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역대 최초. 한국투자증권이 기록적인 수식어를 독식 중이다.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만 무려 1조9832억원. 키움증권(1조1426억원), 미래에셋증권(1조694억원), 삼성증권(1조451억원), NH투자증권(1조23억원) 경쟁사들은 이미 멀찌감치 밀어냈다. 증권가의 시선은 ‘그래서 올해 최종 스코어가 얼마냐’에 꽂혀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동원그룹 오너가 특유의 꾸준함과 치밀함을 무기 삼아 여의도 증권가에서 영역을 확장해온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다만, 모두 알고 있던 한투증권의 잠재력이 왜 하필 김성환 사장 취임과 함께 매직처럼 나타나는지, 조직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새삼스레 궁금해하는 시선 또한 늘고 있다. 김 사장은 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 직구부터 변화구까지...7년간 이어진 김남구의 ‘테스트’

지금은 ‘1등 한투’를 이끌고 있지만 김성환 사장 역시 증권업계에서 화려한 수식어로는 남부럽지 않다. 그가 여의도 증권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개막하던 2000년대 초반. 교보생명을 거쳐 동원증권(구 한국투자증권)에서 PF 전담부서를 ‘최초’로 만든 김 사장은 PF 1세대로 이름을 날렸다. 증권업계 ‘최초’로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도입하며 PF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던 그는 한때 ‘연봉킹’의 단골 인사이자 ‘초고속 승진’, ‘최연소 상무’, ‘최연소 전무’ 타이틀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입사 20년 만에 사장을 맡기까지 김 사장도 시장의 위기와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다만 그 어떤 상황에도 김 사장은 자신이 뛰는 그라운드에서 매번 1위였다. 사상 초유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 침체 앞에서 모두가 발을 뺄 때 김 사장은 ‘직구’ 대신 본부 직원들을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로 보내 산업단지 조성 관련 금융업무를 따내게 했다. ‘변화구’를 통해 업계 최강 타이틀을 지킨 셈이다. 한국투자증권이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직후에도 당시 기업금융(IB)그룹장이었던 그는 전열을 재정비하고 그룹 내 시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체제로 뒤바꿨다. 경쟁사에 밀리지 않도록 신발끈을 고쳐매야 했던 회사는 더 높은 목표치를 던졌지만 김 사장은 언제나 그랬듯 “충분히 가능한 숫자”임을 자신했다. 그해 성장률은 전년대비 65.4%. 사업 부문 중 가장 높은 성과로 회사를 안정권에 올려놨다.

다만 IB 전문가로 자리를 굳혀간다는 것은 김 사장의 강점인 동시에 분명한 한계이기도 했다. 브로커리지를 넘어 자산관리(WM) 시대로 증권업의 전환기를 감안했을 때 WM의 균형추를 맞추지 못한다면 그룹을 이끌 리더로서의 역량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을 개인고객그룹장으로 인사 발령낸 것은 어찌보면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에게도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2019년 개인고객그룹장으로 발령받은 김 사장은 하루 아침에 뒤바뀐 그라운드에서 헤맬 만했다. IB 전문가가 WM을 잘할 수 있겠느냐는 내부 직원들의 경계심도 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김 회장의 용병술은 이 때 역시 백발백중이었다.

“워낙 성과를 강조하고 날카로운 인상도 있다보니 직원들도 긴장감 같은 게 있었죠. WM을 모르는 사람이 와서 뭘하려고 할 지 걱정하는 건 직원들 입장에서 당연하니까요. 그런데 회장님의 인사 목적이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귀신같이 읽어내고 타게팅 능력도 워낙 좋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판을 직접 짜고 그 판을 딛고 새로운 계단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김 사장의 경쟁력 아닐까 싶어요.” 한투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개인고객그룹장을 맡은 김 사장은 전직원 면담부터 가졌다. 그리고 막연한 비전이 아닌 각자의 목표와 문제의식 등에 대해 묻고 자신의 방향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전달했다. 대대적인 WM 강화 전략을 시작했던 한국투자증권의 밑그림에 정확히 초점을 맞춰 그는 매년 고객자산 증가 목표치를 세웠고 조직은 끝내 모든 숫자는 달성시키고 말았다.

김 사장이 개인고객그룹장을 맡은지 3년 만에 한국투자증권의 개인고객 금융자산 규모는 정확히 두배(21.2조원 41.6조원)로 불어났다. 3분기 말 현재 81조원을 넘어서며 업계 최대 규모를 기록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든 것 역시 김 사장이었다는 데 대해 이견은 없다.

특히 기존 오프라인 지점을 중심으로 일부 거액자산가들에게만 판매됐던 발행어음 상품을 토스, 카카오 등 플랫폼 채널로 확대해 대중화한 것은 단순 한국투자증권의 자산 증가를 효과를 넘어 투자 시장 지형에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냈다.

(사진=2024년 1월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 취임식 모습)


2024년 1월. 김 사장은 한국투자증권 20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오른다. 야성과 공격성으로 대표됐던 스타일의 김 사장은 IB그룹을 떠나 무려 7년이라는 시간동안 김 회장이 던져준 관문들을 통과하면서 더 단단해지고 부드러워졌다. 회사 조직 전체를 이해하고 어떤 목표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고민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표를 갖고 있지만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언제까지 어떤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목표가 매우 명확하고 그것을 직원들에게도 상당히 자세하게 전달하는 스타일이에요. 내부 경영전략회의든, 전국 지점 순회든, 어느 자리에서나 직접 프리젠테이션(PT)을 통해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단계별 방향 및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종합투자계좌(IMA) 역시 지금까지 모든 진행과정에서 시기마다 필요한 것들, 직원들의 이해도와 준비 정도를 수시로 체크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이기는 습관을 갖게 한 것 같아요. 어떤 목표든, 절대 실패라는 변명을 고민하지 않고 이길 방법만 찾아냅니다.”

그런가 하면 정기적으로 갖는 내부 행사에선 직원은 물론 직원들의 가족들조차 한투의 일원임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말 그대로 ‘화끈한 영업맨’이 된다. 어떤 직원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작은 에피소드라도 모두 기록해뒀다가 다시 만났을 때 먼저 다가가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도 그의 강점 중 하나다.

■ 운칠기삼? 운삼기칠!

한국투자증권이 올해 역대급 실적을 내놓을 수 있던 데에는 분명 ‘운’도 따랐다. ‘오천피’를 향해 달리는 시장의 온기 덕에 한투증권 뿐 아니라 증권업계가 모두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가 영업이익 3조원을 넘볼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 혀를 내두른다. 한투증권을 향하는 타사 임원들의 시선은 경계심과 놀라움 그 중간 어디 쯤에 머문다.

“한투증권이 기본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균형이 좋지만 김성환 사장의 사업 분별력이나 추진력이 워낙 강하다보니 성장폭이 커진 거겠죠. 잘한 만큼 그 다음 목표치도 높아질텐데 리스크 관리를 지속하면서 단계별 성장세를 유지해간다면 경쟁사들과 격차가 더 커질 수도 있을 거에요. 어떤 의미에서든 한투를 지켜보는 눈이 많습니다.” -A사 임원

“사장직을 맡기까지 경험치가 다양했다는 게 가장 큰 강점일 겁니다. 몇년동안 WM쪽 경험을 쌓게 한 것이 오너의 통찰력이기도 하고 본인도 긴 호흡으로 조직 이끌 힘을 만들 수 있던 거죠. 본연의 경쟁력이 단단한 한투, 여기에 김성환 사장 체제는 서로에게 ‘윈윈’인 셈입니다.” -B사 임원

(사진=지난 7월 저스틴 뮤지니치 뮤지니치앤코(Muzinich & Co) 사장과 글로벌 투자 다변화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업을 논의하고 있는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


올해 글로벌 금융사 최고경영인(CEO)들이 한투증권의 문을 두드린 것만 10여차례에 달한다. 직접 미국, 홍콩 등 금융허브를 찾아 발품을 팔아야 했던 일은 어느새 과거가 됐고 이들이 파트너를 만나기 위해 여의도를 직접 찾고 있다.

눈에 띄는 건, 모든 미팅에서 김 사장이 별도의 통역 없이 직접 의견을 나누고 비즈니스 토론을 한다는 사실이다. 취임 전부터 지금까지 매일 일정 시간을 영어공부에 할애한 덕에 직접 영업맨으로 뛸 체력이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다.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 붐이 일었을 때는 중국어 능력시험(HSK) 공부에 뛰어들었고 IB그룹장 시절 프랑스 현지 금융사를 찾았을 때는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배운 기억을 떠올리며 “봉쥬르, 무슈”부터 외친 기세 덕에 지금도 현지 금융사들은 김 사장부터 찾는다. 사장실에 있는 개인 화장실 벽면에 붙은 영어 단어들과 영어 연설문을 보면 김 사장이 누구보다 치밀한 노력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취임사를 통해 ‘아시아 1위 금융투자회사를 만들겠다’는 큰 그림을 제안했던 김 사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제시한 “압도적 넘버원”을 한해동안 그대로 현실화했다.

“It’s just beginning.” 지금도 이 한마디를 입에 달고 자신감을 보이는 김 사장의 다음 목표는 뭘까. 한국투자증권, 그리고 김성환 사장에게 시장의 시선이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