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사진=두산그룹)

정부의 에너지 정책 변화에 따라 실적이 출렁이는 대표 기업으로 두산그룹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박정원 회장이 이끄는 두산은 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사업은 물론, 수소·풍력·SMR(소형모듈원전) 등 정부 기조에 발맞춘 사업 전개에 힘써왔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 친화적 전략’이 그룹 체질 개선이라는 관점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두산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원전 정책이 재개되면서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윤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등장하면서, 다시금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과거 ‘기계 두산’으로 불렸던 두산그룹은 2020년 유동성 위기를 계기로 중공업 중심의 사업 구조를 정비하며 에너지 전문기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해왔다. 박 회장은 회생절차에 들어간 두산중공업을 ‘두산에너빌리티’로 새롭게 출범시키며 방향 전환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중장기 전략으로서의 일관성을 갖췄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정권 교체에 따라 사업 성패가 좌우되는 구조는, 두산이 독립적인 경영 전략보다 외부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해왔다는 인상을 준다. 정책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능력은 단기적 실익을 낳을 수 있지만, 이는 반복적인 리스크 노출이라는 부작용도 수반한다.

위기 상황에서 두산이 택해온 방식은 비교적 일관됐다. 핵심 자산을 매각하며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과거 두산인프라코어의 공작기계 사업부, 두산건설의 배열회수보일러(HRSG) 사업, 두산DST 등은 경영난 속에서 차례로 시장에 나왔다. 두산밥캣의 상장, 두산엔진 매각 추진 역시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는 현금흐름 확보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그룹 차원의 기술 역량 축적이나 미래 사업의 지속 가능성 확보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선택이었다는 평가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을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수소연료전지, 협동로봇, 풍력 등 여러 신사업에 도전해왔다. 그룹 내 주요 계열사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전면 배치하고, 구조조정과 재무 건전성 개선 작업을 병행하며 새로운 사업 기반 마련에 나섰다.

두산에너빌리티 직원들이 가스터빈 초도호기 최종조립을 위해 로터 블레이드를 케이싱에 설치하고 있다. (사진=두산에너빌리티)

현재 두산은 SMR, 수소터빈, 해상풍력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미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SMR 분야에서는 테라파워와의 협업으로 국내 상용화 시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고, 수소터빈은 기존 가스터빈 기술을 바탕으로 친환경 전환에 대응한다. 해상풍력은 동해안 중심으로 수주에 성공했으나, 최근 정치 불확실성으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SMR은 상용화까지 기술·규제 허들이 많고, 수소나 풍력은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영역이다. 두산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18조1329억원으로 전년 대비 5.2%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1조38억원으로 30.1% 줄었다. 영업이익률은 7.5%에서 5.5%로 하락했다. 특히 미래 성장동력인 신사업의 성장통이 뼈 아팠다. 발전용 연료전지 사업을 하는 두산퓨얼셀은 수익성 확보에 실패해 1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협동로봇 전문기업 두산로보틱스는 연결 매출이 11.7% 감소한 468억원에 그쳤고, 영업손실(412억원)은 배 이상 늘었다. 반도체 후공정 전문기업 두산테스나는 매출(3731억원)은 10.2% 늘었지만 영업이익(379억원)은 37.6% 줄었다. 에너빌리티 부문 매출은 7조3668억원으로 전년 대비 3.7% 감소했다.

원자력과 가스터빈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환으로 수익성 개선이 기대하고 있지만 시장이 원하는 건 결국 확실한 실적이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에 호응하며 기회를 얻었다면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향후에도 정부 주도 산업 정책에 대한 전략적 연계는 불가피하겠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것은 기업 고유의 경쟁력과 체질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박정원 회장의 전략적 리더쉽과 그룹 차원의 독립적이고 일관된 성장 로드맵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두산은 반복되는 위기 속에 또 다시 핵심 자산을 유동화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수 있다. 이제는 정부가 뭘 하든, 자체 경쟁력으로 생존 가능한 체질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