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고령화 문제를 처음 접했던 것은 미국 유학 중이던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학교가 있는 블루밍턴까지 혼자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운전이 길어져서 잠시 쉬고 싶었지만 가는 길에 딱히 쉴 곳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벗어나 커피숍이나 공중 화장실이라도 찾았다. 국도로 이어지는 샛길을 20분 넘게 달렸다. 집 한 채 볼 수 없었다. 길을 잃는 게 아닌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할 즈음, 앞쪽 외딴 모퉁이에 흰색 병원 건물이 보였다. 여기라도.. 하는 마음으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병원 정문을 향했다. 그런데 입구에서부터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쳤다. 목발을 짚거나 한쪽 눈에 붕대를 감은 사람들, 의식을 잃은 채 병원 들것 위에 누워 있는 사람들, 계단 옆에 앉아서 지나가는 이들을 연이어 붙잡고 웅얼거리며 말을 거는 사람들, 막 수술을 마쳤는지 환부의 붕대에 피가 번진 채로 휠체어에 방치된 사람들. 모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이었다. 대부분 몸이나 마음이 온전하지 못해 보였고, 그 많은 환자들이 모여 있음에도 모두들 버림받은 듯 외로워 보였다. 결국 화장실 들르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 나와야 했다. 미국 유학생활 중 항상 이상하게 느꼈던 것이 주거지나 대학 주변에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날 그 궁금증이 풀렸다.

당시 미국은 재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로 골머리를 앓았다. 재정적자 규모는 메디케어 적자와 노인복지 지출의 합과 거의 일치했다. 의료비는 이미 천문학적 수준이었고, 보험 커버리지도 매우 협소했다. 은퇴자들은 평생 저축한 돈과 모기지로 산 주택으로 처음 몇 차례 큰 병치레를 넘길 순 있지만 병이 거듭되다 보면 재산을 탕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결국 연방정부 의료 지원대상이 돼 필자가 봤던 것 같은 격리된 노인 의료시설에서 여생을 보내야 했다. 치료를 하면 의료비는 정부가 대주니 어떻게든 목숨만 붙여 놓는 비인도적인 의료 행위가 흔하게 있었고 환자들은 가족들조차 찾아오지 않는 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조차 고령자의 삶의 질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 난제였다.

그때 이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고령화 문제는 전 세계의 이슈가 됐다. 단지 노인들의 삶의 질 문제만이 아니라 인구 전체가 늙어 가는 것이 극복하기 어려운 도전과제가 되고 있다. 젊고 유능하며 값싼 양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던 우리나라도 그 흐름을 피하지 못했다.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2024년 말 기준, 우리나라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어서며 초고령 사회가 됐다. 세계적인 장수 사회인 일본보다 우리의 고령화 속도가 2.5배 이상 빨랐다. 이대로 가면 2050년이면 7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게 된다. 15세에서 64세 사이의 소위 경제활동 인구 비중도 50% 이하로 떨어진다. 그때부터는 일하는 사람보다 피부양 인구의 비중이 더 많아진다. 이러한 급속한 고령화는 의료 기술과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기존 인구의 기대 수명이 늘어나고 동시에 새로운 인구의 진입을 의미하는 합계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더욱 심화된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2015년 1.239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2023년 0.721을 기록한 이후 작년 말에야 겨우 0.75로 반등했다. 고령화 대세를 뒤집을 수 없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래서 뭐가 문제란 말인가?

새로운 어린 세대의 진입이 줄어들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이 흔들리게 된다. 초등학교 교실이 비고, 마을과 도시의 주민이 줄고, 결국에는 인구가 현저히 준다. 고령 세대의 소비 성향은 젊은 층보다 낮다. 경기는 일상적으로 침체된다. 성장하지 못하고 쇠퇴하는 사회, 수축하는 공동체가 현실화된다.

또한 고령자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면서 일할 수 있는 인구는 감소한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연령대도 계속 높아지면서 육체노동과 같이 힘든 일을 할 사람이 사라진다. 노령으로 시력과 청력도 약해지면서 용접, 도금 등 소위 뿌리산업의 기술인력 공급도 부족하게 된다. 젊은 청년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의욕적으로 창업에 나서는 혁신활동도 부진해진다. 노동력과 기술인력의 부족과 혁신의 정체는 경제와 산업의 경쟁력 소실로 이어진다. 더이상 과거의 과감한 수출 드라이브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성장 전략은 불가능해진다. 고령자들이 기존에 저축한 자금으로 주식, 채권 등 각종 금융상품에 투자한 몫에서 지속적으로 소득이 발생해주지 않는다면 1인당 GDP가 줄어드는 사태까지 감수해야 한다.

고령자들이 늘면 그만큼 연금과 사회복지에 기대야 할 피부양자들도 늘어난다. 반면 경제활동을 통해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할 젊은 세대는 줄어든다. 지금 우리들의 연금을 내주고 복지지출의 재원을 대 주어야 할 우리 아이 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지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이러한 부담을 감당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 세대간 갈등과 사회적 불안이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

곤란한 것은 고령화와 젊은 세대의 일자리 부족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1950년대에 태어난 소위 단카이세대가 오랫동안 경기 호황의 과실과 좋은 일자리를 독점하면서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번듯한 직장도, 집도 없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결혼도 못하는 현상이 큰 사회 문제가 된 바 있다. 10여년 전에는 이런 젊은 세대들을 '신일본인'이라고 불렀는데, 이 호칭에는 사회를 제대로 경영하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에 대한 일본 기성세대들의 불신과 우려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구 고령화는 사회적으로, 의료적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한두 명의 환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세대 전체가 한꺼번에 늙고 병들어가는 일이 현실이 되는 사회인 것이다. 돌봄 인력 부족으로 건강한 노인이 병든 노인을 간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폭증한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이러한 집단적 고령화를 대처할 준비가 돼 있는지 걱정스럽다. 노인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경우, 삶의 질 문제에도 배려가 필요하다. 앞서 이야기했던 미국의 사례처럼 고령 환자들이 의료시설에서 외롭게 죽음을 기다리도록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 집에서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서 안락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줄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선택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우리 의료 시스템의 양적 보강과 질적 변화가 동시에 요구되는 상황이다.

사실 고령화의 문제는 과거에도 충분히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심지어는 진작부터 대비했어야 하는 사회적 과제였다. 매년 태어나는 신생아들의 숫자가 확인되면, 앞으로 20년 후, 40년 후 그 세대의 인구수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의 준비는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고령화 폭탄이 수년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이에 지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물리적, 제도적 인프라를 갖추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멀어 보인다. 앞으로도 노인 인구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 당연한 만큼, 근본적인 해법은 젊은 세대의 출산율을 높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로부터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외엔 사실상 없다.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령층들도 건강하고 일할 의지가 있다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 정년 연장, 고령층의 일자리 공유 확대와 유연 근무제 도입, 고령층 대상의 직업 재교육, AI와 같은 신기술 서비스를 활용한 고령층 근무지원 등 경제활동인구의 연령대를 확대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고령화는 시장의 판도도 바꾼다. 돌봄 로봇, 고령자 특화 의료서비스, 고령자 대상의 문화콘텐츠 등 유효수요를 두텁게 점유하는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시장이 계속 커질 것이다. 시장 변화에 맞추어 바로바로 기술을 개발하고 투자하지 못한다면 이 시장의 주도권을 놓치게 된다. 에이지테크는 우리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고령화가 초래하는 사회적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는 새로운 정부의 비전과 방향을 국민들 앞에 제시하고 평가받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이번에 생각도 못했던 위헌적 계엄으로 급작스럽게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면서 이러한 국정 비전에 대한 논의가 소홀하게 될까 걱정스럽다. 현 정치권은 비록 선거일까지 남은 시간이 충분치는 않지만 그 아까운 시간을 후보자 간의 정쟁으로 소모할 것이 아니라 고령화 대응과 경제위기 극복 등 시급한 국가 과제에 대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내고 해법을 찾는데 할애해 줄 것을 간곡히 바란다.


■ 박원주는 현재 중앙대 특임교수이자 삼성증권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를 나와 행시 31회로 공직에 들어섰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산업정책과 에너지, 자원분야를 주로 담당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청와대 산업통상자원비서관으로, 문재인 정부에선 특허청장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을 자처하는 경제수석 당시엔 주로 기획재정부나 교수 출신이 선임돼 온 관행을 깨고 산업부 출신으로 처음으로 내정돼 화제였다. 그는 한국 경제와 산업, ESG에 대해 글을 풀어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