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한국회계기준원(KAI, Korea Accounting Institute)이란 곳에서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7월 16일 개최하는 KAI 정규 포럼 행사에 참가 신청을 해달라는 것. 포럼 주제는 ‘생명보험사의 관계사 주식 회계처리’인데, 초청 안내글 내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크게 4개 단락인데, 내용이 간단치 않아서 단락별로 조목조목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단락 : “국내 생명보험사들은 과거 유배당 보험계약자의 보험료로 취득한 관계사(계열사)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면서, 해당 자산의 평가이익 중 계약자 몫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원가기준 부채에 반영해 왔습니다.”
해설 : ‘국내 생명보험사들’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습니다만, 사실상 삼성생명을 지칭한 내용입니다. 14개 국내 생명보험사 가운데 유배당 보험계약자의 보험료로 취득한 관계사(계열사) 주식을 장기간 보유한 것 때문에 이슈가 된 보험사는 삼성생명이 대표적입니다. 보험계약자의 보험료로 삼성전자 지분 8.51%를 사서 보유 중이죠. 참고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유배당 보험상품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씨가 말랐습니다. 연금저축 등 일부 상품을 제외하면 모두 무배당 상품입니다. 무배당 일색인 나라는 주요국 중 한국이 거의 유일한데, 연구 대상감입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삼성생명이 ‘무배당 문화’에 크게 일조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두 번째 단락 : “2023년 IFRS17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생명보험사는 이러한 계열사 주식에 대해 공정가치 기반의 보험부채 평가를 적용하지 않고, IAS1 문단 19에 따른 회계정책 일탈(Departure from IFRS)을 선언하여 기존 원가기준 부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2023년 가을 호주에서 IASB(국제회계기준위원회) 측은 회계기준원에 한국은 IFRS17의 완전한 적용에서 예외(Carve-out)를 허용한 상태로, 현재 한국이 IFRS를 온전히 도입한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해설 : 사극을 보면 임금님이 종종 신하에게 “짐이 과문하여(보고 들은 것이 적어)∼”라고 말하는데, 제가 딱 그런 심정입니다.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시가가 아닌 원가로 평가 중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IASB에서 의문을 제기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입니다. 제가 과문하여 그런가 포털사이트를 뒤져봐도 해당 내용이 이슈화된 적은 없습니다. 아마도 KAI 내부나 회계업계 일부에서만 공유된 내용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세 번째 단락 : “최근에는 이들 관계사들이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거나 보유 자사주를 소각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는 해당 지분을 보유한 생명보험사의 관계회사 지분율을 높이게 됩니다. 이에 따라 생명보험사는 관계법령을 준수하기 위해 관계사 주식을 일부 매각하거나, 지분을 유지하기 위해 관계회사를 보험업법상 자회사로 편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설 :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밝힌 관계사는 삼성전자와 삼성화재입니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라 금융회사는 비금융계열사의 주식을 최대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습니다. 이에 삼성생명(8.51%)과 삼성화재(1.49%)는 삼성전자 지분을 정확히 10% 보유 중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하면서 3조원어치를 소각했습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율이 자동으로 10%를 초과해 초과 분량 만큼(약 3000억원) 주식을 매각해야 했습니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삼성화재도 지난 1월 밸류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보유 중인 자사주의 소각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는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자회사 편입으로 이어졌습니다. 현행 보험업법상 보험회사는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지분을 15% 초과해 보유할 수 없습니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지분 14.98%를 보유 중인데 삼성화재가 보유 중인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15%를 넘어버린 것이죠. 삼성화재의 자기주식 보유량(15.9%)이 많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네 번째 단락 : “문제는 IAS1, 문단19의 일탈을 허용한 2022년 12월의 금융감독원 질의회신문에 의하면, 계약자지분조정으로 처리한 관계사 주식의 매각과 같이 질의 당시의 조건 및 상황이 변하게 되면 ‘일탈회계의 효력이 정지’되고 IFRS17 원상복귀가 요구된다는 점입니다. 또한 보험업법상 자회사로 편입된 관계회사 지분에 대해서는 이제 단순한 매도가능증권이 아닌 ‘지분법’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 포럼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중심으로, 생명보험회계의 국제적 정합성과 공정가치 평가의 과제를 함께 논의하고자 합니다.”
해설 :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또한 연동해서 올 상반기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했죠. 법을 지키려고 팔았든 어쨌든 ‘조건 및 상황’이 변하게 되면 일탈회계의 효력이 정지되는 것이 금감원이 제시한 원칙인가 봅니다. IFRS17로 원상복귀 한다면 삼성생명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해야 합니다. 아울러 삼성화재가 삼성생명의 자회사가 된 만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은 ‘매도가능증권’이 아니라 ‘지분법’ 적용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지분법 회계처리는 관계사의 경영 성과를 투자한 회사의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계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하거나, 관계사 경영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적용됩니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지분 15.4%를 보유 중이어서 20% 조건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삼성화재 경영에 삼성생명이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행사 중인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경영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다르게 보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 '삼성'이란 단어가 빠진 '삼성토론'
KAI의 포럼 초청 글에 ‘삼성’이란 단어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지만 배경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들이라면 이 포럼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 문제’를 따지려는 것이란 걸 쉽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해당 문제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직결돼 있어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KAI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삼성’의 ‘삼’자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토론자는 물론이고 발표자까지 미정인 초청장은 실로 오랜만에 받아 봅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먼저 IFRS17의 예외(회계정책 일탈)를 앞으로도 계속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21세기는 글로벌 투자가 상식인 시대입니다. 나라마다 회계기준이 다르면 투자자는 회사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1년 EU(유럽연합) 국가들을 중심으로 IASB가 설립돼 IFRS(국제회계기준, 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자체 회계기준(GAAP)을 사용하며 맞섰지만 대형 분식회계 사건(엔론사태)이 터지며 대세는 IFRS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2011년부터 IFRS를 채택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도 안착을 이뤘습니다.
다만, 보험 회계의 경우 그 특수성으로 인해 시행이 늦어졌습니다. 2004년 첫 기준서가 나왔지만 회원국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적용에 난색을 표했고, 그 결과 오랜 기간 피드백을 거치면서 최종안이 나오기까지 무려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진통 끝에 2017년 IFRS17이 발표됐지만 시행 시기는 2021년으로 멀찌감치 띄워 놨습니다. 그마저도 두 차례 연기돼 2023년 전면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굳이 201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2017년부터만 따지더라도 6년의 준비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고 약속의 해인 2023년 제도 도입 첫해에 삼성생명은 ‘일탈’을 선언하고 금융당국은 이를 수용합니다.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그룹 지배구조 문제가 얽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겠지만 IASB 입장에서는 긴 세월의 노력이 허무해지는, 황당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을 겁니다. KAI도 중간에서 난처했겠죠. 금융당국 역시 게으름과 무능함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포럼 초청글 두 번째 단락에서 “IASB가 의문을 제기했다”는 표현의 이면에는 이런 속사정이 숨어 있습니다. 좀 더 심각하게 의미를 부여하자면 “삼성생명이라는 기업 하나 때문에 대한민국 기업회계 전체가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입니다. IFRS의 핵심이 시가 평가이고, 세계의 모든 기업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일탈에서 복귀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국회에서 이른바 ‘삼성생명법’이 통과돼 강제 복귀하느냐, 스스로 복귀하느냐의 문제만 남은 것 같습니다.
■ 국제회계기준위원회는 왜 의문을 제기했나
두 번째 쟁점은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을 지분법으로 평가할 것이냐 여부입니다. 이 부분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삼성생명 홍원학 사장과 삼성화재 이문화 사장이 두 회사 문턱을 서로 넘나드는 등 인사교류가 있긴 합니다만,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의 경영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업계에선 두 회사간 사이가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두 회사 모두 이사회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지배력 아래 놓여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시각이겠죠. 두 회사 모두 시선이 그룹 총수에게 향해 있지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여유는 없습니다. 최근 ‘모니모’를 위해 삼성금융 네트워크로 뭉치긴 했습니다만, 이 또한 프로젝트 성격상 보험사가 아닌, 삼성카드가 중심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법을 지키려고 어쩔 수 없이 자회사로 편입한 것인데 굳이 지분법까지 적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실제로도 그러한지는 두 회사를 담당해 온 외부감사인의 의견을 들어봐야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앞으로도 계속 일감을 받아야 하는 회계법인 입장에서 과연 명확히 의견을 드러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포럼 토론자가 미정인 상태인 것에는 아마 이런 사정도 작용하고 있을 테지요. 포럼 당일 나온 의견들을 취합해 보면 대략적인 분위기가 파악될 것 같습니다.
■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건 아닐까
삼성화재의 밸류업 정책이 일으킨 나비효과를 보면서, 마음 한켠에서는 삼성그룹에 대한 측은지심이 일기도 합니다. 보험업법, 금산법, 공정거래법 등 기업 경영을 옥죄는 규제가 너무도 많습니다. 물론 사연 없는 무덤 없듯, 이유 없는 규제는 없겠지요. 규제의 대부분은 기업들이 자초한 것들입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법으로, 제도로 막아온 것이 대한민국 규제의 역사니까요. 일견 공격과 방어로 공존하는 해커와 보안회사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제는 부메랑 효과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고 쳐서, 괘씸해서 규제를 만들 때는 통쾌하지만 그런 규제들이 너무 많아져서 나라 전체 경제의 역동성을 해치는 수준까지 온 것이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역대 모든 정부가 ‘규제 철폐’를 공언했지만, 소속 국회의원들은 규제를 더 못 만들어 안달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대변해 줍니다.
무엇보다 경영의 예측 가능성이 현격히 떨어집니다. “상속세와 양도소득세는 맞아봐야 안다”는 말이 시장에서는 정설로 통합니다. 규제가 워낙 복잡하고 자주 바뀌어서 미리 금액을 예측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쓴소리입니다. 덕분에 세무사, 회계사들만 신바람이 났습니다. 오죽하면 상장기업들의 사외이사 섭외 1순위가 국세청 공무원일까요.
이번 이슈만 해도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그룹으로서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호응하려는 선의가 이렇게 예상치 못한 문제들로 번져나갈지 과연 이재용 회장이나 삼성생명·삼성화재 경영진은 미리 알고 있었을까요. 알았다면 과연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을까요. 이런 여건 속에서 과연 경영진이 책임경영을 입 밖으로 낼 수 있을까요.
■ '유연한 실용정부'의 선택은
나무만 볼 것이 아니라, 좀 더 멀리 떨어져서 숲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성도 느낍니다. 재벌의 끝없는 탐욕이 많은 이들의 기회를 박탈하기도 했습니다만, 위험을 무릅쓰고 반도체 사업을 세계 1위로 성장시킨 공(功)도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의 가장 큰 장벽은 삼성전자의 비싼 몸값입니다. 삼성전자가 너무 잘나가서, 시가총액이 너무 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옴짝달싹 매여있는 형국입니다. 초인적인 집중력과 노력으로 악조건 속에서 세계 1위 기업을 일궈낸 결과가 포승줄에 매이는 것이라면 앞으로 제2, 제3의 삼성전자는 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삼성전자 덕분에 수십만 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됐고, 정부도 천문학적인 세금을 매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초강대국 미국이 일자리와 세금을 위해 공정성과 형평성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판국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가지지 못해 안달인 회사를 우리 스스로 옥죄고 짓누르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지로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삼성그룹을 옥죄는 포승줄의 대부분은 선대 회장 경영의 산물입니다. 고 이건희 회장이 장인(홍진기 회장)에 이끌려 경영 일선에 나섰듯, 이재용 회장 또한 엄한 부친에 이끌려 자의 반 타의 반 총수직에 올랐습니다. 본인이 결정하지 않은 일로 많은 비난과 옥고를 이미 치렀고, 모든 화(禍)의 근원인 ‘경영권 승계’ 포기를 일찌감치 선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시 대한민국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도록 포승줄을 풀어주는 것이 ‘먹사니즘’ 정권의 올바른 선택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삼성생명의 회계처리 문제 하나로 대한민국 기업의 전체 회계 신뢰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시가 평가해 3% 이내로 줄이는 게 맞는 방향인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배당을 받지 못한 보험계약자들을 위해서도, 금산분리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삼성그룹이 경영권 위협에 노출된다는 것인데요, 그룹 지주사 역할을 맡고 있는 삼성물산이 해당 지분을 인수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까 판단됩니다. 마침 이재명 정부가 ‘유연한 실용정부’를 표방하고 있으니 현명한 선택을 내리길 기대해 봅니다.
[뷰파인더] 코너는 국내 금융회사의 이슈와 전략을 조금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콘텐츠입니다. 현재의 기업 전략을 이해하려면 기업의 발자취, 그간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업 CEO와 대주주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겠죠. 이를 통해 기업의 성장성과 미래를 입체적으로 살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