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계기준원(원장 이한상, 사진)은 7월 16일 생명보험사의 관계사 주식 회계처리 관련 2가지 쟁점사항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국내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포럼을 개최했다.(자료=한국회계기준원)

“이 모든 소란이 서초딩, 삼무원으로 비하되는 삼성전자 사업지원TF의 밸류업 헛발질에서 비롯된 것이니, 어른답게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워야 할 것입니다.”

서초딩은 삼성전자 본사가 위치한 ‘서초동’과 초등학생을 비하한 ‘초딩’의 합성어입니다. 삼무원은 ‘삼성전자’와 ‘공무원’의 합성어로, 삼성전자 조직의 관료주의적 문화를 비판하는 표현입니다. 사업지원TF(사장 정현호)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비서실(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 계보를 잇는 삼성전자의 핵심 부서입니다.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KAI) 원장은 지난 16일 주최한 ‘생명보험사의 관계사 주식 회계처리’ 포럼에서 삼성전자 사업지원TF에 ‘자기가 싼 똥은 스스로 치우라’고 권고(?)했습니다. 지금부터 이 원장이 왜 이렇게 원색적인 표현까지 동원해 가며 삼성그룹을 책망했는지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 이한상 KAI 원장 "삼성전자가 싼 똥, 스스로 치워야"

1969년 1월 13일 설립된 삼성전자는 불과 10여 년 만에 가전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막대한 자본을 요구하는 전자산업의 성장을 위해 이병철 회장은 계열사 역량을 총동원했습니다. 그룹의 금고 역할을 한 삼성생명 역시 보험계약자의 보험료가 모이는 족족 삼성전자로 보내 힘을 보탰습니다. 그 결과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약 5억800만주를 갖게 됐습니다. 당시 취득 원가는 5444억원에 달합니다. 1970년 정부의 한 해 예산이 4280억원이었으니 당시 삼성생명이 얼마나 큰 금액을 삼성전자로 보낸 것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만일 삼성전자가 망했다면 삼성생명의 보험계약자들도 약속된 보험서비스를 제대로 받기 어려웠을 겁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삼성전자는 승승장구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문제는 1970년대의 경우 유배당 보험상품만 팔았다는 점입니다. 유배당 보험은 계약자가 무배당 보험보다 높은 보험료를 납입하는 대신, 보험사의 자산 운용 결과 이익이 발생할 경우 보험금 외에 추가적인 자산운용 수익을 배당받기로 약정한 상품입니다. 삼성생명이 유배당 보험상품 보험료를 삼성전자에 투자해 큰 성과가 났으니 보험계약자들에게 투자이익을 나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팔지 않아 이익 난 게 없으니 나눌 것도 없다’는 입장을 40년 넘도록 고수해 왔습니다. ‘총수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하에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지배주주의 지배력 유지를 위한 핵심 연결고리였기 때문에 절대 팔 수 없는 주식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렇다면 약 138만명(2022년 기준)에 달하는 유배당 계약자의 권익(미실현평가이익)은 재무제표에 어떻게 반영해야 할까요. 자본으로 반영해야 할까, 부채로 반영해야 할까. 삼성생명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을 판 적이 없어 사실상 자본 역할을 해왔으니 자본으로 반영하고 싶어 합니다. 반면, 유배당 계약자는 보험계약상 권리가 명확하니 회사가 미래에 지급해야 할 부채로 인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입니다. 2010년 삼성생명 상장 당시 양측이 상장 차익을 두고 갈등이 첨예해지자 금융당국은 ‘계약자지분조정’을 지렛대로 삼아 수습에 나섭니다. 매도가능증권의 평가손익과 연결된 부채를 당기손익이 아닌 기타포괄손익으로 처리하도록 지도한 것입니다. 자본 항목인 기타포괄손익으로 처리하되 부채 성격을 명확히 규정한 일종의 하이브리드 절충안이었습니다.

삼성생명이 기타포괄손익으로 반영 중인 계약자지분조정 배부액. 2023년 10조4332억원에서 지난해 7조2466억원으로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계약자지분조정 배부액이 변동하는 것은 삼성전자 주가와 유배당 계약인원이 주요 변수인데 한때 15조원까지 측정됐다가 이후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유배당 계약자가 사망하면 삼성생명의 배당의무는 사라져 앞으로 25년 정도만 지나면 계약자가 거의 다 사망해 계약자지분조정은 0으로 수렴할 것으로 추정된다.(자료=삼성생명 사업보고서)


■ 금융당국, '계약자지분조정' 지렛대로 갈등 조정

그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논란은 2023년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시행을 앞두고 다시 한번 쟁점으로 부상합니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제정한 국제회계기준(IFRS)은 총 41개의 기준서를 갖고 있는데, 17번째 기준서인 IFRS17은 보험계약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존 IFRS4를 대체한 IFRS17의 주요 특징은 ‘보험부채의 시가평가’, ‘보험수익의 발생주의 인식’으로 요약됩니다. 용어는 어렵지만 배경을 알고 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IFRS4 체제에서 보험사들은 자산과 부채의 평가방법이 달랐습니다. 자산은 시가(공정가치)로, 부채는 원가(취득가격)로 평가한 것이죠.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산과 부채 간 괴리가 커지는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보험수익도 현금주의로 인식하니 보험금 지급이 적은 계약 초기에는 이익이 많이 잡히는 등 계약 구간별 이익이 왜곡되는 문제점이 노출됐습니다. 그래서 IFRS17에서는 시가평가(↔원가평가)와 발생주의(↔현금주의)를 원칙으로 삼은 것이죠.

삼성생명은 새 회계제도가 도입되는 김에 계약자지분조정(작년말 기준 7조2466억원)을 아예 자본으로 돌리는 작업을 꾀합니다. 삼성전자 주식 취득 목적을 ‘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꾸고, 보험부채를 ‘0원’으로 계상하려 했던 것이죠. 매각계획이 없으니 나눠줄 이익도 없고, 따라서 부채도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2022년은 주가하락과 금리급등으로 자기자본이 급감해 자본확충이 절실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행에 옮겨지진 못합니다. 당시 한국회계기준위원회 비상임위원이었던 이한상 고려대 교수(현 KAI 원장)가 삼성생명의 이런 계획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계약자지분조정을 부채에서 자본으로 전환시키면 유배당 계약자들의 권리 침해를 공개적으로 천명해 사회적으로 큰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말이죠. 이에 삼성생명은 금감원 질의를 거쳐 기존 회계를 유지하기로 최종 결정합니다. 금감원이 “보험부채 반영이 타당하지만 예외 조항을 적용해 IFRS17 체제에서도 계약자지분조정을 계속 부채로 표시할 수 있다”고 적극 중재한 결과입니다.

다만, 예외 조항(회계 일탈)이 적용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었습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팔지 않아야 합니다. IFRS17 체제에서 계약자지분조정만 IFRS4를 적용했는데 삼성전자 주식을 팔면 보유 중인 지분은 IFRS4, 매각한 지분은 IFRS17로 회계처리가 되는 이중 적용의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삼성생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의 매각 계획이 없다고 밝혀 왔고, 앞으로도 매각 계획이 없을 것이라 굳게 믿었기에 ‘일탈 회계’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IASB에서 ‘한국이 IFRS17 완전 적용 국가가 맞느냐’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가 최우선 과제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문제가 커져 책임져야 할 상황이 두려운 금감원에게는 미봉책이나마 일탈 회계가 훨씬 나은 선택지였습니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상속세 납부 스케줄 및 지분 매각 현황(자료=DS투자증권)


■ 삼성그룹은 왜 논란을 자초했을까

하지만 지난해 삼성전자 주가가 급락하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해 10월 6만원이 깨졌고, 11월에는 5만원마저 무너집니다. 전영현 부회장은 긴급히 이사회를 열어 주주가치 제고와 주가 안정 등을 목표로 총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1년간 분할 매입하겠다고 발표하며 주가 추가 하락을 막습니다. 1차분인 3조원은 지난해 11월 18일부터 올해 2월 17일까지 장내 매수돼 대부분 소각됐습니다.

삼성전자 주가는 총수 일가의 상속세(약 12.6조원) 납부와도 긴밀히 연계돼 있습니다. 홍라희 여사, 이부진 사장, 이서현 대표 등 고 이건희 회장의 부인과 딸들은 상속세 금액이 너무 커 삼성전자 주식담보대출을 활용해 2021년부터 6년에 걸쳐 나눠 내고 있는데 삼성전자 주가가 5만원대로 떨어지면 담보비율 유지에 문제가 생깁니다. 삼성전자 주식을 직접 매각한 규모(약 4조원)도 상당해 총수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5.45%에서 최종 4.86%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럴 때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게 되면 주가 상승 효과 외에 총수 일가의 지분율 회복, 담보비율 유지라는 부수적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일석삼조의 조치였습니다.

삼성전자 주가 급락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밸류업(주주가치 제고) 발표를 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연쇄적인 나비 효과가 발생합니다.(관련 기사 : 삼성그룹 밸류업의 나비효과, 2025년7월2일) 금융회사는 금산법에 따라 비금융계열사 주식을 최대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습니다. 이에 삼성생명(8.51%)과 삼성화재(1.49%)는 삼성전자 지분을 정확히 10%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자사주 3조원어치를 소각하면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율이 자동으로 10%를 넘어 초과 분량 만큼(약 3000억원) 주식을 매각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동시에 삼성전자 주식을 팔았다는 점입니다. 삼성생명이 일탈 회계를 유지하려면 삼성화재만 삼성전자 주식을 팔았어야 했는데 삼성생명도 IFRS4 시절의 관행대로 같이 팔아버린 것이죠. 이한상 원장은 포럼에서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솔직히 저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사업지원TF에 ‘일탈회계 이슈가 있으니 삼성화재만 주식을 팔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정현호 사장이 이를 수용했으면 KAI의 ‘삼성생명 포럼’은 개최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는 일탈회계 이슈를 놓쳤거나 가볍게 여겨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이한상 원장이 사업지원TF에 ‘자기가 싼 똥은 스스로 치우라’고 일갈한 이유입니다. 이 원장은 “제 문제 제기는 개인적 차원의 ‘기분 나쁘다’, ‘사과해라’가 아니라 회계 제도를 훼손하려는 자들은 자본주의의 적이기에 시스템 방어 차원에서 경고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탈회계의 전제를 스스로 무너뜨린 만큼 삼성생명이 이번 반기보고서에 계약자지분조정의 일탈 복귀를 반영하지 않으면 KAI가 가진 권한으로 복귀를 강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한상 원장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사업지원TF의 무능함을 공개 질타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재용 회장은 분노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는 과연 분노할 수 있을까요. 이재용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고 이건희 회장이 승계 초기 겪었던 것처럼 공고하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왕권보다 신권이 더 강한 게 현실입니다. TF 지원 없이는 첩첩산중의 난관을 뚫고 나가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실수이든, 무능함이든 현재로서는 덮고,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IFRS17은 보험계약, IFRS9은 금융상품과 관련된 회계 규정이다.(자료=보험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