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밋 서울&엑스포 2025'의 한 부스에서 모듈형 데이터센터 모형을 전시 중인 모습. (사진=연합뉴스)

AI 시대가 빠르게 도래하면서, 국내에서도 AI 데이터센터가 전력망과 탄소감축 로드맵을 흔드는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전력먹는 하마'인 AI 데이터센터가 이재명 정부의 '3대 AI 강국'을 향한 다음 과제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AI 데이터센터는 AI 시대를 이끌 가장 중요한 인프라 중 하나로 꼽힌다. 유용한 AI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보다 높은 성능의 언어모델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 언어모델을 학습시키는 방대한 연산력을 제공하는 장소가 바로 AI 데이터센터다.

부족한 전력은 어디서?…수도권 AI 클러스터의 딜레마

AI 데이터센터 운영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정부의 제11차 전력수요기본계획 전망에 따르면 오는 2038년까지 데이터센터 관련 전력 사용량은 8.2TWh에서 2038년 30.0TWh로 약 4배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전력 수급이다. 국내 데이터센터의 70% 이상은 수도권과 충청권에 몰려 있고, 여기에 들어가는 전력 수요는 이미 포화 상태다. 신규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거나 증설하려 해도 신설 변전소 승인·건설에 최소 5~7년이 걸리는 등 규제 장벽이 걸림돌이다.

현재 정부는 AI 데이터센터를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하고 전력계통영향평가 등 절차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제도적 지원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RE100 이행을 위한 재생에너지 전력 수급도 과제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으로 재생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국가를 선호한다.

그러나 한국의 RE100은 아직 초기 단계로, PPA(전력구매계약)·REC(재생에너지 인증서) 단가는 아시아 최고 수준이이다. 여기에 에너지저장장치(ESS) 부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경직된 전력시장의 구조로 인해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한국 대신 전력·RE100 환경이 성숙한 싱가포르나 일본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특히 한국은 데이터센터를 기피 시설로 인식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상당하다. 세빌스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에서 인허가를 받은 데이터센터 중 33건 중 절반 이상이 주민 민원으로 공사가 지연됐다. 전자파 우려, 경관 훼손, 열섬 현상 등이 반대 측의 논거다. 일본과 싱가포르가 막대한 전력 사용량을 감수하고 국가 차원의 데이터센터 전략 및 송전 우선할당 정책을 내놓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양새다.

특히 최근 정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 조정으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우려도 크다. 앞서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 감축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부문별로는 에너지가 68.8∼75.3%로 제일 많다.

이로 인해 발전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에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되고,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더 커질 것이란 예측이다. 앞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분만큼 다시 수백만 톤 단위의 탄소 감축 규모를 더해야 하는 만큼, '탄소예산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의 데이터센터 '각 세종' 서버실 전경. (사진=네이버클라우드)

■ "냉각 기술부터 바꾼다"…국내 기업들의 생존 전략

이러한 구조 속에서 국내에서는 SK, KT, LG전자, 네이버 등 주요 통신·ICT 업체들은 각자 에너지 효율화와 친환경 설계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SK그룹은 울산 AI데이터센터를 지역 발전소 에너지 인프라와 직접 연계해 에너지 안정성을 확보했으며, KT는 국내 상업 데이터센터 최초로 액체 냉각 시스템을 도입해 냉각 전력 효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LG전자는 기존의 공랭·액체 냉각 기술을 결집한 '모듈형 냉각 솔루션' 개발에 나선다. 데이터센터 건립 과정에서의 확장성·유연성을 극대화한다는 목표다.

네이버는 세종에 위치한 데이터센터 '각 세종'의 자연풍 활용 친환경 냉각 설비에 더해 데이터센터용 재생에너지 확보에 나서고 있다. 앞서 다양한 파트너사들로부터 확보한 재생에너지에 더해 추가 PPA를 체결하며 태양광 전력까지 공급 다변화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민간 기업들의 기술 혁신이 진행 중이지만, 그럼에도 전력 수요 폭증이라는 물결을 뒤집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는 민간의 에너지 절감 혁신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전력망 투자와 재생에너지 확충, 인허가 체계 혁신 등 정부 차원의 선도적 정책 전환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 시대의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서버 집합소가 아니라,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전략 시설"이라며 "데이터센터를 기피시설이 아니라 'AI 인프라'로 재인식하고,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송전망까지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