠. “금융시장에서 성패는 인재술이 전부입니다. 내가 속한 조직이 긴 세월을 바쳐 일한 사람을 인정하지 않음을 목격한 구성원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조직에 대한 불신은 크죠.” 일어나지 않은 일, 그래서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그럼에도 결정적인 순간 또 다시 금융답지 못한 선택을 한 삼성을 향해 곳곳에서 들려오는 수근거림이 삼성운용에게는 더 쓰라리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민선의 View+] 삼성운용, 점유율, 그리고 배재규

박민선 기자 승인 2023.09.12 10:33 | 최종 수정 2024.02.28 21:30 의견 0
(사진=삼성자산운용)


지켜보는 이들에게 역전극은 언제나 짜릿합니다. 특히나 절대적 우위를 점하던 1위가 2위의 맹추격에 쫓기다 마침내 순위가 뒤집히는 상황은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점유율 격차 축소를 바라보는 업계 시각이 딱 그렇습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타이거(TIGER)’ 기세에 진땀 빼는 ‘코덱스(KODEX)’ 구도가 굳어진 순간부터 시장 일각에선 과연 ‘그 순간’이 언제쯤일까 궁금해하는 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봐도봐도 흥미로운 드라마는 최근 삼성운용이 점유율 40%를 마침내 내주면서 정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삼성운용은 채권형 ETF를 무기로 방어전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고독한 1위를 위협하는 건 비단 미래에셋만이 아닙니다. 중소형사들의 점유율 반등은 고전 중인 삼성운용에게 달갑지 않은 소식입니다.

어느새 100조원대까지 불어나며 자산운용사들의 주요 먹거리가 된 ETF 시장내 경쟁자들이 많아짐에 따라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운용 입장에서 되돌리고 싶을 아쉬운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삼성운용의 안이함은 빼놓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KODEX=ETF’로 불릴 정도로 삼성운용이 희대의 히트를 기록하며 ETF 시장을 ‘씹어먹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KODEX200’ 출시 이후 ‘레버리지 ETF’와 ‘인버스 ETF’ 쌍두마차가 지수형 ETF 시장을 주도하며 시장의 대부분을 삼성운용 품에 안겼던 그때입니다. 당시 삼성운용 전체 운용수익 중 ETF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이들 ‘3형제’ 덕입니다.

하지만 삼성운용이 3형제 ETF에 취해있는 사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틈새를 파고 들어 배수의 진을 칩니다. 투자자들이 직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테마 위주의 ETF를 출시하며 갈고 닦은 '호랑이' 발톱을 드러냅니다. 잠자던 코덱스는 어느새 숨통을 조여온 타이거의 전방위 공격에 혼비백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보적 ‘1위’였던 삼성운용의 인재 등용술, 이로 인한 인력 유출의 후폭풍도 되짚어봐야 할 부분입니다.

그간 삼성운용은 뛰어난 성과와 달리 임직원에 대한 처우는 업계 1위가 아니라는 평을 받아왔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거론됐지만 제조업 기반의 삼성 계열사라는 한계라는 지적도 일각에선 제기됐습니다. 실제 삼성운용 대표는 삼성의 금융계열사 출신들로 채워지는 게 공식이었지요.

2021년 말, 그룹의 ‘뉴 삼성’ 기조에 따른 세대교체 바람은 삼성 금융계열사들에도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삼성은 외국계 금융사 출신의 서봉균 당시 삼성증권 전무를 새 수장으로 택하고 배재규 부사장을 고문직에 앉힙니다. 배 부사장은 자타공인 'ETF의 아버지'로 불리며 삼성운용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었지만 그룹의 인사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밀려납니다.

삼성의 인사를 기회로 삼은 것은 한국금융지주였습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재건’이 절실했던 한국금융지주는 ‘적진’ 출신의 배 부사장을 대표로 영입하는 파격을 단행한 것이죠.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겠다는 그를 믿고 십수년간 이어온 ETF 브랜드마저 새롭게 갈아엎는 등 전폭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배 대표 뿐 아닙니다. 이를 전후로 삼성운용에선 인력 유출이 꽤 있었습니다. 김남기 미래에셋운용 ETF 운용부문 대표와 이경준 ETF운용본부장, 신한운용의 김정현 센터장 등. 이들의 공통점은 삼성운용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재주꾼'들이고 현재는 경쟁사의 파격적인 대우와 지원 사격을 등에 업은 채 ETF 시장에서 날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배 대표가 이끄는 한투운용은 최근 새롭게 선보인 ETF들의 선전 덕에 3%대였던 점유율이 5%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동기간 삼성운용이 뺏긴 점유율의 일부가 한투운용으로 흘러들어간 셈이죠.


“금융시장에서 성패는 인재술이 전부입니다. 내가 속한 조직이 긴 세월을 바쳐 일한 사람을 인정하지 않음을 목격한 구성원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조직에 대한 불신은 크죠.”

일어나지 않은 일, 그래서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그럼에도 결정적인 순간 또 다시 금융답지 못한 선택을 한 삼성을 향해 곳곳에서 들려오는 수근거림이 삼성운용에게는 더 쓰라리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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