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21일 국회서 열린 2025년도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10.21(사진=연합뉴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와 관련한 문제의식을 드러내자 연임 도전에 나선 금융그룹 회장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당국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맞춰 충실히 CEO 승계절차를 준비해 온 은행지주들로선 억울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난 21일 금융감독원 등을 대상으로 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BNK금융그룹 경영승계 절차와 관련,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 1일 구성된 이후 후보 접수를 16일까지 진행했지만 추석 연휴를 제외하면 실제 접수 기간은 영업일 기준 나흘에 불과했다”며 “차기 회장 후보를 뽑는 절차를 직원들에게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깜깜이’로 진행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의원은 이어 “지난번 회장 선임 때는 두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불과 며칠 만에 후보 접수를 마무리했다. 이사회가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절차적으로 특이한 부분이 많이 보여서 계속 챙겨보고 있다”면서 “형식상으로는 절차적 적법성이 있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수시 검사를 통해 바로잡겠다”고 답했다. 또한 그는 “금융지주사들의 연임이나 3연임과 관련해 내부 통제를 강화하라는 방침을 이미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BNK금융의 경영승계 절차 논란은 보기에 따라 애매한 부분이 있다. 현 빈대인 회장이 취임한 2023년 3월 당시에는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모범관행(Best Practice)’이 시행되기 전이어서 예전 관행대로 경영승계 절차를 진행했다. 박 의원이 말한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절차가 진행된 것에도 이런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2023년 12월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발표된 이후 은행지주들은 경영승계 절차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모범관행에서 제시된 30개 핵심원칙에 따라 CEO 후보군 관리·육성부터 최종 선정까지를 포괄하는 종합적·체계적 승계계획을 마련했다. CEO 임기 만료가 임박해서야 승계절차에 돌입하던 관행을 벗고 수시·상시로 내·외부 후보군을 관리하며, 절차 개시 시점도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이전으로 잡았다.
빈대인 회장의 임기 만료가 내년 3월이므로 BNK금융이 이달 1일 임추위를 구성해 승계절차를 개시한 것은 거의 ‘임기 만료 6개월 전’ 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찌보면 금융당국이 제시한 ‘최소 3개월 전’ 원칙보다 훨씬 모범적으로 승계절차를 진행한 것.
다만, 올해 추석 연휴가 대체공휴일 지정 등으로 열흘 가까이 이어진 점을 감안하면 굳이 해당 기간에 지원서 접수를 진행해야 했는지는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박 의원은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BNK금융이 후보 모집을 대외에 알린 시기도 임추위가 구성된 1일 무렵이 아니라 추석 연휴가 끝난 뒤인 13일이었다.
하지만 모범관행에서는 내·외부 회장 후보를 상시 관리토록 해 후보 접수 기간이 과거처럼 충분히 보장될 필요가 없는 측면도 있다. 내부 후보의 경우 계열사 대표 등 자체 관리 명단이 있고, 외부 후보는 공정성을 위해 헤드헌터 등 외부전문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다수여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공개모집의 중요도가 떨어진 측면이 있었다.
결국 박범계 의원은 ‘지배구조 모범관행’ 시행 이전 상황을 비교하며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는 질문을 한 것인데, 이찬진 원장은 질문의 오류를 바로잡기보다 ‘문제가 있다’는 쪽에 무게를 싣는 답변을 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 원장이 심화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이 원장은 “지주회사 회장이 되면 이사회를 자기 사람으로 채워 일종의 참호를 구축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구조는 오너가 있는 제조업체나 일반 상장법인과 다를 없게 돼 금융의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아울러 “이런 관행은 금융지주 지배구조 모범관행의 취지에 어긋나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원장이 문제를 제기한 ‘참호 구축론’ 역시 보기에 따라 애매한 부분이 있다. 지배구조 모범관행에선 은행지주 이사회 구성과 관련해서도 핵심원칙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분야, 직군, 성별 등과 관련해 집합적 정합성을 확보토록 하고 있고, 독립성 확보를 위해 사외이사 후보군을 상시 관리토록 하고 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현임 CEO가 사외이사 선출에 간섭하기 어려운 구조다.
물론,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 식사하고 의견을 교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임 CEO의 의중이 사외이사들에게 전달될 여지는 있다. 특히 현임 CEO 재임 기간 중 사외이사 교체 인원이 많을 경우 참호 구축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결국 은행지주 이사회의 독립성은 CEO의 윤리의식 및 의지를 토대로 그룹의 문화로 정착되는 수준까지 진행돼야 실효성 있게 작동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 전문가들 견해다.
이 원장이 2023년 12월 지배구조 모범관행 발표 이후 2년 가까이 진행된 은행지주들의 시스템 재확립 과정을 꼼꼼히 점검한 뒤 ‘참호 구축론’을 제기한 것인지 현재로서는 확인이 쉽지 않다. 다만, 금감원장으로 취임한 지 두 달밖에 지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과거 관행이 머릿속에 박혀 국감 답변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렇더라도 내년 3월 CEO 임기 만료를 앞둔 신한금융, 우리금융, BNK금융의 경우 바뀐 원장의 ‘참호 구축’ 인식을 빠른 시일 내 바꿔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전 정부에서 실세 원장으로 불렸던 이복현 원장이 지배구조 모범관행과 관련해 금융권에 엄청난 압력을 가한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며 “신임 이찬진 원장이 이런 부분을 무시하고 금융지주 인사에 개입할 경우 윤석열 정부와 다를 바 없이 관치금융 논란에 휩싸일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