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에너지건축물(ZEB)로 꼽히는 서울에너지드림센터 전경. (사진=서울에너지드림센터)

오는 6월에는 30가구 이상 공동주택부터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설계가 의무화된다. 연말엔 민간 건축물까지 확대된다. 설계도면만 보면 친환경적이지만, 건설 현장에서는 “실제로 적용하기엔 괴리감이 있다”고 지적한다. 공사비 부담, 공간 부족, 복잡한 인증까지 겹쳐 삼중고라는 우려가 나온다.

■ 정부, 6월부터 ZEB 의무화…“건물 에너지 소비 줄여, 온실가스 배출 감축”

ZEB 의무화는 건축물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기 위한 정부의 중장기 전략이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에너지공단 등은 “건물 부문은 국가 전체 에너지 소비의 약 20%를 차지하고, 서울시만 해도 온실가스 배출의 66.5%가 건물에서 나온다”며 ZEB를 지속가능한 도시환경의 핵심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올해 6월부터는 30가구 이상 공동주택, 12월부터는 연면적 1000㎡ 이상 민간건축물에도 ZEB 5등급 설계 기준이 의무 적용된다. ZEB 5등급은 에너지 자립률 20~40% 미만으로, 고성능 단열재·창호,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일부를 자체 생산해야 한다. 정부는 “기준을 충족하면 연간 약 22만원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약 6년 내 투자비 회수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 건설업계 “공사비 급등, 분양가 인상 불가피” 토로

건설사들은 공사비 부담이 가장 크다고 토로한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전용 84㎡ 기준 아파트 한 가구당 약 293만원, 실제로는 400만원 이상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고성능 단열재나 삼중창, 태양광 패널 등 설치가 필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층 아파트의 경우 옥상 면적이 부족해 외벽까지 태양광을 설치해야 하고 이로 인한 외관 훼손과 시공 복잡도는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25층 기준으로 공사비를 추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40층 이상이 일반적인데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중소, 중견 건설사는 자금력과 기술력이 부족해 타격이 더 크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대량 구매도 어렵고 고효율 설비 시공 인력도 부족하다”며 “결국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기술적 한계와 인증 실효성 논란도

고층, 대형 건물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설비 설치 공간이 제한적이라는 기술적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일부 현장에서는 옥상 공간 부족으로 외부 부지에 태양광 발전소를 따로 설치하거나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ZEB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이는 결국 시공업체의 추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는 대체부지와 REC 구매를 인정하는 방안을 포함해 유연하게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한 상태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지금까지 ZEB 5등급 본인증을 받은 주거용 민간건축물은 176건에 불과하며 대다수가 공공주택이다. 민간부문은 사실상 도입 초기 단계로 제도 안착을 위해 기술적 지원과 표준화가 요구되고 있다.

ZEB 인증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현행 제도는 설계·준공 단계 기준만 충족하면 인증이 이뤄진다. 하지만 실제 입주 후의 에너지 자립률이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ZEB 인증 1년 경과 건축물 중 38.5%는 에너지 자립률이 인증 당시보다 낮아졌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입주민의 생활패턴과 설비 노후화, 유지보수 상태 등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절감 효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ZEB 인증 후 1년이 지난 건물의 38.5%가 인증 당시보다 낮은 에너지 자립률을 기록했다.

■ 인증 절차와 정부 대책 온도차

ZEB 인증은 에너지효율등급 1++ 인증을 선행 조건으로 요구하며 별도의 ZEB 인증까지 따로 거쳐야 한다. 절차가 이중으로 되어 있어 행정 부담이 크다.

정부는 업계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대체 인정, REC 구매 허용, 용적률 및 건물 높이 완화,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검토 중이다. 국토부는 “업계와의 간담회와 실무협의를 통해 유연하게 제도를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 반응은 냉랭하다. 중소업체들은 “지원이 있어도 절차가 복잡하고, 현실에서 체감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술 개발 지원, 인증 기준 표준화, 행정 절차 간소화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NH투자증권 박형렬 연구원은 “ZEB 의무화는 장기적으로는 건설업의 경쟁력을 높이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분양가 상승과 미분양 위험성, 중소 건설사의 수익성 저하 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

■ 해외는 인센티브, 한국은 규제 선행

해외 사례는 어떨까. 독일 ‘패시브하우스’, 미국 ‘LEED’, 영국 ‘BREEAM’ 등 친환경 건축 인증 제도가 정착돼 있는데, 이들 국가는 보조금과 세제 혜택, 금융지원으로 초기비용을 완화하고기술 개발과 시장 표준화를 통해 자재와 설비 단가를 낮췄다.

삼성증권 김승현 연구원은 “친환경 건축물은 공공재 성격이 강한 만큼 정부가 초기투자 부담을 적극적으로 떠안고 시장 기반을 조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