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2023년 12월 1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해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그 뒤로 홍성국 전 의원(왼쪽)과 김병욱 전 의원의 모습이 보인다. 두 사람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경제1분과 위원으로 참여해 경제금융 분야 국정과제를 도출했다.(사진=연합뉴스)
제22대 총선을 코앞에 둔 2024년 1월,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현역 국회의원 중 공천 배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34명 명단을 발표합니다. 저조한 법안 발의 건수, 높은 결석률, 사회적 물의 등 다양한 이유입니다. ‘반개혁 입법’도 그중 한 항목에 들어가 있습니다. ‘반개혁’에 해당된 여야 11명 의원 중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은 5명으로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았던 김병욱 의원(현 대통령실 정무비서관)도 포함됐습니다.
김 의원으로선 지역구(경기도 분당) 3선 도전을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겠지요. 곧바로 반박성명을 냅니다. 발끈한 경실련은 ‘본인의 입법 과실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라’며 장문의 재반박 성명을 냅니다.
경실련이 김 의원에게 사죄하라고 요구한 ‘입법 과실’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입니다. 2020년 12월 통과된 공정경제 3법 제·개정안을 경실련은 왜 ‘입법 과실’이라고 평가했을까요. 그리고 왜 김병욱 의원을 콕 집어 책임자로 지목한 걸까요.
지난해 22대 총선에서 낙선한 김병욱 전 의원(60)은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대표적인 ‘친기업’ 인사로 통합니다. 한양대 법대를 나와 쌍용그룹과 한국증권업협회(현 금융투자협회) 등에서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고, 벤처기업 CEO 이력도 있습니다. 자본시장과 실물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입니다. 게다가 국민의힘 텃밭인 경기도 분당구를 정치무대로 삼다보니 선거 때마다 ‘민주당은 반기업 정당이 아닙니다’를 외치며 표를 호소해야 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2002년 정치 입문 후 초선 의원이 되기까지 무려 14년이 걸렸습니다.
국회 입성 후 그는 민주당이 반기업 정당이 아님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줍니다. 20대 국회에서는 당내 혁신성장추진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활동했고, 21대 국회에서는 자본시장활성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특히 21대 국회 출범 직후 재선 의원으로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아 ‘공정경제 3법’ 통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공정위 전속고발권 등 여러 쟁점 이슈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일반지주회사의 CVC 소유 허용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습니다. ‘부작용이 우려되면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된다’며 수정 입법을 강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김병욱 의원은 상식을 벗어나 무리수를 둡니다.
CVC 등의 내용이 반영된 공정거래법 수정안과 관련, 정무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6명의 조정위원 가운데 정의당 배진교 의원을 포함해 3명의 위원이 반대해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위원장인 김병욱 의원이 배 의원에게 CVC 법안 배제를 약속하며 4대 2로 찬성 의결을 이끌어낸 뒤 정무위 전체회의에는 약속을 뒤집고 CVC 내용이 반영된 안을 상정합니다. 안건조정위에는 ‘정부안’을, 정무위 전체회의에는 ‘수정안’을 제출하는 꼼수를 부린 겁니다. 민주당은 국회법 상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지만 야당 의원들은 “여당 간사가 사기를 쳤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경실련은 이를 잊지 않고 있다가 3년 뒤 22대 총선을 앞두고 “동료의원 뒤통수 치기를 자행했다”며 김병욱 의원을 공천 배제 명단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럼에도 이재명 당시 당 대표의 절대적 신임으로 공천을 받아냅니다. 물론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와 분당에서 맞붙어 결과적으로는 3선 실패로 귀결됐지만 말이지요.
선거에서 떨어지면 힘이 빠질 법도 한데 김병욱 전 의원은 달랐습니다. 이른바 ‘7인회’ 결성을 주도한 원조 친명 정치인이다 보니 국회의원 배지 없이도 당 안팎의 영향력이 상당했습니다. 원외 인사로서 이재명 당 대표를 물밑에서 도우며 더불어민주당 집권플랜본부 총괄부본부장을 맡습니다. 불법 계엄 사태에 따른 조기 대선 국면에서는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경기도당 상임선대위원장과 함께 선대위 정책자문기구(성장과 통합)의 금융·자본시장위원장을 맡습니다. 여기서 마련한 ‘금융혁신을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동력 확보’라는 밑그림을 들고 대선 승리 후에는 국정기획위원회(경제1분과 위원)에 합류합니다. 사실상 정권 인수위원회 역할을 맡은 국정기획위에서 경제·금융정책의 큰 틀을 짜다 대통령실 정무비서관으로 발탁돼 현재에 이릅니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가 여타 정부와 다른 점은 123대 국정과제 중에서 12개의 중점전략과제를 별도로 추렸다는 점입니다. 경제 분야의 경우 진짜 성장(잠재성장률 반등), 코스피 5000시대, 인공지능 3대 강국, 에너지 고속도로 등 4대 전략과제가 핵심입니다. AI, 바이오, 에너지 등 미래전략산업을 육성해 잠재성장률을 올리면 코스피 5000시대가 활짝 열린다는 청사진입니다. 경제1분과 6명 위원 중에 정태호·오기형 의원과 김병욱·홍성국 전 의원 등이 주축이 돼 전략이 마련됐고, 그중에서도 당내 ‘경제·금융통’인 김병욱 전 의원의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미래전략산업에 대한 한시적 규제 철폐 등 ‘규제 전면 재설계’는 김병욱 전 의원의 평소 지론이 그대로 국정과제에 반영됐다는 전언입니다.
김병욱 전 의원은 2022년 당 강령에서 ‘재벌개혁’과 ‘금산분리 원칙’을 빼자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만큼 대기업 친화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당내 ‘글로벌 기업 경쟁력 강화 의원 모임’을 결성한 뒤 삼성, SK 등 재벌 기업들을 국회로 불러 규제 완화를 약속했습니다. 전경련(현 한경협)과 공동 세미나를 열어 ‘오너 경영’을 옹호하는 장면도 연출했습니다. 재벌개혁과 금산분리 DNA를 품고 있는 민주당 내에서는 비주류 의견에 가까웠지만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 들어 재벌 친화 정책이 당내 주류 의견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여기에는 2010년 성남시장 선거캠프 때부터 선대위원장을 맡으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던 김병욱 전 의원과 이 대통령의 인연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당 안팎에서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한편에선 이재명 정부의 대기업 규제 완화 기조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상황입니다. 김병욱 전 의원이 기를 쓰고 통과시킨 CVC 이슈만 해도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재계에서 요구하는 수준으로 규제가 완화될 경우 타인 자본을 통한 지배력 확대, 금융기관의 사금고화, 금융-산업간 시스템 리스크의 전이 등 각종 부작용을 막을 안전장치가 사라집니다. 지주회사가 재벌의 문어발 경영을 막는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는 자회사와 손자회사까지는 손쉬운 지배를 허용하되, 증손자회사부터는 100% 지분을 보유토록 해 확장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주회사에 CVC를 허용하면 손자회사도 문어발 확장이 가능한 길이 열립니다. 그것도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을 갖고 말이죠. 남의 돈으로 투자를 하면 금융인 것이고, 이를 통해 회사 지배권까지 획득하면 이는 곧 금산분리 원칙의 훼손을 의미합니다. CVC가 투자한 회사에 대기업이 계열사 일감을 몰아주고 총수 일가가 인수하면 경영권 승계에 악용될 여지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2020년 CVC 입법 당시 “일단 금산분리 원칙에 작은 구멍을 만든 뒤 향후 규제완화를 내세워 규제를 파기하려는 재계의 술수”라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재벌이 CVC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이유는 벤처캐피탈 활성화가 아니라 ‘문어발 확장 본능’이라면서 말이죠. 특히 ‘SK그룹 맞춤형 특혜’라는 의혹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생산적 금융’을 빼놓고 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을 논하기 어렵습니다.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서는 AI 등 미래전략산업 육성이 필요하고, 미래전략산업을 육성하려면 ‘생산적 금융’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여기까지는 크게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생산적 금융’을 위해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하고, 국민성장펀드의 성공을 위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왜 그러한지 가급적 편견 없이 몇몇 쟁점을 도마 위에 올려 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