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보험개혁’을 선언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관련업계나 언론조차 해당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드물다. 이에 정부 당국은 왜 보험개혁에 나서는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7회에 걸쳐 주요 내용을 살펴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순서>
①지금, 왜 보험개혁인가
②한화생명은 왜 제판분리에 나섰나
③삼성화재는 왜 방카에서 철수했나
④교보생명은 왜 디지털에 뛰어들었나
⑤토스는 왜 보험 전략을 수정했나
⑥KB라이프는 왜 시니어사업에 뛰어들었나
⑦금리하락기, 보험사는 왜 두려운가
금융당국은 지난 5월 7일 보험개혁회의 출범을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선언이었지만 준비는 갑작스럽지 않았다. 선언에 앞서 3~4월 유관기관, 연구기관, 보험협회, 보험회사 등과 개혁을 위한 사전 이슈조사를 실시한 것.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견됐다.
당국이 보험개혁을 작심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도입에 따른 혼란, 그리고 불완전판매 등 고질적인 업계 악습이다. 얼핏 무관해 보이는 두 요인은 사실 깊게 연관돼 있다. 누적된 다른 요인들까지 합세해 보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바닥을 긴다.
첫 회의를 주재한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보험업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시점’, ‘덮고 지나가는 것 없이 모든 걸 이슈화하겠다’ 등 이례적인 고강도 발언으로 당국의 고조된 위기감을 시장에 전파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8월 8일, 2차 보험개혁회의가 열렸다. 5월 킥-오프(첫 공식회의) 이후 80여 명으로 구성된 산하 5개 실무반(신회계제도반, 상품구조반, 영업관행반, 판매채널반, 미래준비반)은 ‘10대 전략, 60개+α 과제’를 도출해 냈다. 실무반 내 이슈 스터디뿐만 아니라 30개 보험사 인터뷰까지 거쳐 나온 결과물이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상품구조반은 △국민 밀착형 보험 개선(장기요양실손보험 표준화 등) △상품구조 개선(과도한 보장한도 확대 경쟁 방지 등) △실손보험 구조 개선(유병자 실손 운영 개선 등) △자동차보험 개편(경상환자 대인보험금 지급 기준 합리화 등) △상품개발 관리감독 강화 등 16개 과제를 발굴했다.
영업관행반은 △부당한 보험금 지급 거절 방지(불합리한 의료자문 관행 개선 등) △보험민원 감축(보험민원 처리 효율화 등) △보험사기 예방 모범규준 법제화 등 8개 과제를 발굴했다.
판매채널반은 △불완전판매 방지 방안(부당승환 방지 방안 등) △수수료 위주 영업관행 개선(모집수수료 공시 확대 검토 등) △GA 책임성 강화(GA 제재 실효성 제고 등) △판매채널 다양성 제고(간단보험대리점 활성화 등) 18개 과제를 발굴했다.
신계회계제도반은 △주요 계리가정 업계 가이드라인 마련 △재무정보 공시 실효성 확보 등 IFRS17 신뢰성 제고 △금리위험액 시나리오 모형 개선 등 K-ICS 위험평가 정교화 등 6개 과제를 발굴했다.
미래준비반은 △보험회사 내부통제 강화(판매채널 관리 관련 경영진 책임 강화 등) △미래성장 동력 발굴(보험사 부수업무 및 자회사 규제 개선 등)△선제적 부채관리 추진(보험계약이전 제도 개선 검토 등) 12개 과제를 발굴했다.
5개 실무반이 저인망 식으로 훑어 총 60개 과제나 도출했다. 이를 기본으로 연말까지 매월 보험개혁회의를 개최해 내년 초에는 개혁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60개 외에 ‘+α’의 가능성도 열어놔 경우에 따라서는 추가 과제가 발굴될 수도 있다. 빈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인망 식 과제 도출은 백화점식 나열로 경중이 잘 드러나지 않는 한계를 지닌다. 초점이 어긋날 경우 핵심은 비껴가고 변죽만 울릴 가능성도 있다. 이에 비교적 쉬운 과제에는 에너지 투입을 줄이고 중요한 핵심 과제에는 더 집중하는 전략이 중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 과제 간 연결고리를 걸지 않으면 개혁의 유기적 작동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이번 보험개혁의 큰 원인을 제공한 판매채널에서의 악습은 근원을 파헤쳐 들어가 보면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간 영업경쟁력 차이, 즉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가 드러난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본인 사망 후 가족 보호보다는 사망까지의 생활·간병비 확보로 옮겨가고 있다. 1인가구 급증 시대에 사망담보(종신보험)보다 질병담보(제3보험) 시장이 더 커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제3보험 시장에서 생보사의 경쟁력은 질병 데이터의 한계 등 여러 이유로 손보사에 비해 열위에 있다. 제3보험에서 파이를 키우기 어렵다면 생보사는 주력 상품인 종신, 연금, 변액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뀐 회계제도(IFRS17)에서 연금보험이나 변액보험은 종신보험(장기인보험)에 비해 메리트가 크게 떨어진다. 결국 생보사들은 가장 익숙한 종신보험에 약간의 변형을 가해 승부를 걸었다. 지난해 시장의 핫이슈였던 ‘단기납종신보험 열풍’의 배경이다.
보험사가 단기간에 신규 계약을 대량 확보하는 데 있어 ‘절판 마케팅’보다 더 뛰어난 수단은 없다. 여기에 출혈을 감수하며 고액 수수료 및 시책(인센티브)을 GA(보험대리점)에 풀면 경영진의 숙원 사항인 아름다운 재무제표가 단기간에 현실이 된다. 종신보험의 경우 단기납이라 해도 최소 5년 이상의 계약기간이 설정되기 때문에 현재의 출혈을 미래로 분산시켜 떠넘길 수 있다. 오너가 아닌 임기 2~3년의 월급쟁이 사장들은 성과에 목이 말라 언제든 이런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점은 과도한 보장, 과도한 수수료, 불완전판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등이다. 하지만 한꺼풀 벗기고 보면 성장성과 수익성이 한계에 다다른 생보사의 한탕주의가 문제의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존이 위태로운 마당에 민원 증가 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도한 보장 및 수수료를 억제하고 불완전판매를 엄히 다스리는 것도 대책이겠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수입원을 다변화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60개나 되는 과제 중에 근원적인 문제해결 접근법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5월 보험개혁회의가 출범하면서 제시한 목표는 명확하다.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고 혁신적 서비스를 제공해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것. 신뢰회복과 혁신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렵다.
기왕 ‘덮고 지나가는 것 없이 모든 걸 이슈화하고 개혁해 나가겠다’며 당국의 의지를 공표한 마당이라면 생·손보 운동장 기울기는 적절한지, 방카슈랑스는 왜 갈수록 쪼그라드는지, 디지털보험사는 왜 10년이 넘도록 수익을 못 내고 있는지 등 보다 근원적인 질문에 천착하고 해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개혁의 성공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는 길일 것이다.
이번 기획을 통해 뷰어스가 제시하는 몇몇 근원적인 질문들은 지금부터라도 보험개혁회의가 반드시 깊이 있게 다뤄야 한다고 믿는, ‘개혁의 바로미터’라고 감히 주장해 본다.
자료=금융위.금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