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재벌’이라는 독특한 집단을 낳았다. 거친 풍파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재벌이지만 ‘부의 대물림’ 시기만큼은 이들도 예외다. 그들이 갈라서고 쪼개질 때 나라 경제가 휘청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재벌가 금융 계열사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 왔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결정타가 된 적도 여러 번이다. 자본과 금융시장 역할이 갈수록 긴요해지는 요즘, 재벌가의 숨은 조력자 혹은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던 금융 계열사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삼성이 망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앱" 2022년 4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 삼성금융네트웍스는 금융 통합앱 '모니모'를 세상에 내놨다. 그리고 지금까지 2년 여, 삼성금융 이용자들은 모니모앱으로 사실상 '강제 이주' 중이다. 삼성금융은 2021년 이후 3년 동안 모니모 운영자금으로 1255억2700만원을 쏟아부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해 모니모의 월간활성이용자수는 안드로이드 기준 290만명에 그쳤다. 2300만에 가까운 고객을 갖고 있는 삼성금융 이용자의 85%는 사실상 모니모로의 이주를 거부하고 있다. 저조한 실적은 일찌감치 예상됐다. '은행' 기능이 없는 모니모는 '은행 앱'에 비해 이용할 근거가 현저히 부족했던 것. 삼성금융이 '모니모'를 시작한 이유는 뭘까. 모니모 앱 평가 및 리뷰 / 캡쳐=앱 스토어 모니모 서비스를 보면, 삼성금융이 '삼성(인터넷)은행'으로 가는 길목에 모니모를 전초기지로 세웠다는 가설을 그릴 수 있다. 사실 '은행'을 향한 삼성의 꿈은 길고 오래됐다. 2007년 국정감사에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삼성 금융계열사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로드맵’ 문건을 보면, 삼성의 '은행업'을 향한 다각도의 로드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해당 문건에는 ▲삼성의 금산분리 정책에 대한 이론적 논리적 대응 ▲비은행 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 ▲비은행금융기관의 은행업 진출방안 추진 등의 내용이 담겼다. 금산분리가 완화되지 않을 경우에도 어슈어뱅킹(보험사의 은행업 겸업)을 노리는 등 '은행업'으로 가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시나리오들을 현 상황에 적용해 보면 금산분리법이 완화될 경우,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삼성금융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되고 이 과정에서 모니모는 단번에 '금융 슈퍼앱'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모니모의 서비스 내용을 뜯어보면 서비스 내용은 인터넷전문은행들의 서비스 내용과 다를 바가 없다. 모니모는 기존 삼성카드 서비스와 함께 젤리 챌린지(리워드 프로그램), 환전 지갑, 연락처 송금,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인터넷은행의 서비스를 대부분 제공한다. 삼성금융네트웍스가 지난 6월 4일 KB국민은행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삼성본관에서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삼성금융은 지난 6월 KB국민은행과 손잡고 ‘모니모’를 슈퍼앱으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금융을 대표해 김대환 삼성카드 사장이, 국민은행에서는 이재근 은행장이 참석했다. 이후 양사의 제휴통장이 발행되면 모니모앱은 일종의 '은행앱'으로서의 기능을 확보하게 된다. 모니모의 선불충전금인 '모니머니'를 국민은행 파킹통장에 보관해 하루 단위로 이자를 지급하고, 결제 시에는 제휴 계좌에서 자동으로 선불 충전이 이뤄지도록 한 내용은 지난 9월 혁신금융서비스(금융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됐다. 모니모 파킹통장은 당초 올해 4분기 출시 예정이었지만, 일단 내년 1분기로 미뤄진 상태다. 삼성금융은 모니모에 뱅킹 서비스를 추가해 금산분리의 한계를 극복해 나간다는 구상으로 보여진다. ■ "못 쓰겠다" 삼성팬덤, 모니모 외면 문제는 오랫동안 '삼성은행'을 꿈꿔왔던 삼성이 그린 그림치고는 모니모의 수준이 이용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모니모의 부실함을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삼성 팬덤'이다. "모니모 짜증나서 삼성카드 해지한다" 현재 모니모 이용자들의 '고객 경험'은 소극적 저항이라기보단 적극적 거부에 가깝다. 모니모앱의 평가 및 리뷰에는 출시 직후인 2년 전부터 현재까지 '최악'이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삼성카드나 삼성증권 고객들은 "모니모 쓰기 싫어 해지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할 정도다. 성공한 브랜드들은 공통적으로 '팬덤'을 갖는다. 삼성의 경우도 대한민국의 '국뽕'을 자극하는 국민 기업이자, 삼성전자는 '국민 주식'으로 불리는 등 '초일류' 브랜드 이미지를 오래 유지하며 국민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팬덤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어느새 휴대전화 갤럭시를 쓰는 유저들은 '갤저씨'(갤럭시+아저씨 합성어)가 됐고, '10만전자'를 자신하던 삼성전자 주가는 '5만전자' 유지도 위태롭다. "해지를 부르는" 모니모 또한 삼성금융의 전통적 팬덤을 이탈시키고 있다.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더이상 먹히지 않게 됐다. 애초에 모니모의 비전과 구상은 과거 삼성의 성공 신화와는 서사가 다르다. 과거 삼성이 강력한 리더십과 중앙집권적인 컨트롤타워를 통해 '초격차'를 벌렸다면, 모니모는 성공해도 실패해도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법한 애매한 '협력체'로 시작됐다. '협력'이나 '동반성장'은 역사적으로 삼성이 성장 동력으로 삼던 서사는 아니다. 언제나 삼성을 초일류로 끌어올린 건 강력한 리더십과 컨트롤타워였다. ■ '강력한 컨트롤타워'...이병철 세계관의 붕괴 브랜드 전문가들은 팬덤 이탈의 주된 원인으로 '삼성 세계관의 붕괴'를 꼽는다. 역사적으로 공고한 위치를 구축한 브랜드들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는데, 경영자의 고유한 관점이 기업 철학으로 발전하고, 그의 경영 철학은 조직에 이식돼 '실천'되고 브랜드가 된다. 일관성 있게 '실천'한 세계관은 굳건한 브랜드를 구축하고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강력한 세계관을 직접 '실천'하는 구조와 방식이다. 삼성의 경우,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강력한 세계관이 시작됐다. 이병철 회장에서 이건희 회장으로 이어진 세계관은 '초일류' 기업의 이미지와 브랜드로 구축됐다. 이 때 삼성의 세계관을 '실천'하는 조직이 바로 '비서실'이었다. 이병철 회장의 마지막 회고록인 '호암자전'에서는 '책임 경영'을 삼성 경영의 근간에 두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 '책임'들을 지휘하는 데 삼성은 '비서실'을 활용했다. "50년에 걸치는 기업인으로서의 외곬인생을 되돌아 볼 때, 숱한 파란곡절을 용하게도 견디어 냈구나 하는 감회가 깊지만, 기업의 경영에는 항상 원칙이 있고, 철학이 있고, 그 원칙이나 철학에 바탕을 둔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각사 사장에게 회사 경영을 분담시키고, 비서실이 그룹의 중추로서 기획.조정을 하는 운영체제이기 때문에, 나는 경영, 운영의 원칙과 인사의 대본만을 맡아왔다. 삼성이라는 기업그룹의 창업이념, 그에 근거한 기업경영의 원칙, 이것을 이어갈 인재의 발굴, 이것만을 맡아왔다." 삼성의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는 비서실은 이후 구조본,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꿔가며 권한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삼성 창업 79년 만에 총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으면서 삼성의 컨트롤타워도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사라진 이후 삼성은, 책임 경영도 자율 경영도 하기 힘든 중간 지점에 놓여있다. 모니모가 삼성금융 4사의 '협력'과 '동반성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과감한 '자율 경영'이 필요하다고 안팎의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과거의 '중앙집권적 경영'에서 '자율 경영'으로의 세계관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삼성의 향후 선택은 어떨까. 최근 삼성의 인사 현황을 보면, 여전히 '비서실'이라는 향수가 강한 듯하다. 삼성의 2025년 정기 인사에서 글로벌리서치 내에 신설된 경영진단실이 과거의 '비서실'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물론 이를 두고 '그룹 컨트롤 타워의 전면 부활'로 보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룹 내 조직 업무를 지원하고 전문 컨설팅을 하는, 칸막이를 넘나드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일부 확인된 게 아니냐는 게 안팎의 분석이다.

[삼성과 금융➇] 무너진 팬덤 '모니모', 실패 이유는 뭘까

삼성카드 등 삼성 금융계열사 4곳 달라붙었는데
출시 2년 1200억 넘는 투자 불구 외면하는 이용자들
금산분리 완화 대비 '삼성은행' 전초기지 역할 '모니모'
국민은행과 맞손 '파킹통장' 준비...은행업 포석
'강력한 컨트롤타워' vs '자율 경영' 갈림길 서다

황보람 기자 승인 2024.12.05 06:00 | 최종 수정 2024.12.05 07:04 의견 0

한국 경제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재벌’이라는 독특한 집단을 낳았다. 거친 풍파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재벌이지만 ‘부의 대물림’ 시기만큼은 이들도 예외다. 그들이 갈라서고 쪼개질 때 나라 경제가 휘청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재벌가 금융 계열사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 왔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결정타가 된 적도 여러 번이다. 자본과 금융시장 역할이 갈수록 긴요해지는 요즘, 재벌가의 숨은 조력자 혹은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던 금융 계열사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삼성이 망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앱"

2022년 4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 삼성금융네트웍스는 금융 통합앱 '모니모'를 세상에 내놨다. 그리고 지금까지 2년 여, 삼성금융 이용자들은 모니모앱으로 사실상 '강제 이주' 중이다.

삼성금융은 2021년 이후 3년 동안 모니모 운영자금으로 1255억2700만원을 쏟아부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해 모니모의 월간활성이용자수는 안드로이드 기준 290만명에 그쳤다. 2300만에 가까운 고객을 갖고 있는 삼성금융 이용자의 85%는 사실상 모니모로의 이주를 거부하고 있다.

저조한 실적은 일찌감치 예상됐다. '은행' 기능이 없는 모니모는 '은행 앱'에 비해 이용할 근거가 현저히 부족했던 것. 삼성금융이 '모니모'를 시작한 이유는 뭘까.

모니모 앱 평가 및 리뷰 / 캡쳐=앱 스토어

모니모 서비스를 보면, 삼성금융이 '삼성(인터넷)은행'으로 가는 길목에 모니모를 전초기지로 세웠다는 가설을 그릴 수 있다. 사실 '은행'을 향한 삼성의 꿈은 길고 오래됐다.

2007년 국정감사에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삼성 금융계열사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로드맵’ 문건을 보면, 삼성의 '은행업'을 향한 다각도의 로드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해당 문건에는 ▲삼성의 금산분리 정책에 대한 이론적 논리적 대응 ▲비은행 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 ▲비은행금융기관의 은행업 진출방안 추진 등의 내용이 담겼다. 금산분리가 완화되지 않을 경우에도 어슈어뱅킹(보험사의 은행업 겸업)을 노리는 등 '은행업'으로 가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시나리오들을 현 상황에 적용해 보면 금산분리법이 완화될 경우,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삼성금융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되고 이 과정에서 모니모는 단번에 '금융 슈퍼앱'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모니모의 서비스 내용을 뜯어보면 서비스 내용은 인터넷전문은행들의 서비스 내용과 다를 바가 없다. 모니모는 기존 삼성카드 서비스와 함께 젤리 챌린지(리워드 프로그램), 환전 지갑, 연락처 송금,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인터넷은행의 서비스를 대부분 제공한다.

삼성금융네트웍스가 지난 6월 4일 KB국민은행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삼성본관에서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삼성금융은 지난 6월 KB국민은행과 손잡고 ‘모니모’를 슈퍼앱으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금융을 대표해 김대환 삼성카드 사장이, 국민은행에서는 이재근 은행장이 참석했다. 이후 양사의 제휴통장이 발행되면 모니모앱은 일종의 '은행앱'으로서의 기능을 확보하게 된다. 모니모의 선불충전금인 '모니머니'를 국민은행 파킹통장에 보관해 하루 단위로 이자를 지급하고, 결제 시에는 제휴 계좌에서 자동으로 선불 충전이 이뤄지도록 한 내용은 지난 9월 혁신금융서비스(금융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됐다. 모니모 파킹통장은 당초 올해 4분기 출시 예정이었지만, 일단 내년 1분기로 미뤄진 상태다.

삼성금융은 모니모에 뱅킹 서비스를 추가해 금산분리의 한계를 극복해 나간다는 구상으로 보여진다.

■ "못 쓰겠다" 삼성팬덤, 모니모 외면

문제는 오랫동안 '삼성은행'을 꿈꿔왔던 삼성이 그린 그림치고는 모니모의 수준이 이용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모니모의 부실함을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삼성 팬덤'이다.

"모니모 짜증나서 삼성카드 해지한다"

현재 모니모 이용자들의 '고객 경험'은 소극적 저항이라기보단 적극적 거부에 가깝다. 모니모앱의 평가 및 리뷰에는 출시 직후인 2년 전부터 현재까지 '최악'이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삼성카드나 삼성증권 고객들은 "모니모 쓰기 싫어 해지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할 정도다.

성공한 브랜드들은 공통적으로 '팬덤'을 갖는다. 삼성의 경우도 대한민국의 '국뽕'을 자극하는 국민 기업이자, 삼성전자는 '국민 주식'으로 불리는 등 '초일류' 브랜드 이미지를 오래 유지하며 국민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팬덤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어느새 휴대전화 갤럭시를 쓰는 유저들은 '갤저씨'(갤럭시+아저씨 합성어)가 됐고, '10만전자'를 자신하던 삼성전자 주가는 '5만전자' 유지도 위태롭다.

"해지를 부르는" 모니모 또한 삼성금융의 전통적 팬덤을 이탈시키고 있다.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더이상 먹히지 않게 됐다.

애초에 모니모의 비전과 구상은 과거 삼성의 성공 신화와는 서사가 다르다. 과거 삼성이 강력한 리더십과 중앙집권적인 컨트롤타워를 통해 '초격차'를 벌렸다면, 모니모는 성공해도 실패해도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법한 애매한 '협력체'로 시작됐다. '협력'이나 '동반성장'은 역사적으로 삼성이 성장 동력으로 삼던 서사는 아니다. 언제나 삼성을 초일류로 끌어올린 건 강력한 리더십과 컨트롤타워였다.

■ '강력한 컨트롤타워'...이병철 세계관의 붕괴

브랜드 전문가들은 팬덤 이탈의 주된 원인으로 '삼성 세계관의 붕괴'를 꼽는다.

역사적으로 공고한 위치를 구축한 브랜드들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는데, 경영자의 고유한 관점이 기업 철학으로 발전하고, 그의 경영 철학은 조직에 이식돼 '실천'되고 브랜드가 된다. 일관성 있게 '실천'한 세계관은 굳건한 브랜드를 구축하고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강력한 세계관을 직접 '실천'하는 구조와 방식이다.

삼성의 경우,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강력한 세계관이 시작됐다. 이병철 회장에서 이건희 회장으로 이어진 세계관은 '초일류' 기업의 이미지와 브랜드로 구축됐다. 이 때 삼성의 세계관을 '실천'하는 조직이 바로 '비서실'이었다.

이병철 회장의 마지막 회고록인 '호암자전'에서는 '책임 경영'을 삼성 경영의 근간에 두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 '책임'들을 지휘하는 데 삼성은 '비서실'을 활용했다.

"50년에 걸치는 기업인으로서의 외곬인생을 되돌아 볼 때, 숱한 파란곡절을 용하게도 견디어 냈구나 하는 감회가 깊지만, 기업의 경영에는 항상 원칙이 있고, 철학이 있고, 그 원칙이나 철학에 바탕을 둔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각사 사장에게 회사 경영을 분담시키고, 비서실이 그룹의 중추로서 기획.조정을 하는 운영체제이기 때문에, 나는 경영, 운영의 원칙과 인사의 대본만을 맡아왔다. 삼성이라는 기업그룹의 창업이념, 그에 근거한 기업경영의 원칙, 이것을 이어갈 인재의 발굴, 이것만을 맡아왔다."

삼성의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는 비서실은 이후 구조본,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꿔가며 권한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삼성 창업 79년 만에 총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으면서 삼성의 컨트롤타워도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사라진 이후 삼성은, 책임 경영도 자율 경영도 하기 힘든 중간 지점에 놓여있다.

모니모가 삼성금융 4사의 '협력'과 '동반성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과감한 '자율 경영'이 필요하다고 안팎의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과거의 '중앙집권적 경영'에서 '자율 경영'으로의 세계관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삼성의 향후 선택은 어떨까. 최근 삼성의 인사 현황을 보면, 여전히 '비서실'이라는 향수가 강한 듯하다. 삼성의 2025년 정기 인사에서 글로벌리서치 내에 신설된 경영진단실이 과거의 '비서실'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물론 이를 두고 '그룹 컨트롤 타워의 전면 부활'로 보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룹 내 조직 업무를 지원하고 전문 컨설팅을 하는, 칸막이를 넘나드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일부 확인된 게 아니냐는 게 안팎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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