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문의가 붙어 있는 상가 (사진=연합뉴스)
■ 사라진 공장···함께 무너진 지역경제
한때 ‘공단의 도시’로 불리던 지방 산업단지들이 하나둘 공동화의 그늘에 들어섰다. 공장 하나가 떠나면 일자리가 줄고, 기술이 빠지고, 세수와 소비가 함께 증발한다. 지난 10여 년간 자동차·전자·섬유 등 주력 업종의 해외 생산 비중이 60%를 넘어서면서, 산업의 이탈은 곧 국가 경쟁력의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
제조업이 빠져나간 지역은 부품업체·물류·서비스업까지 도미노처럼 흔들린다. 단순한 지역문제가 아니라 산업생태계 전체의 붕괴로 확산된다. 이는 국가 기술자립 기반을 약화시키고, ‘산업의 탈국내화’가 ‘성장의 탈속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국내에서는 2010년대 초반부터 오프쇼어링(offshoring·국내 생산활동의 해외 이전)이 일자리 유출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리쇼어링(reshoring)이 정책 아젠다로 부상했다. 정부는 2013년 ‘유턴기업 지원법’을 제정하며 복귀기업 지원에 나섰지만 실적은 초라하다.
■ 10년째 제자리 걸음인 한국의 리쇼어링
지난 10년간 복귀 신고를 한 기업은 약 180곳이지만 실제로 국내에 생산라인을 가동 중인 기업은 40곳 남짓에 불과하다. 그나마 상당수는 핵심 공정을 남기고 일부만 들여온 ‘부분 리쇼어링’ 형태다. 현장에서는 “세금감면보다 부지, 전력, 환경 인허가 등 행정절차가 더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리쇼어링을 성공적으로 이끈 나라는 지원의 방식부터 달랐다. 미국은 IRA(인플레이션감축법)와 CHIPS법을 통해 세제 혜택·인프라·R&D를 통합 지원하며 제조업 복귀를 ‘산업안보’ 차원으로 격상시켰다. 일본은 세액공제 중심의 지원으로, 대만은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해 귀환 기업을 집중 유치했다. 이 같은 구조적 유인책이 보잉(미국), 지멘스(독일), 캐논(일본) 등 글로벌 제조강국의 ‘리턴’을 이끌었다.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 기술(로봇·AI·스마트팩토리)은 리쇼어링의 생산비 절감 효과를 확대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실제로 미국의 리쇼어링 기업 수는 2010년 95개에서 2018년 886개로, 유럽은 2016~2018년 사이 193개 기업이 본국으로 복귀했다. 일본은 2006년 이후 7600여 개 기업이 돌아왔다. 반면 한국은 2019년 이후 리쇼어링 증가세가 멈췄다. 전기전자, 자동차, 주얼리 등 일부 업종에서만 제한적으로 복귀가 이뤄졌다.
■ 단순한 복귀 아닌 ‘시스템 재구성’ 필요
한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여전히 ‘보조금 중심, 단기 지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산업부·중기부·국토부 등 부처별로 제도와 지원이 흩어져 있고 산업단지 공급·인허가 절차는 제각각이다. 한 지방 산업단지 관계자는 “공장을 세우려면 부지와 전력, 환경 인허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데 현실은 2~3년이 걸린다”고 토로했다. 이런 제도적 병목은 복귀 의지를 꺾는다. 실제로 해외 생산기지에서 최종재를 생산하기 위한 중간재 수출은 2011년 이후 꾸준히 늘어 ‘리쇼어링보다 오프쇼어링 심화’ 현상이 나타났다.
팬데믹과 미·중 갈등, 지정학 리스크는 산업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리쇼어링을 ‘경제안보’로, 일본은 ‘기술자립’으로 정의했다. 지금의 리쇼어링은 단순히 ‘공장을 다시 짓는 일’이 아니라 공급망·인력·기술을 묶은 국가산업 시스템의 재구성이다.
한국이 여전히 단기 보조금 중심의 접근에 머문다면 세계 산업재편의 대열에서 완전히 밀릴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유턴기업’이 아닌 ‘유턴생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