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HMM)
코로나와 홍해사태(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 이후 글로벌 해상 네트워크가 재편되고 있다. 우회 항로가 일상화된 지금 해운업계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운임’이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공급과잉, 리스크 프리미엄, 글로벌 경기 둔화가 맞물리며 업계의 영업이익은 빠르게 줄고 있다. 이제 해운업의 경쟁력은 수익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 커진 리스크, 오르지 않는 운임
예멘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항로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이에 글로벌 선사들은 케이프타운을 도는 우회 노선을 택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운항일 증가와 연료비 부담은 커졌다. 문제는 리스크 확대에도 불구하고 운임이 더 이상 상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해운운임 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홍해 사태 여파로 연평균 2506.27을 기록하며 높은 수준을 보였으나 지난 3월에는 1200선까지 떨어졌다. 지난 5월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유예하면서 밀어내기 수출이 발생해 북미 항로를 중심으로 운임이 일시 반등했지만 이후 수요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다시 내림세를 탔다. 국내 K-컨테이너해상운임종합지수(KCCI)도 지난 6월 2800포인트에서 이달 22일 1698포인트로 급락했다.
■ 호황의 끝…해운 대형사도 수익 급감
세계 컨테이너 해상운임이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글로벌 선사들의 수익도 악화하고 있다. 글로벌 해운 분석기관 알파라이너는 “올해 남은 기간 주요 선사들이 영업손실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9개 주요 선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년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고, 상당수 선사는 코로나 이전의 수익 구조로 되돌아갔다. 상위 10개 선사 중 EBIT(이자·법인세 차감 전 이익)를 공시한 9개사의 올해 2분기 평균 영업이익률은 9.9%로, 2023년 4분기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국내 대표 해운사인 HMM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8471억원으로 전년 대비 19% 감소했다. 2분기 영업이익은 233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444억원) 대비 64% 급감했다. 증권가는 HMM의 3분기 매출을 2조6915억원, 영업이익을 3443억원으로 전망하며 각각 전년 대비 24.2%, 76.4%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폭발적 운임 상승에 의존했던 수익 구조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속도’의 산업에서 ‘내구력’의 산업으로
운임 약세가 장기화할 경우 해운사들의 이익은 급격히 줄어든다. 해운·물류 전문매체 JOC는 “미국의 대중 관세 충격으로 소매업체와 중소 수입업체의 주문이 줄어 12월까지 미국 수입량이 전년 대비 최소 20%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는 “하반기 수요 회복은 어려우며, 다음 반등은 내년 2월 중국 춘절 직전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이란과 이스라엘, 러시아와 유럽이 항로 위에서 맞서는 동안 해상 물류망은 신냉전의 전장이 됐다. 이 전쟁 속에서 해운업의 패러다임은 ‘속도’에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단기 호황에 기대던 시대는 끝났다. 지금 해운업은 수익을 내는 산업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견디는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