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교보생명
교보생명이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글로벌 사모펀드 어피니티와의 분쟁이 시작된 2018년 이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웅크렸던 교보가 올해 들어 달라졌습니다. 지난 3월 ‘7년간 이어진 풋옵션 분쟁 해결’을 선언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SBI저축은행 인수를 발표, ‘금융지주사 전환 본격화’를 예고했습니다. 어피니티와의 풋옵션 분쟁에 꽁꽁 묶여 옴짝달싹 못하던 교보생명이 오랜 우군인 일본 SBI그룹 지원으로 활로를 찾은 모습인데요. 앞서 SBI그룹은 2007년부터 교보생명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지해오며 우리금융 인수, 제3인터넷은행 진출 등 주요 사업을 함께 모색한 바 있습니다.
이로써 교보생명은 생명보험업과 증권·자산운용업에 이어 저축은행업에도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SBI저축은행은 작년말 기준 총자산 14조289억원, 자본총계 1조8995억원, 거래 고객 172만명을 보유한 업계 1위 저축은행입니다. 호황기인 2021~2022년 3000억원 대의 순이익을 달성했고, 부동산PF 부실로 업계가 몸살을 앓았던 2023~2024년에도 891억원, 808억원의 순이익을 거둔 알짜 회사입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까진 아니더라도 보험 영역이 위축됐을 때 보완재 역할을 해내기엔 충분한 곳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교보생명은 생명보험과 저축은행 간 상당한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보험 계약자들에게 저축은행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저축은행 고객들에게 맞춤형 보험 상품을 공급하면 고객층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셈법입니다. SBI저축은행의 ‘사이다뱅크’ 앱 이용자 수는 140만명에 이르는데, 교보생명 고객들과 크게 겹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12년 구력을 자랑하는 국내 최초 유일 디지털 생보사 교보라이프플래닛의 위상까지 감안하면 양사의 결합이 디지털 세대인 젊은층 공략에도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 교보생명, 내년까지 금융지주사 전환 선언
흥미로운 점은 교보생명이 저축은행 인수에 그치지 않고 손해보험사 인수, 비보험 금융사업 진출 등 사업 영역 추가 확장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입니다. 금융지주사 명색에 걸맞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구축하겠다는 선언인데요, 업계에선 교보생명이 움츠렸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좌고우면하지 않고 추가 인수합병에 발 빠르게 나설 것으로 내다보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보험사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한국금융지주와 함께 유력 매수 주체로 떠올랐습니다.
교보생명이 고객 맞춤형 금융서비스와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비중 있게 언급했다는 점에서 다음 인수 후보는 손해보험사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은행업의 경우 대형은행 인수는 언감생심이고 지방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정도가 고려 대상인데, 이익 체력 측면에서 매력도가 크게 떨어집니다. 제4인터넷전문은행의 접수 창구도 얼마 전 문을 닫았습니다. 메리츠금융, 미래에셋그룹, 한국금융지주 등 주요 비은행 금융지주사들은 이미 은행 없이도 천문학적인 이익을 충분히 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신설될 지주회사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중심으로 증권, 자산운용, 저축은행, 핀테크 등이 협업하는 구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시장에 나온 손해보험사 매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메리츠금융이 발을 뺀 MG손보는 계약이전으로 결론나면서 롯데손해보험과 악사손해보험 정도가 후보군으로 거론됩니다. 두 회사의 자산 규모는 작년말 기준 15.3조원, 1.0조원으로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총자산 140조원에 육박하는 교보생명에 어울리는 매물은 당연히 롯데손보입니다. 다섯 손가락(삼성·DB·현대·KB·메리츠)에는 못 들어도 열 손가락 정도는 거뜬해 보입니다. 때마침 롯데손보는 여러 악재에 시달리며 지난해 2조~3조원에 달했던 예상 매각 가격이 1조원 대로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 SBI저축은행 이어 롯데손보 인수 다크호스로
사실 지난해 6월 우리금융그룹이 M&A를 저울질할 때만 해도 롯데손보는 의기양양 콧대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유력한 후보였던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으로 갈아타면서 상황은 빠르게 변합니다. 대주주 JKL파트너스는 매각에 최종 실패했고 훗날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후유증은 컸습니다. 몸값을 높이기 위해 설계사들을 대거 동원, CSM(보험계약마진)을 단기간에 급격히 끌어올렸는데 이게 부메랑이 돼 돌아옵니다. 금융당국이 고무줄 회계를 막으려 무·저해지 계리가정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서 지난해 순익이 급감한 것이죠.
롯데손보는 지급여력비율 하락 등 자본적정성 지표가 추락해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황에 몰렸지만 금융당국의 불허로 지난 2월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후순위채 콜옵션 행사까지 막혀 건전성 지표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금감원은 지난해 하반기 정기검사와 올해 2~3월 수시검사를 거쳐 지난 26일 롯데손보 자본적정성 등급을 잠정 4등급(취약)으로 평가했습니다. 적기시정조치 중 하나인 경영개선권고 대상이 된 것인데요. 평가결과를 전달받은 금융위는 이르면 다음달 정례회의에서 적기시정조치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전후 사정으로 롯데손보 매각가에 거품이 상당히 빠졌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조 단위 몸값입니다. 외국계 대형 사모펀드나 국내 은행계열 금융지주 정도가 소화 가능할 것으로 업계에선 내다보고 있습니다. 손보사를 갖지 못한 우리금융이 다시 매수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일각에서 제기되지만 주가 관리가 필수인 ‘밸류업 시대’에 가능할 지는 상당히 의문이 드는 것도 현실입니다. 동양생명의 잔여 지분을 흡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추가 자금 투입 가능성이 높은 롯데손보까지 인수하는 건 모험에 가까워 보일 수 있습니다.
이미 5대 손보사를 보유한 KB금융을 빼고 나면 그나마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이 매수를 고려할 만한 주체인데 이들 또한 M&A에 적극적인 입장은 아닌 것으로 시장 안팎에 알려져 있습니다. 진옥동 회장과 함영주 회장은 실속을 중시하는 효율주의 성향의 경영인입니다. 자신보다 더 큰 몸집의 매물을 삼켰다 진땀 뺀 금융사 경영인이라는 공통점도 있구요. 그룹의 무게중심이 몸집 불리기보다 내실 다지기에 더 쏠려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 롯데손보, 하반기 여건 개선...문제는 '가격'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내년까지 지주사 출범을 선언한 교보생명은 롯데손보 M&A의 다크호스로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교보생명은 최근 3년 동안 매년 5000억원 안팎의 이익을 안정적으로 창출해왔습니다. SBI저축은행 인수에 9000억원이 소요될 예정이긴 하나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3조5000억원에 달해 인수자금 동원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건전성 지표가 일시적으로 후퇴할 수 있지만 충분히 극복 가능한 수준입니다.
롯데손보 또한 당장은 궁지에 몰려 있지만 6월 대선 이후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복현 원장의 금감원과 소통에 애로를 겪고 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반전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란 기대도 나옵니다. 금융당국이 킥스 비율 규제를 3분기에 150%에서 130%로 낮출 예정이어서 자본확충 부담에도 숨통이 트입니다.
롯데손보 경영진은 지난해 10월 리파이낸싱을 거쳐 상시 매각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과연 누가 롯데손보의 주인이 될까요.
자료=롯데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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