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현장 스틸.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정우는 힘을 다해 리어카를 끌고 이병헌은 비행기에 올라탄 듯 새처럼 날개를 펼친다. 영화 ‘백두산’(제작 덱스터스튜디오,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의 한 장면이다. 의도치 않았을지라도 이 장면에 두 배우의 연기 방식이 집약적으로 투영돼 있다.

사진=영화 스틸.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이병헌은 영화 속에서 마음껏 날았다. 덕분에 이병헌이 빛나고 영화 ‘백두산’에 치명적 매력이 더해지고 관객에게는 대체불가 볼거리가 생겼다. 등산길에 만난 멋진 나무 한 그루가 산행의 만족도를 높이듯 이병헌은 관객의 눈길을 끄는 나무다.

배우 하정우는 연출과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감독의 눈, 제작자의 마음을 아는 배우답게 ‘숲’을 가꾸며 연기했다. 등산객의 폐를 상쾌하게 할 만큼 나무들이 풍성한지, 귀를 즐겁게 할 계곡은 있는지, 짧지 않은 산길에 입안을 적실 열매는 있는지 ‘큰 그림’을 챙기며 연기했다. 눈에 띄지 않을지 모르는데도, 관객이 그 마음 몰라줄지 모르는데도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백두산’ 리어카를 끌었다. 언제나 그래왔듯 자신보다 작품, 작품보다 관객을 우선하는 마음으로 ‘백두산’을 가꿨다.

사진=현장 스틸.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백두산’ 속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리준평은 자신의 길을 간다. 칩을 빼내는 타이밍을 정하는 것도, 함흥으로 우회 길을 택하는 것도, 협업을 하거나 독자노선을 걷는 것도 리준평이 정한다. 영화 마지막까지 리준평은 자신의 생각과 계획대로 처절하게 움직인다.

하정우가 맡은 조인창 대위는 정반대다. 자원이 아니라 차출로, 제대하는 날 북으로 간다. 전투병 아닌 폭발물해체 전담 기술공병인데 백두산 폭발을 막는 전위에 서게 된다. 하지만 조인창은 도망치지 않았다.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가 목숨을 거는 이유는 부인과 태중의 ‘꼬물이’에 있다. 히로뽕에 중독되듯 국가에 중독된 ‘국뽕’ 영화 속 전쟁영웅들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흉내 낼 수 없었던 영웅들과 달리, ‘나도 저 상황에 놓이면’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공감의 캐릭터’이다.

사진=영화 스틸.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인창의 캐릭터, 하정우의 연기방식은 영화 ‘백두산’의 정체성에 닿아 있다. 소위 말하는 ‘국뽕’ 빼고 260억원(순제작비, 총제작비 300억원) 대작영화가 가능하다는 걸, 신파 빼고 재난영화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 주는 ‘백두산’. 이제는 할리우드 대작들 즐기듯, 개연성과 눈물에 목매지 않고 스펙터클 영상과 유머 아래 재난대작을 ‘무비(movie)’로 즐길 수 있는 때가 무르익었음을 알렸다. 남과 북의 대립과 긴장이 아니라 협업과 하모니의 이야기, 유쾌한 액션대작으로 느끼게 하는 중심에 하정우가 있다.

하정우뿐만이 아니다. 이토록 큰 웃음 주는 이병헌을 본 적이 있는가. 이병헌과 하정우의 브로맨스는 어떤가. 이병헌은 명불허전 명연기로 관객의 숨결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이고’, 하정우는 백두산을 어깨에 지고 관객을 ‘찾아간다’.

사진=영화 스틸.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마동석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주먹 쓰지 않고 머리 쓰는 마동석(강봉래 교수 역), 의외성에 그치지 않고 그의 연기력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준다. 마동석이 이렇게 연기를 잘했던가, 새로운 발견처럼 느껴진다.

사진=현장 스틸.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민정수석임에도 자신의 자리를 걸 수 있고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인물을 표현한 전혜진(전유경 역)은 국민을 아끼는 진정한 위정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 비주얼과 내공, 양수겹장으로 카리스마 그 자체를 보여 주는 전혜진이다. 여기에 마동석-전혜진 두 사람의 하모니는 결코 위선적이지도 무겁지도 않게, 영화에 또 하나의 즐거움을 주는 커플 탄생을 맛보게 한다.

사진=영화 스틸.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리고 수지. 드라마에서의 어색한 첩보원 연기를 말끔히 잊게 하는 자연스러운 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여자는 약하고 엄마는 강하다는 걸 확인시키는 호연이다. 독수리 5형제의 ‘부엉이’로 불린 한수현, 조인창의 입에서 계속 불린 이름 태식이 역의 이상원, 신인답지 않은 차분함을 지닌 ‘민 중사’ 옥자연, 그리고 미처 언급 못 한 많은 배우들 덕에 영화 ‘백두산’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끝으로 또 하나의 주연배우, 백두산 폭발과 그 여파를 화면에 역동적으로 구현해 낸 제작사 덱스터스튜디오가 개봉 7일 동안 417만 관객을 이끈 주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