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는 2023년 1월 '은행주 저평가 해소 캠페인'을 벌였다.(자료=얼라인파트너스)


“우리나라 은행주들이 장부가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시가총액으로 거래되어 온 주된 요인은 바로 비효율적인 자본배치와 부족한 주주환원입니다. 주주들의 직접 참여를 통해 은행주 가치 정상화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이하 얼라인)가 2023년 1월 ‘은행주 저평가 해소 캠페인’을 시작하며 강조한 내용입니다. 캠페인이 성공할 경우 주가가 2배 이상 오를 수 있다며 주주들의 행동을 독려했죠. 당시 캠페인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각은 ‘반신반의’보다는 ‘견강부회’에 가까웠습니다. 은행 주식을 사서 100% 수익률을 달성한다는 것이 꿈같은 얘기라고 본 것이죠.

그런데 2년 반이 지나 꿈이 현실이 됐습니다. 2022년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29일부터 지난 9일까지 국내 상장 7개 은행주 주가 상승률은 KB금융 128.2%(11만700원), 신한지주 71.6%(6만400원), 하나금융지주 84.5%(7만7600원), 우리금융지주 77.5%(2만500원), BNK금융지주 73.1%(11250원), IM금융지주 62.8%(11380원), JB금융지주 140.3%(18960원)입니다. KB금융과 JB금융은 ‘주가 2배’를 훌쩍 뛰어넘었고, 나머지 은행주들도 근접해 가고 있습니다.

당시 얼라인의 진단과 처방은 명쾌했습니다. 국내 은행주가 양호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해외 은행주 대비 극심하게 저평가된 원인은 ‘비효율적 자본배치’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 은행들은 2017~2022년 RWA(위험가중자산) 성장률이 연평균 3.1%인 데 반해 국내 은행들은 8.3%에 달했습니다. 이는 1년간 벌어들인 순이익을 해외 은행들은 주주환원에 쓴 반면, 국내 은행들은 대출 확대에 썼음을 의미합니다.

얼라인은 국내 은행들도 수익이 발생하면 본업(여신)에는 적정 수준만 재투자하고 나머지는 선진국 은행들처럼 주주환원에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자본건전성 지표인 CET1(보통주자본) 비율이 당국의 규제 수준(시중은행 10.5%, 지방은행 9.5%)을 넘어서면 단계적으로 주주환원 규모를 키우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연간 배당성향을 최소 30%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남는 이익금으로 자사주 매입·소각을 병행하면 극심한 저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금융지주 입장에서도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주가 오르는 게 반갑지 않을 리 없을 테니까요. 사실 은행지주 경영진은 배당,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펼치고 싶어도 당국 눈치 때문에 하지 못한 측면이 강했습니다. 당국은 외환위기의 트라우마와 국부유출 논란 등으로 주주환원에 쓸 돈이 있으면 자본을 더 쌓고 장사나 더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를 은행에 보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은행지주의 평균 PBR(주가순자산비율)은 약 0.3배로 만성 저평가 상태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얼라인 캠페인 전후로 자본시장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복현 당시 금융감독원장은 애널리스트와 만난 자리에서 은행지주의 배당 정책에 당국의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습니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또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냅니다. 말로 그치지 않고 이듬해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등 본격적인 주주환원 시대를 열었습니다. 은행은 더 이상 당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저마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밝히며 주주환원에 적극 나섰습니다.

얼라인은 마치 미래를 예견한 듯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캠페인을 펼쳐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습니다. 얼라인의 펀드 순자산 총액은 2021년 904억원, 2022년 2329억원, 2023년 4336억원, 2024년 7570억원 등 3년 만에 8배 넘게 불어났습니다. 최근 은행주 주가 급등 등으로 순자산이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금융투자협회에 공시된 펀드 설정액(납입자금)이 3639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얼라인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은 버크셔 해서웨이가 부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란 말이 여전히 귓가를 맴도는 것 같은데 누군가는 국장에서도 큰 수익을 거둡니다. 터무니없는 비상계엄 사태에도 국내 은행지주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흔들림 없이 진행된 덕이겠지요. ‘가장 비관적일 때가 최고의 매수 기회’라는 증시 격언을 다시 곱씹게 됩니다.

자료=얼라인파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