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세계 각국은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유동성 확대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넘치는 유동성과 당시 주류였던 플랫폼,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비대면 산업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벤처투자 시장 또한 사상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2022년 초, 팬데믹이 종식되자 기다렸다는 듯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유동성 회수가 시작됐다. 때마침 국내 거래소가 적자가 만연한 바이오산업을 겨냥하듯 기술특례상장 심사 기준을 강화하면서 벤처투자 시장은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그로부터 3년여 동안 지속된 벤처투자 시장의 혹한기는 지표상으로 2025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2026년에는 이 회복세가 과연 진짜 ‘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아니면 다시 한번 추위가 찾아올지 스타트업과 벤처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1~3분기 신규 벤처투자 규모는 9.8조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1%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벤처펀드 결성액도 9.7조 원으로 17.3% 늘어나 3년 만에 뚜렷한 반등을 기록했다. 특히 3분기 단일 분기 투자액이 4조 원을 넘기며 팬데믹 고점이었던 2021년 이후 처음으로 분기 4조 원 시대를 재개했다는 점은 상징성이 크다.

하지만 벤처투자 정보 플랫폼 더브이씨가 2025년 상반기를 조사한 자료를 보면 전체 스타트업 투자 건수는 455건, 금액은 2조 2403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37.6%, 26.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돈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낙관과 “혹한기는 여전하다”는 비관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분명 숫자만 놓고 보면 2025년 중후반기로 갈수록 시장의 회복세가 보이지만, 그 온기를 모두가 체감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최근 발간된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의 ‘스타트업 트렌드리포트 2025’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스타트업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를 묻는 항목에서 절반이 넘는 54.5%가 부정적으로 변했다고 응답했다.

(사진=스타트업트렌드리포트 2025)

아마도 많은 VC들이 초기 스타트업의 신규 발굴보다는 기 투자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후속 투자에 집중했고, 반도체·생성형 인공지능 등 특정 섹터의 대형 스타트업에 투자금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다 보니 시리즈A 이하 초기 스타트업들이 회복세를 체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6년 벤처투자 시장이 진정한 봄을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겨울이 지속될 것인지는 다음 몇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1. 금리 등 거시경제 환경

글로벌 금리 인하 기조가 형성되면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져 ‘위험자산 허용 범위’ 또한 넓어지기 때문에 벤처투자 업계에 유리하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나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위험자산 선호가 위축된다면 회복은 요원할 수 있다.

2. 상장·회수시장 활성화

미국처럼 대기업의 스타트업 M&A가 활발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VC들의 가장 확실한 회수 창구는 코스닥 상장(IPO)이다.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상장시장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VC들의 IPO를 통한 엑시트(Exit)가 활성화될 수 있을지가 2026년 벤처투자 심리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3. 민간 출자 활성화

정부는 벤처펀드 확대를 위해 모태펀드, 연기금·공제회 등의 출자 확대 방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간 정책펀드 규모가 작아서 벤처투자가 위축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핵심은 민간 출자분에 있다.

VC가 펀드를 결성할 때 정부자금인 모태펀드나 연기금 등이 전체 결성액의 100%를 출자해주는 경우는 없다. 일반적으로 50~60% 정도만 출자하며, 나머지 40~50%는 운용사(VC)가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한다. 과거에는 이 부분을 신사업 발굴에 관심 있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등에서 출자받아 매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대부분의 산업이 불황을 겪고 있고, 미·중 무역분쟁과 관세 리스크 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본업 유지에도 여력이 부족하다. 7~8년간 자금이 묶이고 불확실성이 큰 벤처펀드 출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모태펀드를 수주하고도 민간 출자분을 채우지 못해 GP 자격을 반납하는 VC들이 언론에 수차례 보도된 바 있다.

정부 직접 출자 비율을 늘리는 것도 좋겠지만, 민간 출자자에게 세제 혜택이나 각종 베네핏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출자 유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스타트업 창업자라면 아직은 ‘빙하기가 끝났다’는 희망찬 신호에 기대기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큰 경제 환경에서는 펀드 결성액이 늘었다 하더라도 출자자(LP)들이 보수적인 관점을 견지하기 때문에, 이 펀드를 운용하는 벤처캐피털(GP) 또한 보수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 시장이 여전히 ‘검증된 스타트업’에는 자금을 투입하되, 불확실성이 높은 초기 창업기업에는 차갑게 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분명 이 혹한기의 끝은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확실한 반등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속한 단계·섹터·비즈니스 모델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 위에서 자본 효율, 명확한 수익모델, 회수 가시성을 갖춘 팀만이 2026년이라는 새로운 사이클의 초입에서 진정한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모두가 따뜻한 봄의 초입에서 웃게 될 그날까지,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 모두 힘을 냈으면 좋겠다.


■ 유지윤 팀장은 현재 벤처투자회사(VC)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재직 중이다.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글로벌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LG상사(現 LX인터내셔널) 금융팀과 기획팀을 거쳐, 게임 개발 스타트업 플라이셔에서 사업팀장을 역임했다. 이후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커리어를 전환, 현재 기술 기반 초기창업기업 전문 VC인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다수의 벤처투자조합을 운용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