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건조한 대만 에버그린사의 1만 5000TEU급 컨테이너운반선 (사진=삼성중공업)
해상안보가 새로운 산업의 기준으로 부상하면서 업계는 생존법 찾기에 분주하다. 과거 물류의 수단이던 바다가 이제는 전략 자산의 전장이 됐다. 중동 분쟁, 후티 반군 미사일, 미·중 해양 패권 경쟁 등 지정학 리스크가 교역로를 뒤흔들자 각 사들은 신냉전의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시나리오를 가동하고 있다.
해상 안전과 전략 선박 수요가 맞물리며 산업의 무게중심도 이동 중이다.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의 3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1조5000억원 돌파가 유력하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 수주가 급증하며 1년 전보다 3배 가까이 개선된 성적표가 예상된다.
■ 삼성중공업, 해양·LNG로 수익성 복원
가장 먼저 실적을 발표한 삼성중공업은 3분기 매출 2조6348억원, 영업이익 2381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3%, 99% 증가한 수치다. 저선가 컨테이너선 비중이 줄고, 부유식 LNG 생산설비(FLNG) 등 해양 부문 매출이 늘어난 결과다.
올해 누적 영업이익은 5660억원으로, 상반기 영업이익률 6.3%는 업계 평균을 상회한다. 러시아 프로젝트 해지(4조8000억원 규모)로 생긴 공백을 FLNG 중심 신규 수주로 빠르게 메우며 올해만 약 50억 달러 규모의 선박을 확보했다. LNG 운반선(7척), 셔틀탱커(9척), 대형 에탄운반선(2척), 원유운반선(6척), 컨테이너선(2척), 해양생산설비 예비 계약(1건) 등이 포함된다.
다만 미국 진출 확대에 따른 인건비 리스크가 새 변수다. 현지 용접공 연봉은 한국의 두 배 수준(약 9000만원)에 달하며 근로시간 제한으로 생산성 저하 우려도 있다. 삼성중공업은 이에 대응해 자동화 설비와 공정 효율화 투자를 병행 중이다.
■ 한화오션 ‘방산 클러스터’ 조선 중추로
한화오션은 올해 상반기 매출 6조4372억원, 영업이익 630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33.6%, 1355.7% 급증한 수치다.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341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수주 실적은 LNG·컨테이너선 중심으로 8조원에 이르며, 한화그룹 편입 이후 고부가가치 선종 비중이 80%를 넘어섰다. 필라델피아조선소 인수를 통해 미국 시장 교두보를 확보했고, 호주 오스탈(Austal) 지분 인수로 글로벌 방산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 총 50억 달러(약 7조1625억원) 규모의 설비 투자(CAPEX)를 투입해 연간 20척 이상 생산 가능한 체제를 구축 중이다. 다만 대규모 투자에 따른 차입 부담, 잇따른 안전사고, 중국의 전격 제재가 복병으로 떠올랐다.
■ HD한국조선해양, 원가 압박 속 품질 경쟁 우위
HD한국조선해양은 현재 95척, 약 18조 원 규모의 선박을 수주하며 연간 목표의 70%를 달성했다. 자회사 HD현대중공업의 3분기 매출은 4조1323억 원(전년 대비 +15%), 영업이익은 4975억 원(+141%)으로, HD현대미포와 HD현대삼호 역시 각각 264%, 79%의 영업이익 증가가 예상된다.
호실적 이면에는 ‘원가 폭탄’ 우려도 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나들며 환변동 리스크가 확대됐고 자재·인건비 상승이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국산 선박이 중국산보다 10% 비싸지만 연비가 10% 더 뛰어나기 때문에 선택받고 있다”며 “중국과는 가격이 아니라 품질 경쟁으로 간다”고 강조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FOS(Future of Shipyard) 프로젝트를 통해 2030년까지 생산성 30% 향상, 공기 30% 단축을 목표로 ‘AI 조선소’ 전환을 추진 중이다. 미국 헌팅턴잉걸스·ECO 등과 협력해 미 시장 진입도 병행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조선산업 협력펀드(1500억 달러)가 본격 가동되면 현지 거점 자금 부담 완화 효과도 기대된다.
■ 수주 호황의 끝…지속 가능 경쟁력 선보일 시험대
국내 조선 3사는 모두 두 자릿수 수주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안정된 이익으로의 전환은 여전히 과제다. 고금리·고원가·고환율이라는 3고(高) 환경 속에서 AI, 친환경 기술, 해외 생산 거점 등 ‘지속 가능한 생산 경쟁력’ 확보가 다음 관문으로 꼽힌다.
중동 리스크, 미·중 패권, 러-우 전쟁, 해적 위협이 겹치며 바다는 단순한 물류 통로를 넘어 전략 자산으로 격상됐다. 바다 위 리스크는 군사와 에너지 그리고 물류와 산업 등이 동시에 얽히는 복합 변수로 조선·방산·해운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해상 안보 생태계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