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5일(체코 현지 시각) 두산스코다파워를 방문한 체코 페트르 파벨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두산에너빌리티 손승우 파워서비스BG장(오른쪽 세 번째)과 증기터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두산에너빌리티)
■ 기술이 답이었다…‘팀코리아’ 흔들리지 않은 무기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팀코리아’가 흔들렸던 건 분명하다. 입찰 초기부터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외교적 낙관론은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불안한 한국의 정치 문제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만큼은 끝내 흔들리지 않았다.
팀코리아는 한수원,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한전원자력연료 등 한전 계열사와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 민간 기업이 함께 꾸린 연합체다. 체코 정부는 이들의 제안이 "대부분 또는 모든 평가 기준에서 우수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력이나 가격 경쟁이 아니라, 기술력 중심의 평가에서 얻은 성과였다.
APR1000은 한수원의 대표 노형 APR1400을 유럽 수출용으로 맞춤 설계한 모델이다. 1000MW급으로 소형화했지만, 기존 노형의 안전성과 효율성은 그대로 계승했다. 이 노형은 2023년 3월, EU 통합기술기준인 EUR 인증을 통과한 유일한 입찰 모델로, 체코를 비롯한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유럽 주요국이 공통으로 요구하는 기술·안전 기준을 충족했다.
APR1000 조감도 (사진=한국수력원자력)
■ 설계부터 운영까지, ‘완성형 기술 패키지’
APR1000의 설계를 맡은 한전기술은 유럽 규제에 부합하는 상세 설계와 규제 대응 전략을 수립해 정합성과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 최고 평가를 이끌어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자로 계통 제작 기술과 현실성 있는 공급망을 제시했고, 대우건설은 유럽 현장에 최적화된 시공 방안을 마련했다. 한전KPS는 APR1400 운영 경험을 기반으로 중장기적 유지보수 전략을 제안하며, 단순한 건설을 넘어 운영 전반을 아우르는 ‘토탈 패키지’를 구현했다.
한수원이 제안한 APR1000은 단순히 설계도와 가격이 아닌, 실제 건설 및 운영 가능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경쟁사 EDF의 EPR 모델은 유럽 내 프로젝트(핀란드, 프랑스, 영국 등)에서 잦은 공기 지연과 천문학적 비용 초과로 시장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이와 달리 APR1000은 한국과 UAE에서 ‘제때 짓고 제값에 완공’한 실적을 기반으로, ‘적기·적정 예산’이라는 이점을 내세웠다.
■ ‘유럽형 원전’으로 인정…동유럽 원전시장 진입의 신호탄
한수원은 ▲On Time Within Budget 건설 역량 ▲체코측 니즈(Needs) 충족 노력 ▲민관 협력 폭넓은 수주 활동 ▲뛰어난 기술력 등을 체코에서 높이 평가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외교 변수 속에서도, 한수원의 APR1000은 유럽 규제에 가장 잘 맞는 설계와 성능, 입증된 시공·운영 경험으로 ‘기술력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팀코리아 내 각 참여 기업들의 역할은 단순한 ‘하청 협력’을 넘어, 설계부터 시공, 운영까지 전주기 경쟁력을 입증해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체코가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이지만, 중요한 건 기술은 이미 유럽 시장의 문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 설계와 전주기 경쟁력은 향후 폴란드, 루마니아 등 차기 발주국에서도 큰 자산이 된다. 특히 정치적 변수에 취약한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기술 기반의 신뢰 확보는 장기적인 수출 경쟁력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