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조감도 (사진=한수원)
■ 원전 없는 국정과제, 화려한 선언 속 비어 있는 전력
정부가 출범 당시 내세운 ‘에너지 전환과 산업 혁신’의 청사진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차세대 산업 육성을 강조하며 국가적 역량을 모으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은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인프라 특히 전력 공급 전략은 여전히 공백 상태다.
정부는 ‘진짜 성장’을 경제정책의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3·3·5’ 목표를 제시했다. AI 3대 강국 도약, 잠재성장률 3% 달성, 국력 세계 5강 진입 등을 위해 데이터센터·반도체 단지 등 초대형 전력 소모 산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하면서 원자력 업계의 기대감이 커졌다.
후보 시절만 해도 원전의 필요성을 보조적 차원에서 인정했던 만큼, 업계는 새 정부에서 원전 생태계 회복과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에 대한 최소한의 언급을 기대했다. 하지만 국정과제 어디에도 원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 체코 원전 ‘호구계약’ 논란…한수원 존립 마저 ‘휘청’
여기에 최근 체코 신규 원전 수출 과정에서 불거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WEC) 간 불공정 계약 논란은 불길한 신호를 더한다. 50년에 걸친 ‘호구 계약’이라는 비판 속에 공공기관 통폐합 논의로 한수원의 존립 문제까지 겹쳤다.
정부는 원전 대신 ‘재생에너지 고속도로’를 전면에 내세웠다. 서해안 풍력·태양광을 수도권으로 끌어오는 HVDC(고압직류송전)망 구축, RE100 산업단지 조성 등이 핵심이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송전망 포화와 주민 반대, 높은 단가가 발목을 잡고, 수소 기반 전력·산업 인프라 구상은 상용화까지 시간이 걸린다. 전력 다소비 업종을 육성하면서 안정적 전력 공급 방안은 빠져 있다는 점에서 열심히 쓰여진 오답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정의로운 전환’을 강조했지만 구체적 대책은 빠졌다. 2040 탈석탄 공약은 사라졌고, 석탄발전 단계적 폐쇄에 따른 노동·지역사회 전환 지원도 언급되지 않았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용인 반도체 송전망 갈등 같은 현안조차 외면했다”며 “보고서에는 정의로운 전환의 실체가 없다”고 꼬집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 (사진=연합뉴스)
■ 원전 뺀 에너지 전략, 과연 정의로운가
‘에너지 고속도로’는 지역 반발과 이해 관계자들의 대립을 키우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장거리 송전망 확충은 지역 착취를 가속한다”고 지적했고, 플랜1.5도는 “수도권 집중형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분산형 전력망 대신 수도권 중심 대규모 송전 방식은 지역 갈등만 키운다는 것이다.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은 AI·반도체 초강국이라는 장밋빛 구호 뒤에 전력 공백이라는 치명적 모순을 안고 있다. 원전은 공백, 석탄 감축은 후퇴, 재생에너지는 지역 반발과 계통 제약에 막혀 있다.
전력 인프라가 부실하다면, AI·반도체 산업 육성의 청사진은 결국 전력 공백 위에 세운 신기루일 뿐이다. 에너지 전환의 적기를 놓친다면 국가 경쟁력은 근본적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책임은 언젠가 국민의 요구 앞에서 현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