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 (사진=한화오션)
주요국이 해상 루트의 통제력을 강화하면서 글로벌 해운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홍해·수에즈 운하·인도양을 잇는 항로는 단순한 물류 통로가 아닌 경제·군사·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한국은 조선·해운·방산 산업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이러한 해양 질서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수주, 공급망, 수출시장 리스크가 동시에 확대되는 구조다.
■ 해상 루트 둘러싼 경쟁 격화
중국은 ‘일대일로(BRI·Belt and Road Initiative)’ 전략의 핵심축으로 해상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스리랑카 함반토타항, 파키스탄 과다르항,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항 등 주요 항만 투자를 확대하며 민간 물류망과 군사 보급망을 결합한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은 전 세계 17개 항만의 지분을 보유하거나 운영하고 있으며 129개 항만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이는 단순한 상업적 투자를 넘어 자국 선박의 항로 보장과 군사적 접근성 확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로 평가된다.
중국 해군은 인도양에 상시 순찰 전력을 두고, 디젤잠수함과 구축함을 통해 항로 감시망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해상 물류 통로를 넘어 군사적 영향력의 투사로 이어진다. 이러한 확장은 인도와 미국의 견제를 불렀다.
미국은 2028년까지 중국 소유·운항 선박에 순톤당 최대 140달러의 항만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 건조 선박에는 톤당 33달러, 컨테이너당 250달러가 적용된다. 미국의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정책은 조선업 재건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중국의 해상 영향력 억제 전략이다.
■ 미·중 갈등의 직격탄 맞은 한화오션
한국 조선·방산 기업은 이러한 시장에서 기회를 얻고 있다. HD현대, 한화오션 등은 중동 해군 현대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고부가가치 군함과 첨단 무기체계 수출 확대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지정학적 리스크와 발주 지연, 공급망 불확실성은 여전히 부담 요인으로 남아 있다.
한화오션은 최근 미·중 갈등의 영향권에 직접 들어섰다. 중국 상무부는 14일,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한화해운, 한화필리조선소, 한화오션USA인터내셔널, 한화해운홀딩스, HS USA홀딩스)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중국은 “한화오션이 미국 정부의 중국 선박 입항료 조사에 협조했다”며 반외국제재법을 근거로 제재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한화오션의 미국 내 법인은 중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의 조치는 글로벌 공급망을 통제하려는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이라고 비판하며 한화오션을 포함한 동맹국 기업 보호 의사를 밝혔다. 한국 정부도 산업통상자원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리청강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협상대표와의 화상회의에서 한화오션 제재 해제와 공급망 안정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상경제 경쟁은 군사력뿐 아니라 항만 운영, 해운 물류, 해양 에너지, 데이터망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조선·해운·방산의 복합 산업 구조를 바탕으로 시장 기회를 확대할 수 있지만 수주 환경이 지정학 리스크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수다. 정부와 업계는 공급망 안정, 리스크 관리, 시장 다변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