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이글스 경기를 찾은 팬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2015년 겨울 ‘삼성테크윈’이 사라졌다. 2023년 가을, ‘대우조선해양’ 간판이 내려갔다. 그 자리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이 채웠다. 김승연 회장의 승부사 DNA가 기업들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한화그룹의 성장사는 곧 인수합병(M&A) 의 역사다. 그 중심에는 매번 위기를 기회로 바꿔낸 김 회장의 베팅이 존재했다. 과감하면서도 기민한 인수 전략은 ‘한화’라는 이름 아래 전혀 다른 출신의 기업들을 모아 국내 7위 그룹(자산 기준, 2025년) 으로 키워냈다.

■ 2015 삼성 방산 3사 인수…‘방산 주도권’ 쥔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원래 ‘삼성테크윈’이었다. 삼성그룹이 비핵심 사업을 떼어내던 2015년, 한화는 방산·기계 부문 계열사를 통째로 인수했다. 그때 따라온 회사들이 지금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디펜스, 한화시스템 등으로 뻗어나갔다.

한화케미칼의 뿌리는 ‘경인에너지’와 ‘대한유화’로 IMF 이후 정리된 석유화학 자산을 인수하며 석유화학 산업에 진입했다. 이후 한화케미칼에서 한화솔루션 그리고 한화임팩트로 이어지는 변화를 통해 석유 중심 구조에서 태양광·수소·탄소중립 중심의 친환경 포트폴리오로 탈바꿈했다.

태양광 부문에서는 2010년 중국계 태양광 셀 제조사 ‘솔라펀(Solarfun)’을 인수하며 한화큐셀이라는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었다. 유럽과 미국 시장에 기반을 두고 현지 생산체계를 구축한 전략은 IRA(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대에 다시금 경쟁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가장 최근이자 최대 규모의 M&A는 바로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이다. 2023년 9월,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에 들어간 대우조선해양을 한화가 인수하며 출범한 이 신생 조선사는 한화의 방산-해양 통합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 인수합병의 공통 분모···‘남들이 안 볼 때’

김승연 회장이 M&A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규모나 속도 때문이 아니다. 그는 대체로 위기 상황의 기업, 혹은 기회와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산업군을 정조준해 인수를 단행해 왔다. 2002년 대한생명 인수 당시 IMF 이후 부실 자산으로 분류됐던 보험사를 인수해 그룹 금융계열사의 핵심으로 키웠고, 10년 전 방산 산업 구조조정 흐름 속에 삼성테크윈을 인수해 방산 중심축을 구축했다. 그의 인수 타이밍은 대부분 ‘산업의 저점’에서 이뤄졌다.

물론 모든 M&A가 화려한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일부 인수기업은 한화 내부에서 소화되지 못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린 경우도 있었다. 태양광 사업은 한때 글로벌 시장의 저가 공세에 밀려 적자를 겪었고, 한화케미칼과 한화큐셀의 조직 통합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오히려 이 실패들을 감내한 경영진의 결단력을 한화의 저력으로 평가한다. 단기 성과보다 10년 후를 내다본 구조적 투자였다는 점에서, 한화의 인수합병은 ‘단기차익형 거래’가 아닌 ‘체질 전환형 투자’로 구분된다. 위기 또는 전환기에서 한화의 인수는 시스템 전체를 바꿀 기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