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르웨이 민영 SMR 개발사 노르스크 슈례녜크레프트(NK)와 한수원의 업무협약식. 황주호 한수원 사장(왼쪽), 요니 헤스타머 (사진=한수원)
■ ‘체코 승부’ 이후 숨 고른 K-원전…전략 전환기 맞아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전이 끝나자마자, 글로벌 원전 업계는 다시 ‘동유럽’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체코에서 멈춘 한국형 원전의 유럽 수출길은 이대로 끝인 것일까.
두코바니 원전 수주 성공 이후 한국형 원전의 유럽 대형 프로젝트 참여가 급격히 줄면서 ‘철수론’까지 제기됐지만, 실제로는 전략적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한수원이 유럽에서 꺼낸 반전 카드는 소형모듈원자로(SMR)다.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건설비용과 부지 제약이 적고, 안전성과 유연성에서도 강점을 갖춘 차세대 기술이다. 특히 AI 산업의 확장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시대적 흐름은 SMR을 산업용 열원, 데이터센터 냉방, 해수담수화 등 다양한 수요로 확장시키고 있다.
■ 대형에서 소형으로…건설에서 유지보수로 ‘리셋’
유럽 내부에서도 ‘탈원전 기조’가 서서히 흔들리고 있다. 세계 최초 탈원전 국가로 꼽히는 이탈리아도 지난 3월 원자력 기술의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을 승인한 바 있다. 최근에는 40년간 원자력 발전 금지 정책을 고수하던 덴마크 정부도 기조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법과 제도가 복잡한 유럽에서 입찰만으로 승부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스웨덴, 노르웨이 등과 SMR 중심 협력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수원은 북유럽 국가들과 SMR 설비 수출 및 기술협력을 위한 논의를 진전시키고 있으며, 국내 민간기업과도 설계 및 운용기술 고도화 작업을 병행 중이다.
황 사장은 체코 이후 원전 수출이 유력한 나라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꼽았다. 그는 “두 달 전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방문해서 노르웨이의 큰 유전회사가 차린 시행사와 스웨덴의 유력한 시행사 등과 SMR 공급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맺고 왔다”며 “우리가 참여한다는 것에 대해 그쪽에서는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전경 (사진=한수원)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설비를 개선하는 ‘계속운전’ 사업도 한수원이 주력하는 영역이다.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1호기 프로젝트가 대표 사례다. 약 2조8000억 원 규모로, 한수원이 1조2000억 원가량을 맡았고, 두산에너빌리티,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국내 기업도 공동 참여했다.
계속운전 사업은 신규 원전 건설보다 정치적·사회적 부담이 적다. 시민단체 반발이 적고, 신규 인프라 없이 기존 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럽 내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정부 역시 해당 사업을 중소·중견기업 중심 원전 수출 생태계의 롤모델로 보고 후속 수주를 적극 지원 중이다.
■ 유럽은 포기 아닌 유턴…중동과 동남아로 확장
K-원전의 전략은 이제 유럽을 넘어 중동과 동남아로 확장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은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리스크나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대형 원전보다는 SMR 또는 모듈형 발전소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는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 이후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 확대를 모색 중이며, 필리핀과 베트남도 한수원과 기술교류 및 타당성 검토에 나섰다. 이들 국가는 에너지 안보 강화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으며, 한국형 원전의 시공‧운영 경험은 여전히 강력한 비교우위로 작용하고 있다. 체코 원전 수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K-원전은 이제 더 넓은 세계를 향해 전장을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