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I가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판단까지 대신하는 시대가 열렸다. 공장 설비의 이상을 예측하고 인력 배치와 자재 발주까지 계산하는 시스템이 일터를 재편하고 있다.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감원 바람이 매서워지자 정부는 뒤늦게 전환정책으로 균형을 맞추려 하고 있다. 재교육과 디지털 격차의 벽은 여전한 가운데 인간과 기술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 산업의 새 과제로 떠올랐다.

■ ‘판단의 자동화’… 인간의 자리까지 침투

AI의 역할은 더 이상 자동화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불량률 예측, 설비 이상 감지, 납기 최적화뿐 아니라 인력 배치·자재 발주까지 계산하는 ‘판단의 자동화’ 단계로 진입했다. AI가 생산의 두뇌이자 조직의 관리자 역할을 겸하면서 고용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의 41%가 향후 5년 내 AI 확산으로 인력을 줄일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효율과 비용 절감이 절대적 과제다. 특히 스타트업에선 ‘적은 인원으로 매출을 극대화하는 구조’가 투자 유치 포인트가 되면서 인력을 ‘자산이 아닌 비용’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독일 루프트한자그룹은 AI를 통한 업무 효율화를 명분으로 2030년까지 4000명 감원 계획을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AI 기반 사업 재편을 이유로 신규 채용 축소 및 기존 인력 감축 방침을 사내에 통보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두 달간 1만5000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CEO 사티아 나델라는 “AI 중심 전환은 인적 희생을 수반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정부는 전환, 기업은 감축…엇갈린 속도

정부는 인력 감축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AI 인력 전환’을 내세우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AI 등 기술 변화와 저출생·고령화의 파고 속에서도 노동이 존중받는 ‘진짜 성장’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AI 기반 산업 전환과 인구 감소로 일자리 구조가 급변하고 있다”며 “AI 이해·활용·개발 중심 직업훈련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반응은 차갑다. 기업 인사담당자는 “정부 방향성은 맞지만 기업은 효율과 비용 절감을 더 중시한다”며 “전환보다는 구조조정이 먼저 실행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AI가 새로운 산업 경쟁력의 척도가 되는 상황에서 정책보다 시장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지적이다.

■ ‘그저 그런 자동화’의 함정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MIT의 대런 아세모글루 교수는 “AI가 모든 업무를 대체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저 그런 자동화(just automation)’”라고 지적한다. 기업의 단기 효율엔 도움이 되지만 사회 전체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는 이러한 자동화는 일자리 감소, 서비스 질 저하, 노동 소외라는 부작용만 남길 수 있다.

또 다른 수상자인 컬럼비아대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 역시 “AI 혁신은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AI를 통제하는 소수 기술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하고, 평범한 노동자와 개발도상국이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효율화의 속도가 사회적 포용을 앞지를 때 기술은 오히려 불안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 인간의 복귀 위한 ‘균형 알고리즘’

AI의 예측력이 높아질수록 인간의 판단은 설 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때가 오히려 ‘인간의 복귀’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결정을 보조하지만 그 결과를 해석하고 책임지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라는 의미다. AI의 도입 목적이 단순히 효율화에 그친다면 일터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균형 알고리즘’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