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뷰어스 DB
방송사가 바쁘다.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쉴 틈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제작과 송출만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한데, 사건·사고를 일으킨 연예인들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뒷수습 하는데 정신이 없다.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제작진은 벼락을 맞은 셈이다. 해명과 동시에 화면에서 해당 연예인을 싹 다 지워야 한다. 화면에 걸리지 않게 다른 카메라의 장면만 사용한다던지, 부득이하게 지저분하더라도 모자이크를 쓴다. 드라마의 경우 새로운 인물을 섭외해야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대형 사건이 터지는 시기에는 출연정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실무진이 급박하게 사안을 처리하면 시간이 지난 후 KBS나 MBC는 심의팀과 협의 후에 출연정지 리스트를 작성한다. 타 방송사는 리스트를 작성하지 않으나 비슷한 협의는 거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출연정지 리스트가 작성되는 방송사의 규제 과정과 출연정지 리스트가 없는 경우에는 어떤 형태로 물의 연예인에 대한 조치가 이뤄지는지 살펴봤다.
◇KBS·MBC, 물의 연예인에 출연정지 리스트 작성
최근 마약을 투여한 사실이 밝혀진 박유천은 MBC로부터 출연정지 당했다. 마약을 투여한 바 없다고 기자회견까지 열었던 그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MBC는 지난 5월 자체 심의위원회를 열고 박유천의 출연정지를 공식화했다.
KBS는 미투 광풍으로 불거진 연예인들을 대거 출연정지 시켰다. 지난해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노웅래 위원장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윤택 감독과 배우 조덕제에게 출연 정지를 내렸다. 지난해 4월에는 배우 곽도원과 오달수, 조재현, 최일화, 방송인 남궁연, 김생민, 가수 김흥국 등에 출연 섭외 자제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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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출연이 정지되거나 섭외 자제 권고를 당한 연예인들은 오랜 기간 지상파 방송사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다. 대표적인 예로 배우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으로 징역형을 받은 이경영은 2001년 KBS2 ‘푸른 안개’ 이후 18년 만에 SBS 드라마 ‘해치’로 지상파에 얼굴을 비췄다. MBC는 규제를 풀어준 가운데 KBS는 아직도 출연정지 상태다. 이렇듯 한 번 국민정서에 반하는 죄를 저지르면 MBC와 KBS는 물론 타 방송사에서도 얼굴을 내밀기 힘든 처지가 현실이다.
방송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상파의 경우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등장했을 때 유관부서가 긴밀하게 협의한다. 관련 제작부서와 심의팀은 물론 홍보팀, 법무팀 등 다양한 부서의 구성원들이 모여 상황에 맞춰 협의를 거친 뒤 결정을 내린다.
KBS 커뮤니케이션부 권태일 팀장은 “비정기적으로 심의위원회를 열어 해당 연예인에 대해 논의를 하고 결정한다. 심의위원회 구성원이 누구인지나, 규제의 범위에 대해서는 내부 규정이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MBC와 JTBC 출신 여운혁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영상사업부문 사장은 “출연정지 여부는 주로 심의팀 직원들이 회의를 열고 결정한다. 거기서 결정되는 대로 룰을 지킨다”고 말했다.
◇SBS·CJ·종편, 리스트만 작성하지 않을 뿐 결과는 같다
국내 방송사 중 MBC와 KBS만 출연정지 리스트를 작성한다. SBS와 JTBC, TV조선, 채널A, CJENM 등 주요 방송사들은 출연정지 리스트를 따로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방송사 관계자들은 작성 유무만 다를 뿐 결과적으로는 같다고 입을 모은다.
각 방송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황급히 불을 끈 뒤에 각종 유관부서 관계자들이 협의를 거친다. 다만 공개적으로 출연정지 하겠다는 말만 하지 않을 뿐이다. 어차피 실무진에서 해당 연예인에 대한 조치를 과감하게 결정하는 편이어서 공식적인 의사를 내비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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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홍보팀 지연정 차장은 “SBS는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방송 출연을 하게 될 경우 출연자 규제 심의위원회 회의를 통해 출연 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라며 “출연자 규제 대상자 리스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현재 박유천 등 범죄 확정자의 경우 출연 여부는 생각조차 안 한다”고 밝혔다.
종편의 한 관계자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사안이 발생하면, 담당 제작진이 긴급하게 불을 꺼야 한다. 긴급 상황이라 하차 정도만 논의되지 출연정지까지는 논의되지 못한다. 출연정지는 일반적으로 마찬가지일 텐데 차후에 심의 팀을 중심으로 CP나 국장급 등 직책이 높은 사람들이 모여 위원회를 열고 결정한다”고 밝혔다.
종편 소속 한 PD는 “출연정지 리스트는 사실 유명무실하다. 실무진에서 알아서 다 처리가 된다. 죄질이 악하고 나쁘면 국민 정서에 반하는 정도도 심해 제작진이 출연시키지 않는다. 죄질이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사용 가치에 따라 제작진 판단으로 출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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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의 경우에는 방송사마다 각각 다르다. KBS는 가수가 물의를 일으키면 곡도 규제하는 대신 MBC는 음반에 대한 규제는 없다. 2014년 5월 병역 회피 관련 고의 발치로 출연정지를 당해 5년 간 방송활동을 중단했던 MC몽의 ‘내가 그리웠니’가 ‘쇼! 음악중심’에서 1위를 한 사례도 있다.
최근 SNS의 발전과 동시에 국민들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에 대한 규제도 심해졌다는 의견도 있다.
한 예능 PD는 “예전에는 규제가 느슨한 편이었다. 2010년이 넘어가면서 규제가 훨씬 더 심해졌다.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있는 과거 자료는 잠금 설정이 돼 내부에서 그냥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런 경우에는 담당 PD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자료화면에 나간다 하더라도 출연료가 지급되지 않는다. 방송 일주일까지만 재방송료가 지급된다”며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방송에 나가면 시청자들이 워낙 강하게 반발하기 때문에 제작진이 알아서 몸을 사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