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만년 저평가 늪 탈출이 가능해지는 걸까. 요지부동이던 지주사들의 주가가 최근 무더기로 수직 상승 중이다.
그간 지주사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대표 종목들 가운데에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해왔다. 대다수 종목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배를 밑돌며 가장 매력없는 섹터 중 하나였다.
그 배경에는 다수의 자회사가 중복 상장돼 있다는 점이 가장 컸다. 지난해 기준 국내 증시의 중복상장 비율은 18%에 달한다. 이는 일본(4.3%), 대한(3.18%) 등에 비해서는 물론 미국(0.35%) 대비 훨씬 높은 수준이다. 공정위원회에 따르면 지주회사의 평균 자회사 수는 6개, 평균 손자회사 수는 7개 수준이다.
한 운용사 대표는 “지난해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 이후에도 저평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불과 두달여 전까지만 해도 각 자회사 한 곳의 시가총액보다 지주사의 시가총액이 낮은 곳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원인이라는 비판과 함께 그만큼 가치 평가에 인색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의 랠리가 매섭다. 한화는 최근 한달간 수익률만 87.27%에 달한다. 두달간 118% 가량 뛰면서 파죽지세다. 지난해 이후 줄곧 상승세를 그려온 두산도 68.66% 오르며 두달간 110%를 웃도는 상승세다. HD현대는 한달간 49.44%의 성과를 거뒀고 SK(40.38%)와 LS(39.47%) 모두 급등 행렬에 동참했다.
지주회사에 대한 투자 시장의 관심은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진칼, HD현대, SK, 두산, LG 등을 담고 있는 'TIGER지주회사'는 이재명 정부 첫날 개인 순매수 규모만 140억원 이상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승세는 정책 기대 효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기업지배구조 투명성 향상 등을 강조하면서 상법개정 등을 포함한 증시 부양 의지를 명확히 해왔다. 이런 정책 흐름이 대표적인 저 PBR 섹터인 지주사 수혜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작용하면서 상승하고 있다는 것.
양지환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 후 상법 개정안 통과, 자사주 강제 소각, 지배구조 개편 및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통한 저PBR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일시에 반영되고 있다”며 “밸류에이션 리레이팅 요인이 지속된다면 지주사 주가는 향후에도 집단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성훈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상법 개정 등 거버넌스 개선 정책은 기업지배구조 문제로 할인받고 있던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해소시킬 수 있는 요인”이라며 “실제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재차 랠리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대차증권은 선호종목으로 한화, SK스퀘어, 현대지에프를 꼽았다. 김한이 애널리스트는 “양호한 상장지분가치에 각각 지분변동 불확실성 완화와 주주환원 증대가 기대된다”며 “SK와 CJ는 추가 자산매각 확정 및 시장 기대에 부합하는 지분소유 구조변화 추진 여부가 주가 등락에 관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9일 두산은 장중 10% 오르며 사상 처음으로 60만원대를 돌파했고 SK 6.95%, LS 3.88%, 한화 2.65%, HD현대 2.71% 등(오전 10시 30분 기준) 대다수 지주사 주가가 상승폭을 확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