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이노텍 베트남 V3 공장 전경 (사진=LG이노텍)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나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동남아·인도에서 한국 기업들이 마주한 현실은 단순한 ‘기회의 땅’이 아니다. 임금 급등, 인프라 부족, 정치·노동 리스크가 얽히며 탈중국 전략의 시험대로 떠올랐다.

■ 포스트 차이나의 교두보···넓어지는 현지 무대

LG이노텍은 베트남 하이퐁에 ‘V3 신공장’을 완공, 카메라 모듈 생산 능력을 2배 확대했다. 보급형 제품을 베트남에서, 고부가 제품은 한국에서 만드는 이원화 전략으로 원가경쟁력과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동시에 노린다. 특히 애플의 ‘탈중국’ 행보 속에서 중국 부품사의 점유율을 일부 대체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LS에코에너지·대한전선은 베트남을 거점으로 아세안 전력 인프라 시장을 공략 중이다. LS는 페트로베트남과 합작해 HVDC 해저케이블 공장을, 대한전선은 호치민 인근에 400kV급 초고압 케이블 공장을 건설한다. 데이터센터 확대와 재생에너지 확산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맞춰 장기 성장 기반을 다진 셈이다.

포스코는 호주서 광산 투자를 통해 원료 자급과 장기 공급망 확보에 나섰다. 철광석·석탄 수급 안정과 현지 내수시장 진출을 동시에 노린다. 한화큐셀 역시 브라질 태양광 모듈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넓히고 있다. 풍부한 일조량과 정부의 신재생 확대 정책이 맞물리며 시장 잠재력이 크다.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이후 멕시코는 전기차·배터리 기업의 전략적 거점으로 급부상했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멕시코 생산라인 확충을 검토하며 북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낮은 인건비와 USMCA 혜택 덕분에 ‘제2의 디트로이트’로 불린다.

에코프로가 투자한 인도네시아 제련소 (사진=에코프로)

■ 빨라질수록 튀어나오는 돌발 리스크···기대와 덫 공존

하지만 기업의 진출이 가속화되는 만큼 각국이 안고 있는 고질적 위험요소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투자금이 늘어날수록, 현지의 정치·인프라 리스크가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베트남은 한국의 누적 투자액이 920억 달러에 달할 만큼 최대 진출지지만, 임금 급등과 환경 규제가 기업들을 압박한다. 중국 기업들의 적극적 투자로 인력 스카우트 경쟁도 심화됐다. 최근 미국의 대(對)베트남 관세 압박까지 겹치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인도는 세계 최대 내수시장이란 매력이 있지만 인프라 부족과 까다로운 규제로 공장 가동률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세계 최대 전자·자동차 공장 유치에 성공했지만 항만·도로 인프라 병목으로 납품 지연이 빈발한다. 인도네시아는 니켈·알루미늄 등 자원 부국이지만 전력 부족으로 제련소 가동이 잦은 차질을 빚는다. 노동 규제 역시 변수다.

브라질은 철강·원자재 수요가 크지만 정치 불안정과 노동법 변수가 기업 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칠레·페루 등 자원부국은 안정적 투자처로 평가되지만 최근 자원민족주의 강화 움직임이 한국 기업에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포스트 차이나’ 전략은 기회와 위험이 맞물린 복합 방정식이다. 성공을 거둔 사례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현지의 구조적 리스크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는다. 장밋빛 전망에만 기대기보다는 국가별 맞춤형 대응전략과 긴 호흡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