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특사단이 7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의 체코 총리실에서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만나 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윤석열 정부가 ‘세일즈 외교’의 대표적인 결실로 내세웠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출 사업이 복병을 만났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체코 정부가 한국수력원자력을 최종 사업자로 선정하면서 계약 서명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프라하에 급파되고, 국내 원전 업계는 ‘K-원전’의 쾌거를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6일(현지시간),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이 한수원과 체코 발주처인 EDUⅡ(CEZ 자회사)의 계약 서명을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리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가처분을 신청한 주체는 탈락 기업인 프랑스전력공사(EDF)였다.

외교 낙관론이 부른 허점

한수원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자신하며 수주전에 임했고, 체코가 ‘최저가 낙찰’이 아닌 종합 평가를 택한 것도 긍정적 신호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체코 총리와의 회담을 시작으로 고위급 외교전을 이어가며 정상을 통한 ‘신뢰 구축’을 강조했다.

그러나 EDF의 법적 대응으로 드러난 현실은, 외교적 낙관론에 지나치게 기대어 승부의 리스크를 간과한 정부 전략의 허점을 보여준다. 지난해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서 예상치 못한 참패를 당한 데 이어, 또다시 돌발 변수 앞에서 대응이 늦어진 것이다. 반복되는 이 같은 ‘예상 못한 일격’은 윤석열 정부 외교 전략의 한계와 준비 부족을 방증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상 간 친분이나 국제 무대에서의 제스처가 실질 경쟁의 복잡성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이 재확인된 셈이다.

분쟁의 본질은 ‘절차’

EDF는 입찰 과정에서 부당하게 배제됐다고 주장하며 체코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본안 판결 이전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EDF의 주장을 받아들여 계약 체결을 유보하는 판단을 내렸다.

이번 결정의 핵심은 ‘절차의 정당성’이다. EDF의 주장에 대한 본안 판단은 남아 있지만, 법원은 사업의 중대성과 공익성을 고려해 계약 집행을 일시 정지시킨 것이다. 체코 반독점당국(UOHS)이 EDF의 문제 제기를 각하하면서 절차적 심사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됐다.

체코 현지에서 기자간담회 중인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사진=산업통상자원부 공동취재단)

체코 정부, 신속한 항고 준비

계약 차질을 우려한 체코 정부와 EDUⅡ는 가처분 결정에 즉각 항고할 방침이다. 다니엘 베네쉬 CEZ 사장은 “필요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며, 계약 진행을 위한 기각 요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체코는 법적 분쟁 장기화를 원치 않고 있다. 최고행정법원이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해 신속히 심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체코 및 한국 정부의 공통된 전망이다.

한수원 “수주는 유효”…장기전 대비도

한국 정부와 한수원은 계약 서명 지연이 단순한 절차상의 문제일 뿐, 수주 결정 자체는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계약 무산이 아닌 절차적 지연”이라며, “이번 기회에 한국 원전의 투명성과 기술력을 다시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체코 방문 기간 중에는 양국이 원자력, 반도체, AI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총 14건의 MOU를 체결했고, 체코 정부는 한수원과 CEZ 간의 계약을 ‘사전 승인’하는 조치도 취한 바 있다. 테멜린 원전 3·4호기 건설, 제3국 공동 진출 등 장기적 파트너십을 염두에 둔 전략도 병행되고 있다.

마지막 열쇠는 최고행정법원

체코 최고행정법원이 가처분을 기각할 경우, 계약은 곧바로 체결되며 수주전은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다. 반면 본안 소송까지 이어진다면 수개월의 지연이 불가피하고, 그 사이 정치적 변수와 체코 내 여론이 새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DF의 법적 대응이 일시적 방해로 끝날지, 흐름을 바꿀 결정적 변수가 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번 수주전이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외교, 법률, 전략이 총체적으로 맞물린 복합전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