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작년 한해 바이러스 공포는 모든 활동을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1년이 훌쩍 넘은 현재 백신공급이 시작되면서 경기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마무리된 어닝 시즌에서는 ‘역대급’이란 단어가 식상하게 보일 만큼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앞에 장밋빛 전망만이 놓여 있을까. 뷰어스는 조선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한국경제 주축 산업들의 ‘역대급 실적’ 뒤에 드리워진 그늘을 함께 들여다 봤다. -편집자주-

대호황이다.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며 가장 먼저 활력을 찾은 곳은 철강업계였다.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예견된 결과였다. 어떤 산업에도 철이 빠지는 곳은 없다. 건설·자동차는 물론 일상 가전제품까지 곳곳에 철의 흔적은 스며있다.

일부 국가에서 여전히 코로나19 확진자가 심각한 수준에 있긴 하지만 올해 들어 백신공급 확대와 함께 경기회복 기대감이 시장에 반영되며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 수요는 급격히 증가했다. 비수기로 분류되는 1분기에도 철강업체들이 역대급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다.

반면 코로나 위기 해소는 극히 일부 국가에서만 나타나고 있어 여객수요를 회복하지 못한 항공업계는 여전히 울상이다. 대한항공 등 대형항공사(FSC)들은 화물기 전환과 순환식 휴직 등을 통해 적극적인 수익창출 및 비용절감에 나설 수 있었지만, 자본잠식에 빠진 저가항공사(LCC)들은 당장 올해를 버틸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 고철(高鐵)에 비수기에도 역대급 실적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국내 상위 3개 철강업체들은 올해 1분기(별도 기준) 모두 큰 실적을 거뒀다. 포스코는 영업이익 1조729억원, 순이익 9522억원 등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4.2%, 110.1% 오른 성적표를 보였다. 현대제철은 영업이익 2143억원에 순이익 2320억원을 올리며 흑자전환했고, 동국제강도 영업이익 1023억원(+112.4%), 순이익 604억원을 올리며 흑자로 돌아섰다.

철강업계 호황은 글로벌 철강수요 증가와 이로 인한 철광석 가격 상승 덕분이다.

산업통장자원부와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중국 칭다오항(수입가 CFR) 기준 올해 1~3월 철광석 가격은 톤(t)당 149.8~177.98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82.44~96.67달러) 대비 2배 가까이 오른 상태다.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포스코는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인 중국이 환경보호를 이유로 조강생산 감축에 들어가면서 더욱 활기를 띠는 분위기다. 포스코 관계자는 “그동안 비싸게 팔고 싶어도 중국 측에서 값싸게 밀고와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며 “중국이 감축하면 가격을 올릴 수 있다. 현재 철광석 가격도 많이 오른 상태라 제품 판매가도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냉연강판. (사진=현대제철)


■ 철광석 떨어지는데 철강 수요 계속

글로벌 철강수요가 이어지고 중국이 감산에 들어가는 가운데 철강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마저 하방압력을 받고 있다. 철광석을 수입·가공해 각 부문에 판매하는 철강업체들로선 원가를 절감하면서 수익을 높일 수 있는 호기다.

최근 중국 정부는 원자재 수급관리 및 가격 안정화를 위해 거래소의 철광석 거래량을 제한하고 수수료 인상을 단행하고 시장교란 및 사재기 등의 행위를 단속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에 지난 12일 톤당 237.57달러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던 철광석 가격은 25일 기준 192.87달러까지 떨어졌다.

여기에 세계 주요 철광석 산지에서 증산 시동을 걸고 있다는 점도 철강업체들에게는 호재다. 2019년 광미댐 붕괴사고로 세계1위 타이틀을 내준 브라질 발레(Vale)사는 철광석 생산능력을 일부 회복하고 2분기부터 생산에 들어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세계 최대 철광석 생산국인 호주 업체들도 증산에 들어가며 글로벌 철광석 공급은 확대되는 양상이다.

국제 원자재시장 분석업체인 코리아PDS 임석 책임연구원은 “하반기로 갈수록 중국 정부의 환경보호 및 공급개혁 정책 강화, 브라질에서의 생산량 확대 가능성으로 인해 철광석 가격이 하방 압력을 받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중국에서 싼값에 철강을 들여오던 국내 업체들에게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은 맞다”며 “수익 개선은 분명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SK증권 권순우 연구원도 “중국 내 감산정책이 시행되고 재고상황은 평년 대비 낮으며 미국·유럽 등지에서 공급부족이 동반되고 있다”며 “(철강)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 우울한 항공사들…FSC 간신히 버텼지만

반면 항공사들은 근본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어 암울한 실정이다. 한국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작년 4월 기준 국내 항공사들의 국제선 여객은 전년(2019년) 동기 대비 –96%에서 최대 –100%까지 줄었다. 국내 코로나 확산이 본격화된 작년 3월부터 국제 여객이용은 급격히 감소했는데, 작년 4월부터는 모든 항공사가 전년 대비 90%이상의 감소율을 보였다.

대한항공 등 FSC는 줄어든 여객수요를 화물편으로 개편운항하고, 순환식 유급·무급휴직 등을 통해 위기에 대처해왔지만, LCC에겐 쉬운 선택지가 아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항공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1245억원을 거두며 흑자전환했지만, 288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급감한 여객수요에 대응해 화물운항을 늘리고 순환식으로 유급·무급을 통해 이익구조 개선과 비용절감에 나선 결과 적자폭을 크게 줄이는 데 성공했다. 작년 같은 기간 대한항공은 영업손실 657억원, 순손실은 6920억원에 달했다.

대한항공에 인수합병 절차를 밟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적자(영업손실 2082억원→1122억원, 순손실 5490억원→2304억원)를 이어갔지만 대한항공과 마찬가지로 화물사업 비중을 늘리며 적자폭을 줄일 수 있었다.

FSC전망은 대체로 나쁘지 않다. 올해부터 백신공급 본격화와 함께 집단면역 이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9월 말까지 전국민에 1차 접종을 마치고 당초 집단면역 달성 목표시점(11월)을 앞당기겠다고 밝힌 것도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순환식 휴직 문제와 관련해서도 오는 6월 종료예정인 고용유지지원금의 연장을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 LCC, 버틸 여력도 없어 집단 자본잠식

문제는 LCC다.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LCC 3사(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 가운데 티웨이항공을 제외한 나머지 2개사는 모두 자본잠식에 빠졌다. 별다른 대책 없이 현재와 같은 속도로 자금이 고갈되면 올해 안에 이들 LCC는 모두 완전 자본잠식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장 사정이 나쁜 곳은 진에어다. 작년 말까지만해도 진에어의 자기자본(별도 기준)은 981억원(자본금 450억원)이었지만 올해 1분기 들어 260억원까지 주저앉으며 자본잠식률이 42.4%를 기록했다. 자본잠식률이 50%를 넘어서면 관리종목으로 편입되고, 2년 넘게 이 상태가 유지될 경우 항공운송사업 면허가 취소되고 상장폐지 될 수 있다.

(사진=제주항공)


제주항공 역시 올해 1분기부터 부분 자본잠식에 들어갔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자기자본(자본총계) 2184억원에 자본금 1925억원으로 여력이 남아있었지만, 3개월 만에 자기자본이 1400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작년 사모펀드를 통해 자금을 수혈받은 티웨이항공만이 유일하게 자본잠식 상태를 면했지만 자기자본 665억원, 자본금 551억원으로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작년 말부터 3월 말까지 자기자본이 줄어든 속도를 감안하면 사실상 티웨이항공도 자본잠식 초읽기에 들어갔다.

LCC의 가장 큰 문제는 줄어든 여객수요를 대체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FSC에 비해 보유 중인 중대형 항공기가 턱없이 부족해 화물운송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어 중소형 여객기 화물칸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LCC는 무착륙 국제선 관광비행 확대, 기내식 상품화 등의 전략으로 매출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외부자금 조달이 유일한 수단이지만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투자유치도 어려운 실정이다.

LCC 관계자들은 “자금확충을 위한 여러 방안들을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