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WC 2025 SK텔레콤 부스 전경. (사진=연합뉴스)

국내 이동통신 3사가 인공지능(AI)을 핵심 동력으로 삼아 기술 기업으로의 변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AI 기술을 실험적으로 도입하는 단계였다면, 올해는 이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서비스를 선보이며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AI로 무장한 통신3사, 기술기업 도약 나서

통신3사는 AI 기술을 각자의 강점과 맞물려 활용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AI를 곧바로 통신 사업과 연계할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닌 만큼, 관련 역량이 향후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SK텔레콤은 글로벌향 AI 비서인 '에스터'로 AI 에이전트 시장에 진출했으며, KT는 MS(마이크로스프)와 손잡고 기업용(B2B) AI 시장을 적극 공략 중이다. LG유플러스는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익시오'를 바탕으로 보안 솔루션을 선보이는 등 기술의 실질적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AI 피라미드 2.0' 전략을 소개하는 유영상 SK텔레콤 CEO. (사진=SK텔레콤)

이 같은 변화는 지난 3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국제 통신박람회 'MWC 2025'에서도 두드러졌다. 각 사 CEO들 또한 올해를 AI 사업의 추진 전략을 구체화했다.

먼저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AI DC 사업 모델 및 AI 에이전트 B2B·B2C 고도화 방안을 담은 'AI 피라미드 2.0' 전략을 공개했다. 그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돈버는 AI를 시작하겠다"며 "먼저 AI 데이터센터로 돈을 벌고, AI B2B로 돈을 벌고, 마지막으로 AI B2C(기업-소비자 거래) 시장에서 수익을 거두겠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AI 인프라 슈퍼 하이웨이' 전략에 따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AI 인프라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가산시에 AI 데이터센터를 개소하고, 구독형 AI 클라우드 서비스를 선보였다. 또한 통신사 협력체 '글로벌 텔코 AI 얼라이언스'와 파트너십을 이어가는 한편, 슈나이더 일렉트릭 등 글로벌 통신사들과도 새로 손을 잡아 수익화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KT는 국내 기업의 인공지능 전환(AX)을 돕는 조력자(액셀러레이터)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영섭 KT 대표는 "앞으로는 통신을 넘어 AI B2B 사업이 회사 성장을 이끄는 본업이 될 것"이라며 "KT는 더 큰 시장이 열려 있는 B2B AX로 무게 중심을 확실히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KT는 이를 위한 전담 조직으로 이달 내 AX 딜리버리 전문센터를 출범하고, MS와 260억 규모의 AX 전략 펀드를 운영할 예정이다. 또한 MS 투자사인 오픈AI의 챗GPT-4o를 우리나라 데이터 및 산업별 특성에 맞춘 '한국형 AI'로 구성된 신규 기업용 AI 서비스를 출시한다.

LG유플러스는 신뢰성 높은 AI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보안'에 무게를 뒀다. 홍범식 LG유플러스 사장은 "이제는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사람 중심 AI'에 집중하겠다"며 "통신과 AI 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는 Agenda Setter로서 밝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LG유플러스에 따르면 '사람 중심 AI'는 AI 기술 자체보다 AI를 이용하는 고객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객이 신뢰하고 안심하고 쓸 수 있는 AI 기술에 집중해, 고객에게 알맞은 경험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AI 분야의 보안 기술인 ▲안티딥보이스 ▲온디바이스 sLM ▲ 양자암호(PQC) 기술 등을 '익시 가디언'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통신 사업의 성장 정체…AI가 돌파구?

AI 중심 사업이 더욱 중요해진 이유는 기존 통신 사업의 성장 한계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난해 12월 '유·무선통신서비스 가입 현황'에 따르면 2024년 12월 휴대전화 회선은 5687만8363회선으로, 9월 5697만6252회선 대비 0.17% 감소했다. 특히 알뜰폰을 제외한 통신3사의 회선은 4달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통신 시장이 스마트폰의 보편화, 인구 감소라는 이중고에 직면하면서 신규 가입자 확보가 어려운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지난해 실적에서도 드러난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영업이익 1조8234억원을 기록했으며, KT는 전년 대비 50.9% 감소한 8095억원, LG유플러스는 전년보다 13.5% 감소한 8631억원을 기록했다. SK텔레콤만 영업이익이 4%로 소폭 증가했다.

SK텔레콤만 영업이익이 늘어난 이유는 AI를 중심으로 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SK텔레콤은 통신3사 중 가장 먼저 AI에 관심을 가지고 지난 2022년부터 꾸준한 투자를 이어왔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이동통신 부문의 매출 성장은 전년보다 1.1%로 소폭 증가한 것에 그쳤지만, AI 매출은 전년 대비 19% 성장했다. 특히 AI 클라우드·컨택센터를 담당하는 'AIX 사업부' 매출이 32% 증가하며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신3사에게 AI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나오는 이유다.

과징금 등 대외 불안 요소…AI 투자 지속 가능할까

다만 통신3사는 최근 들어 공정위의 대규모 과징금이라는 난관을 마주하고 있다. 예상되는 3사 합산 과징금만 최대 5조5000억원으로, 이는 AI 인프라 확충과 기술 투자에 집중해야 하는 통신3사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23년 통신3사의 판매장려금 담합 의혹 조사에 착수했으며, 조사 결과 이들이 2015년부터 번호이동 시장에서 순증감 수치를 공유해 서로 가입자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판매장려금을 조절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가입자 혜택을 확대하기 위한 마케팅 재원이 충분한데도, '번호이동 상황반'을 운영하며 의도적으로 시장 경쟁을 저해했다는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정원석 신영증권 연구원은 "공정위 심사보고서 의견은 통신사 담합 기준점을 제시하는 의미가 강하다"며 "최악의 경우 3사 합산 5조5천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통신 3사는 당시 단통법 시행과 맞무려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방통위 역시 해당 행위를 담합이라 보기 어렵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공정위는 단순 행정지도를 넘어선 별도의 담합이 있었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중이다.

현재 통신 3사는 수조 원대 AI 관련 투자를 앞두고 있다. SK텔레콤은 오는 2028년까지 AI 매출 25조원 달성을 목표로 관련 투자 비중을 기존의 3배로 늘릴 계획이며, KT는 지난해 MS와 AI 협력을 맺고 5년간 2조4000억원을 투자, 2027년까지 관련 사업에 총 7조원을 투자한다. LG유플러스 역시 오는 2028년까지 해마다 최대 5000억원을 AI 분야에 투입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과징금이 현실화될 경우 통신3사의 AI 투자 계획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향후 AI 중심의 사업 구조 개편과 투자 확대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외부 변수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