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로 수출되는 세계 최초 수소전기 대형트럭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 (사진=현대자동차)
작년 한해 바이러스 공포는 모든 활동을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1년이 훌쩍 넘은 현재 백신공급이 시작되면서 경기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마무리된 어닝 시즌에서는 ‘역대급’이란 단어가 식상하게 보일 만큼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앞에 장밋빛 전망만이 놓여 있을까. 뷰어스는 조선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한국경제 주축 산업들의 ‘역대급 실적’ 뒤에 드리워진 그늘을 함께 들여다 봤다. -편집자주-
코로나19로 시름하던 경기가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조선업계와 자동차업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완성차업체들은 역대급 실적을 발표하면서 전기·수소차 등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에 주력하고 있고, 당장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한 조선업체들은 수주 릴레이를 이어가며 몇 년 뒤를 장담하고 있다.
다만 시장이 기대보다 빠르게 회복되면서 그에 따른 파고도 예상된다. 일시에 몰린 수요로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가격인상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는데다가, 최근 급격히 오른 철강재 가격으로 인해 마진율 축소 부담까지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역대급 실적 올린 자동차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올해 1분기(별도 기준) 영업이익 5382억원, 순이익 8661억원을 거뒀다. 글로벌 시장에서 100만여대, 국내시장에서 18만여대를 판매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4%, 71% 증가했다.
하나은행에 따르면 올해 1~3월 원달러 환율은 1082.50~1142.00원 사이에서 움직였다. 올해 초 각국 정부가 시행한 양적완화(QE)의 영향으로 환율이 비우호적이었음을 감안하면 현대차의 실적은 고무적인 수치다. 코로나19 영향이 없던 2019년 1분기(원달러 환율 1113.00~1137.50원)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102만여대를 팔았다.
기아 역시 우수한 성적표를 공개하며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올 1분기 기아는 글로벌 시장에서 56만여대, 국내 시장에서 13만여대를 팔며 5980억원의 영업이익과 6132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 불황 속 빛 한 줄기, 이어지는 수주 릴레이
조선업계는 오랜 불황을 끝내고 수주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놓진 못했지만 슈퍼사이클(장기호황) 재진입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 국내 조선업체들은 전 세계 수주 물량의 52%를 받아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0배 가까이 늘어난 수준이다.
지난 20일 영국의 조선해운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는 올해부터 내년까지 연평균 4%, 2023~2030년 사이 매년 2~3% 수준의 선박수요 증가가 이어질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업계 특성상 수주 내역이 실적에 반영되기까지 1~2년 이상 걸리는 만큼 실적 개선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 수요는 많은데 생산차질, 원인은 반도체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회복되는 글로벌 경기가 업계의 수익성 개선에는 그대로 녹아들지 못할 전망이다. 올해부터 시작된 백신공급과 함께 경기회복 기대감이 반영됐지만, 원자재나 부품 등 공급이 일시에 증가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자동차 업계는 반도체 수급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이미 현대차는 2분기 들어서만 3차례 이상 공장 가동을 중지했고, 생산 조절을 통해 꾸준히 공장을 돌리던 기아도 이달부터 공장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한국GM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2월부터 부평2공장 감산에 들어갔던 한국GM은 지난달 19~23일 부평1·2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26일부터 생산은 재개됐지만 공장 가동률은 50%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부터는 창원공장도 50% 감산에 들어갔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작년 코로나19로 반도체 공장들도 생산을 줄였는데, 자동차 업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개선되며 (반도체)수요는 늘어나지만 공급이 막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만 파운드리 업체들을 중심으로 기존 IT대신 차량용 반도체 생산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구조가 다르고 1대당 1500~2000개가 들어가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으로 전환하기까지 소요될 시일 등을 감안하면 8월이나 돼야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KTB투자증권 김양재·박상범 연구원은 “2월 이후 대만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기존 IT대신 자동차 반도체 양산 비중을 확대했지만, 캐파(Capa·생산능력) 전환과 칩 양산 리드타임 감안 시 공급은 빨라도 8월 이후에 늘어난다”며 “특히 자동차 반도체는 구조적으로 급격한 증설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진=대우조선해양)
■ 철 가격 고공행진, 후판가도 인상…조선업계 어쩌나
수주 호황을 이어가고 있는 조선업계는 철광석 가격 인상으로 곤란에 빠졌다. 경기회복과 더불어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광석 가격이 오르고, 이에 따라 국내 철강업체들도 가격인상에 나서며 마진 축소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중국 칭다오항(수입가 CFR) 기준 철광석 가격은 지난 12일 톤(t)당 237.57달러로 역대 최고가를 찍은 뒤 25일 현재 192.87달러를 기록 중이다. 최근 떨어지긴 했지만 작년 이맘때(5월 26일 기준 95.28달러)의 2배 수준으로,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고철(高鐵)’ 현상은 조선업 주요 소재인 후판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선박 원가에서 후판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로 알려져 있는데, 이미 상반기 유통용 후판가격을 인상했던 포스코·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은 하반기 중 추가 인상안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다만 철강업계 관계자는 “(추가 인상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자재값이 오르면서 조선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어떻게든 예정된 적자를 버티다가 올해 수주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흑자전환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악화되면서 실적 축소를 피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비용부담이 늘면서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이대로면 저희 쪽에서 예상하고 있던 영업이익도 축소가 불가피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