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공청회에서 안영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정책 분과위원장이 좌장으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구조적 침체 속 NDC 상향…“감축 투자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감이 가속화되고 있다. 업황이 구조적 침체에 빠진 가운데 정부의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상향되면서 감축 투자를 감당할 여력조차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의 2022~2024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2~3%대에 불과하다. 감가상각비를 제외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투자 여력이다. 설비는 방대하고 공정상 CO₂ 배출이 많으며 중국 공급과잉 탓에 가격 전가도 어려운 구조다.

저탄소 공정 개조·에너지 효율설비 교체·연료 전환 등 필수 감축 투자비는 어마어마하다. 한국석유화학협회 내부자료인 ‘화학산업의 주요 이슈 및 대응 방안’을 살펴보면 2050년 석유화학업계 예상 탄소배출량(1억1006만8000t)을 모두 감축하기 위해서는 최대 270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 “배출권도 부담” 주장에 사실 왜곡 지적도···실제 배출권 경매는 ‘미달’

업계는 “배출권을 살 돈도 없다”고 호소한다. 다만 배출권 부담에 대한 일부 주장에는 반응이 엇갈린다. 실제로 기업이 즉각 부담해야 할 비용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철강·정유·시멘트·석유화학 등 4대 업종 협회는 2026~2030년 제4차 계획기간 동안 추가 구매해야 할 배출권 비용이 5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배출권 초과 수요를 1억t으로 가정하고 톤당 5만 원이라는 가상의 가격을 적용한 계산이다.

하지만 실제 배출권 시장과는 동떨어진 가정이다. 현재 배출권(KAU25) 가격은 1만500원 수준이며, 정부는 시장안정 장치를 이미 운영 중이다. 정부가 유상할당 비율을 강화한 이후 12일 첫 경매를 진행했지만 기업 참여는 미미했다. 400만t 중 361만t만 응찰되며 ‘미달’됐고 발전사 외 다수 산업 기업은 응찰조차 하지 않았다.

플랜1.5는 “기업들이 그동안 100% 무상할당을 받아 잉여 배출권을 오히려 판매해 수익을 얻은 사례도 있다”며 “전체 배출량을 비용으로 주장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대산석유화학단지 (사진=서산시)

■ 진짜 위험은 실효성 없는 바이오 전환

진짜 위험은 저탄소 설비 투자에 있다. 석유화학 산업의 NDC 핵심 수단 가운데 하나는 나프타를 바이오 기반 원료로 대체하는 ‘바이오나프타 전환’이다. 하지만 성과는 매우 미미하다.

국내 6대 NCC의 연간 바이오나프타 투입량은 4만6000t으로 문재인 정부 NDC 목표 1180만t의 0.38%에 불과하다. 현실성을 이유로 50만t으로 목표를 낮춰도 달성률은 9.2%다.

바이오나프타는 t당 1600달러로 기존 나프타(550~600달러)의 3배 수준이다. 석화업계는 “수요도 적고 경제성이 전혀 맞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공급망도 정체 상태다. 폐식용유·도축 잔재 등 원료 확보 자체가 쉽지 않고 SAF(지속가능항공유)로 흡수되는 물량이 많아 생산 확대가 더디다.

■ EU CBAM 확대 ‘직격탄’…정부 지원·인프라 구축이 열쇠

여기에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적용 품목을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CBAM은 EU가 수입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탄소조정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현재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6개 품목에 대해 시범 시행 중이며 2026년부터 본격 부과된다. EU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2025년까지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를 거친 뒤, 이후에는 배출량 인증서 구매 의무가 생긴다.

석유화학은 EU 수출 비중이 높지 않지만 글로벌 벤더의 PCF(제품탄소발자국)·Scope3 평가가 강화되면 공급망 탈락 위험이 커진다. 탄소·전력·인프라 부담이 큰 한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NDC 강화로 산업계의 감축 부담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배출권 부담을 과장한 ‘탄소폭탄’ 논쟁이 아니라 저탄소 설비에 필요한 수십조 투자와 인프라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석유화학 산업의 생존을 좌우할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