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 SK에너지 마케팅본부장(왼쪽)과 알렉스 맥고완 캐세이퍼시픽항공 운영 및 서비스 제공 최고 책임자(오른쪽)가 10일(홍콩 현지 시간) 홍콩 캐세이퍼시픽항공 본사에서 SAF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정유화학 중심의 탄소 기반 산업이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전환 앞에 구조조정을 예고하는 가운데, 지속가능 항공유(SAF·Sustainable Aviation Fuel)가 정유사들의 성장 좌표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국토교통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아시아 최초로 ‘SAF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SAF를 사용하는 항공사에 공항시설 사용료를 감면하는 방식이다. 국제항공탄소감축제도(CORSIA)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탄소배출 저감과 항공산업의 탈화석 전환을 가속하겠다는 정책 의지의 반영이다.

정부의 SAF 혼합 의무화 정책이 본격 시동을 걸자 국내 정유 4사도 시장 선점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S-OIL),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는 각기 다른 전략으로 SAF 생산 및 수출, 항공사 공급에 나서며 글로벌 SAF 밸류체인 구축에 돌입했다.

■ SK이노, 에너지 대전환 중심축…S-OIL, 정기편 SAF 공급 첫 주자

SK이노베이션은 SAF를 단순한 친환경 신사업이 아닌 그룹 차원의 에너지 전환 전략 핵심으로 보고 있다. 계열사인 SK에너지, SK에코플랜트와의 연계를 통해 SAF 수직계열화를 추진 중이며 최근에는 홍콩 캐세이퍼시픽 항공과 2027년까지 SAF 2만톤 공급 계약을 체결, 아태 지역 항공사들과의 연결고리도 강화했다. 이와 함께 SK는 자체적으로 SAF 원료인 폐식용유(UCO) 수거와 처리, 바이오 리파이너리 설계까지 전주기 역량을 강화하고 있으며 글로벌 SAF 수출 기지로서의 역할을 겨냥하고 있다.

에쓰오일도 지난해 8월 ‘SAF 상용노선 공급’ 첫 사례를 기록했다. 대한항공의 인천~하네다 정기 여객기에 SAF를 주 1회 주유하며 국내 공항 출발 정기편에 SAF가 실제 적용된 첫 사례를 남겼다. 에쓰오일은 사우디 아람코의 자회사로 중동 자원과 아시아 정제기술의 융합이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SAF 생산 역량을 점진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별도 바이오리파이너리 투자도 검토 중이다.

GS칼텍스가 수출한 CORSIA SAF 수출선이 일본 치바항 부두에 도착하여 일본 나리타 공항 항공유 탱크로 양하되고 있다. (사진=GS칼텍스)

■ GS칼텍스, 최초 시범 운항…HD현대오일뱅크, 최초 상업 판매 ‘기록’

GS칼텍스는 2023년 9월 핀란드 네스테(Neste)와 손잡고 SAF 시범 운항을 국내 최초로 실시한 데 이어 같은 해 일본 나리타공항에 CORSIA SAF를 수출하며 정유사 최초 상업 수출 사례를 만들었다. 네스테로부터 공급받은 100% SAF(Neat SAF)를 일반 항공유와 혼합해 ICAO 인증을 획득한 SAF다. 이를 통해 GS칼텍스는 SAF 정제뿐 아니라 국제 수송, 통관, 혼합·공급 인프라까지 확보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HD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사 중 최초로 2024년 6월 일본 마루베니사를 통해 SAF를 공급하며 일본 ANA 항공사에 상업적으로 판매한 바 있다. 해당 SAF는 기존 정제설비를 활용한 코프로세싱 방식으로 생산됐으며 이로써 HD현대오일뱅크는 생산-수출-상업 공급의 완성된 SAF 공급사이클을 최초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향후 2027년 이후 가동을 목표로 수소화 식물성 오일(HVO) 기반 SAF 전용 플랜트 건설도 검토 중이다. 이는 단기적 코프로세싱에서 벗어나 중장기 전용 설비 투자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생존 넘어 수출·밸류체인 도약 기회

각 사의 SAF 전략은 기술 수준과 공급 방식, 글로벌 연계 전략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석유 이후’를 대비한 정유업의 전환을 목표로 한다. 유럽은 2024년부터 SAF 2% 혼합을 의무화했고 2030년 6%, 2050년 70%까지 상향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2050년 전량 SAF 전환’이라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한국 역시 2027년부터 국내발 국제선에 대한 SAF 혼합 의무화를 천명했다. 이 같은 글로벌 정책 기류는 정유사들에게 ‘생존을 위한 전환 압력’이자 동시에 ‘선점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