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 생겼지만 감축 효과 ‘無’

2015년 출범한 탄소배출권 거래제(K-ETS)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애초에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기업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자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시행 10년, 감축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유상할당 확대 등 제도 개편에 나섰지만 산업계는 비용 급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업들은 그동안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수천억 원대의 이익을 챙기며 ‘무늬만 감축’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9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립한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했다. 제1차(2015~2017), 제2차(2018~2020) 계획기간을 거쳐 현재 제3차(2021~2025) 계획기간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GIR)에 따르면 산업 부문 탄소 배출은 오히려 0.5% 늘었고, 배출권 가격은 2020년 초 톤당 4만 원대에서 2023년 8400원으로 급락했다. 거래 회전율 역시 EU ETS의 1/100에도 미치지 못했다.

■ ‘무상할당’이 만든 현금성 자산··발전공기업에 팔려 국민 부담 전가

자료=플랜1.5 고장난 배출권거래제, 쟁점과 대안

문제는 제도의 설계다. 정부는 산업계 충격을 줄인다며 배출권의 90% 이상을 무상으로 나눠줬다. 그러나 이는 기업들의 감축 노력을 유도하기보다 배출권을 ‘현금성 자산’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기후환경단체인 플랜1.5가 내놓은 보고서 ‘고장난 배출권거래제, 쟁점과 대안’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들은 남는 배출권을 시장에 매각해 수익을 챙겼다. 제1차 및 제2차 계획기간에 환경부가 기업들에게 할당한 배출권과 조기감축실적, NDC 변경에 따른 추가할당, 배출권 이월 및 차입, 배출경계 변경에 따른 보너스 배출권 확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산업 부문의 배출권 초과 수익은 5643억으로 추산된다.

플랜1.5는 1~2차 계획기간 동안 포스코 1175억원, 쌍용씨앤이 605억원, 삼성디스플레이 569억원, 성신양회 428억원, 삼표시멘트 368억원, GS칼텍스 264억원, SK에너지 247억원의 수익을 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기업은 탈탄소 투자가 아닌 배출권 매각을 통해 현금을 창출하며 ‘특혜성 보조금’ 성격의 자산처럼 활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의 잉여 배출권 대부분을 한국남동발전 등 5개 발전공기업이 구매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회피, 전기요금에 배출권 구매비용 전가 등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도 지적됐다. 잉여 배출권을 사들인 발전 공기업은 석탄발전 비중을 줄이는 대신 값싼 배출권으로 규제를 이행했고 구매 비용은 한전 정산을 거쳐 전기요금에 전가됐다. 결국 국민이 비용을 떠안는 구조다.

■ 기업 반발, 기둑권 저항인가…개선 불가피

최근 정부가 유상할당 확대 계획을 발표하자 산업계는 “원가 급등으로 수출 경쟁력이 위협받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금의 반발은 그간 무상할당으로 누린 특혜를 지키려는 기득권 방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감축 부담을 회피한 대가를 이제 정부가 정상화하려 하자 이를 ‘산업 위기’로 포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K-ETS 신뢰 회복과 탈탄소 투자 유인을 위해 유상할당 확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EU는 발전 부문에 100% 유상할당을 적용하면서 보조금과 연계해 기업 충격을 줄이고 있다. 한국도 유상 확대와 함께 전기요금 보조, 기후대응기금 재투자 등 보완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제언이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