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CI·영풍 CI (사진=각 사)

고려아연을 둘러싼 영풍·MBK파트너스와 현 경영진 간의 갈등이 미국 법정으로까지 번지며 지리멸렬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이그니오 인수를 둘러싼 고가 논란과 미국 내 증거수집(디스커버리) 절차를 두고 양측의 해석은 엇갈리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싸움이 이제 단순한 투자 판단 논쟁을 넘어 고려아연의 미래 전략 자체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항소법원은 최근 페달포인트 측이 신청한 증거수집 절차 중단 요청을 기각했다. 이에 영풍 측은 “의혹 규명이 본격화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해당 결정이 실체 판단과는 무관한 절차적 판단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법적으로 보면 양측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다. 디스커버리는 미국 법체계상 요건만 충족하면 폭넓게 허용되는 제도이고, 집행정지 기각 역시 곧바로 위법이나 책임을 단정하는 판단은 아니다. 문제는 법원의 판단 그 자체가 아니라 이 공방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다.

■ 의혹 규명과 성장 전략…모두 명분은 있다

영풍·MBK는 설립 초기 자본잠식 상태였던 전자폐기물 재활용 기업 이그니오를 수천억 원에 인수한 의사결정이 과연 합리적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이사회와 경영진이 주주에 대한 선관주의 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대주주로서, 또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로서 이 같은 문제 제기 자체는 무리가 아니다.

고려아연은 이그니오는 단독 투자 대상이 아니라, 페달포인트를 중심으로 한 미국 자원순환 밸류체인의 출발점이었고, 이는 신재생에너지·이차전지·자원순환으로 이어지는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의 핵심 축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페달포인트는 매출 급증과 흑자 전환이라는 성과를 냈고, AI·전력망 확대로 구리 수요가 급증하는 환경에서 전략적 가치도 부각되고 있다.

미국 내 제련소 투자, 자원순환 사업 확장, 전략적 파트너십은 모두 신뢰와 속도가 핵심인 영역이다. 대주주 분쟁과 해외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해당 사업의 실행력과 협상력은 필연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 시장은 법적 리스크와 지배구조 이슈에 민감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느 한쪽이 승리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크다.

■ 전략산업의 미래, 법정에서만 답을 찾을 수는 없다

기관투자가와 시장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이그니오 인수 가격의 적정성보다, 고려아연이 분쟁을 관리하고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보고 있다. 분쟁이 장기화될수록 고려아연이 치러야 할 비용은 커지게 된다.

법적 판단은 언젠가 내려질 것이다. 그러나 그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소모되는 시간과 불확실성에 대해 과연 누가 책임질 수 있는지는 여전히 남은 질문이다. 고려아연의 미래는 어느 한쪽의 승패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다만 이 지리한 싸움이 길어질수록 미래를 설계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