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걸음을 제대로 떼지도 못했는데 신발끈이 엉켜버렸다. 우리금융지주를 향한 금융당국의 시선에 날이 서면서 이제 출범 한달 된 우리투자증권 분위기도 차갑게 가라앉고 있다. 주변에선 “지주 계열사라는 장점을 활용해 초기 기반 다지기에 집중해야 할 때인데 만만치 않은 난관이 생긴 셈”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진=우리투자증권 출범식에서 남기천 대표이사가 깃발을 흔들고 있다)
지난 2일 금융감독원은 내달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에 대한 정기검사에 사전통지서를 발송했다. 정기검사는 국내 주요 금융지주에 대해 2~3년 주기로 진행돼 왔지만 최근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착수되는 만큼 전방위적 고강도 조사가 예상되고 있다.
실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우리금융이 보이는 행태를 볼 때 더는 신뢰하기 힘든 수준이다. 원칙에 입각한 엄정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 것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금투업계 한 관계자는 “손 전 회장 관련 대출건에 대해선 수사권이 있는 검찰로 가게 됐으니 그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면서도 “당국 차원의 검사 범위가 전체를 아우르고 있고 수사까지 진행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어떤 의혹이라도 찾아내겠다는 의지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일각에선 우리금융지주의 포스증권 인수 관련 합병 예비인가 과정에 임종룡 회장의 영향력이 미쳤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가능성을 제기했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르면 이종 금융기관을 합병할 경우 종금사가 보유 중인 라이선스를 10년간 사용 가능하도록 돼 있다. 이를 통해 자체 신용을 기반으로 발행어음 발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금 조달에 상당 이점을 가져갈 수 있다. 초대형 투자은행(IB) 자격을 보유한 증권사 기준 발행한도가 자기자본의 200%로 제한되지만 종금사는 자기자본에 대한 규제가 없다. 종금 라이선스가 ‘슈퍼 라이선스’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금융위원회 출신인 임 회장이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나 인수 합병과 관련된 금융위의 판단을 임 회장에 대한 특혜로 규정짓는 것 역시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위원회 출신 한 관계자는 “종금 라이선스가 상당 이점을 갖고 있지만 현재 금융시장에서 사실상 이단아인 상황인 것도 맞다”며 “메리츠증권에 대한 인가(2010년) 선례가 있기도 하고 종금 라이선스를 그대로 두면서 허가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임 회장에 대한 특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사진=지난 8월 5일 여의도 TP타워에서 열린 우리투자증권 간담회에 참석한 주요 임원들의 모습)
하지만 이를 차치하더라도 우리투자증권의 초기 안착을 위해 지주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상당히 중요한 조건이라는 점에서도 현 상황은 걸림돌이다. 임 회장은 앞서 우리투자증권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토대로 과거 성공 스토리를 재연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왔다.
지난달 5일 열린 우투증권 출범 기념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남기천 대표이사를 비롯한 주요 임원진은 “우리금융그룹과 시너지를 창출하겠다”, “우리금융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성장 시간을 단축하겠다”는 등 우리금융의 다양한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 발판을 마련해나가겠다는 전략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 수사 결과에 따라 만약 임 회장의 거취 문제까지 불거진다면 우투증권에게 상당한 변수가 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 특히 남기천 현 우리투자증권 사장의 경우 임 회장이 사실상 영입한 인물로 향후 임 회장 거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새롭게 출범한 입장에서 당국과 소통하고 인허가 관련 업무 중요도가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는데 정기검사 결과에서 징계처분이 내려질 경우 우투증권의 신규 사업 진출 자체가 당분간 막힐 수 있다”며 “우투증권이 지주 차원의 신사업이기도 한 만큼 그룹 전체 리더십 구조가 흔들리는 환경에서 자유롭긴 힘들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