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 진열된 계란. (사진=김성준 기자)

최근 계란 한판 가격이 8000원에 육박하며 장바구니 부담에 무게를 더하고 있습니다. 조류독감 유행으로 가격이 치솟았던 지난 2021년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인데요. 최근엔 조류독감 소식도 뜸했던 데다, 특별한 가격인상 요인도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인 만큼 계란값 상승에 의문을 가진 분이 많으실 겁니다. 계란 가격이 꾸준히 오르자 정부는 ‘생산자 담함 의혹’ 조사에 나서겠다며 칼을 빼 들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장조사를 통해 계란 가격을 고시하고 있는 대한산란계협회가 산지 가격 상승을 주도했는지와 회원사에 이를 따르도록 유도 또는 강제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정부도 계란 가격 급등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조사 대상이 된 산란 농장주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들은 최근 계란 가격 상승 책임이 오히려 정부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계란 생산자들이 가격 상승 원인으로 꼽은 것은 시중에서 가장 저렴하게 판매되는 ‘4번 계란’입니다. 정부는 오는 9월부터 ‘4번 계란’ 생산을 규제한다는 방침인데, 이에 대한 여파로 계란 값이 출렁거리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상황을 이해하려면 우선 ‘4번 계란’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겠죠. 계란은 이를 낳은 산란계의 사육 환경에 따라 1번부터 4번까지 4가지 숫자로 분류되는데요. 1번은 방사형 사육장, 2번은 평사형 사육장에서 생산됩니다.

평사형 사육장은 축사 안에서 닭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방사형 사육장은 여기에 마당이 추가된 구조입니다. 반면 3번과 4번은 산란계가 흔히 말하는 ‘닭장’, 케이지 안에서 사육됩니다. 3번과 4번의 차이는 케이지의 넓이인데요. 3번의 경우 0.075㎡, 4번의 경우 0.05㎡ 당 한마리가 들어갑니다. 4번 사육 환경이 가장 밀집도가 높다 보니 생산 효율도 뛰어나고 그만큼 저렴합니다. 가격적인 이점 덕분에 시중에 유통되는 계란의 약 80%는 4번 계란이 차지하고 있죠.

하지만 A4용지 한장 크기도 안되는 케이지에서 산란계를 기르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고 닭들이 밀집된 만큼 질병 등에 취약하다는 문제도 부각됐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신축 산란계 농장은 ‘3번’ 이상의 개선된 사육 기준을 갖추도록 하며 ‘4번 계란’ 퇴출을 유도했는데요. 문제는 오는 9월부터 기존 농가에도 ‘3번’ 기준을 맞추도록 할 예정이었다는 점입니다.

(사진=픽사베이)

계란 농가는 9월부터 새 산란계를 투입하려면 0.075㎡ 크기 케이지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8월31일 이전에 케이지에 투입된 산란계 까지는 이전 ‘4번’ 기준으로 사육할 수 있다는 말이죠. 산란계 수명이 제한된 만큼 일시적인 방편이지만, 당장 생산 비용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농가에선 너도 나도 ‘산란계 교체’에 나섰습니다. 최대한 오래 ‘4번 계란’을 생산하기 위해 나이가 많은 노령의 닭들을 빼고 병아리들을 입식한 거죠.

계란 공급 감소는 여기에서 발생했습니다. 보통 병아리가 계란을 낳을 정도로 성장하기까지는 약 20주, 6개월 정도가 소요됩니다. 당장 계란을 낳고 있는 산란계가 빠지고, 그 자리에 당장은 계란을 낳지 못하는 병아리들이 들어갔으니 일시적으로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농림부에서는 추가적인 산란계 교체 비율이 약 8%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는데, 산란계 농가에서는 한때 병아리가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는 다시 노령의 산란계를 제때 교체하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습니다. 9월이 다가올수록 계란을 못 낳는 병아리들과 계란을 덜 낳는 노령의 닭 비중이 늘면서 공급이 쭉 줄어든 셈입니다.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도 한발 물러섰습니다. 오는 9월로 예정됐던 기존 산란계 농가 사육환경 개선을 2027년 9월까지 유예하기로 한 건데요. 대한산란계협회 측은 한발 더 나아가 규제 철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류독감 등으로 인한 피해는 사육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며, 국내 ‘4번 계란’ 품질에도 문제가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정부에서 나서 계란 생산을 규제하기 보다는, 어떤 계란을 구매할지를 소비자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죠.

대한산란계협회 관계자는 “국내 산란 농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계란이 생산된 일자를 표기하고 있으며 케이지 역시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어 신선도와 청결도 모두 흠잡을 데가 없다”면서 “’4번 계란’이 퇴출되면 시설 비용은 1.5배가 늘고 생산량은 33%가 줄어들어 계란 가격이 50% 넘게 뛸 수 있다. 정부가 이를 강제한다면 저렴한 계란을 원하는 소비자 선택권을 말살하는 조치”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