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윗줄 좌측부터)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이선호 CJ 미래기획그룹장,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무, (사진 아랫줄 좌측부터)신상열 농심 부사장, 허진수 SPC 그룹 부회장, 허희수 SPC그룹 사장. (사진= 각 사)
유통가 오너 3·4세들이 그룹 내 요직을 맡으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고환율과 소비 위축에 따른 내수 침체와 해외 경쟁 심화 등 경영 환경이 복잡해진 가운데 젊은 리더들을 전진배치해 신사업 발굴에 주력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26일 롯데그룹은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 부사장을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 대표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신유열 부사장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이에 따라 신 부사장은 박제임스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와 함께 각자 대표를 맡아 그룹의 주요 신사업 중 하나인 바이오사업을 공동 지휘한다. 동시에 롯데지주에 신설되는 전략컨트롤 조직에서 중책을 맡아 그룹 전반의 비즈니스 혁신과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주도할 예정이다.
1986년 생인 신 부사장은 2020년 일본 롯데 및 롯데홀딩스에 부장으로 입사해 그룹에 첫발을 들였다. 2022년 5월에는 롯데케미칼 일본 지사에 상무보로 합류했다. 상무보가 된 지 7개월만인 같은해 12월 상무로 승진했다. 이후 1년 만인 2023년 12월 전무가 됐다. 신 부사장은 2023년 12월 상무에서 전무로, 지난해 11월엔 부사장으로 2년 연속 승진한 바 있다. 전무 승진과 함께 한국 롯데에서의 첫 보직으로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맡았다.
단순 대표 선임일 뿐 역할이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사측의 설명이지만 업계에서는 롯데 그룹이 바이오를 그룹의 주요 신사업 중 하나로 여기고 있는 만큼 오너 3세를 전면에 내세워 바이오에 주력하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
CJ그룹 역시 지난 18일 정기임원인사를 통해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실장을 미래기획그룹장을 겸임하도록 했다. 미래기획그룹은 주요 계열사의 중장기 성장 전략을 총괄하는 조직으로 그룹 전반의 신사업 방향성과 투자 전략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선호 그룹장은 CJ제일제당에서 지난 9월 지주사로 복귀했다. 지주사 CJ로 옮기면서 미래기획실장을 맡은 지 두 달만에 미래기획그룹장까지 맡아 경영 보폭을 확대한다.
이 그룹장은 미국 컬럼비아대 금융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2013년 CJ제일제당에 입사해 그룹 경영전략실과 CJ제일제당을 거치며 경영 경험을 쌓았다. 2022년 10월부터는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을 맡아 미래 성장사업을 발굴하고 글로벌 식품사업 확장을 주도해 왔다. 이 그룹장은 미래 먹거리 마련을 위한 그룹 차원의 신사업과 해외 진출 전략 구체화 및 재편을 진두지휘할 전망이다.
삼양라운드스퀘어도 최근 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2026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오너 3세 전병우 최고운영책임자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전 전무는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의 장남이자 창업주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의 장손이다. 전 전무는 1994년생으로 지난 2019년 삼양식품 해외사업본부 부장으로 입사했다.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하며 임원이 됐고 입사 4년 만인 2023년 10월 상무로 승진한 바 있다. 이번 승진은 불닭브랜드 글로벌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해외사업 확장을 견인한 실적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중국 자싱공장 설립을 주도해 글로벌 생산 기반을 마련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농심도 최근 정기 인사를 단행하며 신동원 회장의 장남인 미래사업실장 신상열 전무를 내년 1월 1일부로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신 부사장은 2019년 농심 경영기획팀에 사원으로 입사해 이듬해 대리로 오르는 등 빠른 속도로 경영 전면에 합류했다. 이후 경영기획팀 부장과 구매담당 상무 등을 거쳤고 지난해 전무로 승진하며 핵심 사업을 담당해 왔다.
SPC그룹 역시 오너 3세 형제가 나란히 승진했다. 허영인 SPC 그룹 회장의 장남 허진수 사장이 부회장으로, 차남 허희수 부사장은 사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허진수 부회장은 그동안 파리크라상의 최고전략책임자(CSO)와 글로벌BU(Business Unit)장을 맡아 파리바게뜨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며 해외 확장을 이끌어왔다. 올해 7월 출범한 ‘SPC 변화·혁신 추진단’ 의장을 맡아 그룹 쇄신 작업도 지휘 중이다.
허희수 사장은 비알코리아의 최고비전책임자(CVO)로서 배스킨라빈스·던킨 브랜드 혁신과 디지털 전환을 주도해왔다. 허진수 부회장과 함께 3세 투톱 체제를 형성하며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미래 사업 발굴에 나설 계획이다.
유통업계에서 젊은 후계자들을 핵심 보직에 전면 배치하는 흐름은 빠른 변화에 따른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내수 중심, 전통 제조 중심이었던 산업이 내수 둔화, 국제 원자재 가격 불확실성, 환율 변동 등의 압박 속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무게중심이 빠르게 옮겨갔다. 이에 따라 급변하는 환경을 읽고 글로벌 트렌드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경영 감각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 3·4세 세대교체는 단순 인사 이벤트가 아니라 글로벌 전환을 위한 체질 개선 과정”이라며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유통 환경에서 오너 3·4세들의 경영능력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