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가 11일 경북 경주시 화백컨벤션센터(HICO)를 방문해 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는 10월 31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세계 최대 규모 지역경제협력체인 APEC은 올해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내일(Bridge, Business, Beyond)’이라는 주제로 산업·통상·기후·안보가 교차하는 ‘산업 블록화’ 시대의 미래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1989년 호주 캔버라에서 12개국 각료회의로 출범한 APEC은 현재 21개 회원국이 참여하며, 전 세계 인구 40%, 교역량 50%를 아우른다. 한국은 2005년 부산 APEC 이후 20년 만에 두 번째 정상회의 개최국이 된다.

■ 다보스 넘본다…글로벌 CEO 유치전 ‘정점’

국내 경제계는 이번 경주 APEC을 ‘한국판 다보스 포럼’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 글로벌 빅테크 최고경영자들을 직접 접촉하며 ‘1인자 라인업’을 구축 중이다.

조현상 HS효성 부회장은 ABAC(기업인자문위원회) 의장 자격으로 베트남 하이퐁에서 르엉끄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만나 “경주 APEC CEO 서밋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민간 경제외교를 주도한다. 조 부회장은 21개국 기업인들과 통상·기후·디지털 협력 건의문을 작성해 APEC 정상들에게 직접 전달하며 실질적 정책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 한한령 해제 기대에 화장품·면세점 ‘반색’···글로벌 협력 무대

조현상 HS효성 부회장이 15일 베트남 하이퐁에서 르엉 끄엉(Luong Cuong)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나 APEC 공식 초청장을 전달했다. (사진=HS효성)

정상회의 개최 소식에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화장품·의류 등 소비재 업종이다.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한 가능성에 따른 한한령 해제 기대가 커지면서 화장품과 의류 등 소비재 업종이 반응했다. 주요 화장품주가 급등하고 면세점 업계도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AI·반도체 업계는 ‘퓨처테크 포럼’을 통해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엔비디아와의 HBM3E 공급 협력, 오픈AI와 AI 생태계 연계 논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방향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다. SK그룹은 APEC CEO 서밋과 SK AI 서밋을 연계하며 AI 메모리와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집중한다.

방산·조선·수소 산업도 이번 회담의 주요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글로벌 방산 CEO들과의 협력 논의를 진행 중이며, HD현대는 조선·해운 분야에서 글로벌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현대차는 수소 생태계와 미래 모빌리티를 핵심 어젠다로 삼아 참여한다. 코트라는 대규모 수출 상담회와 투자유치 IR, ‘붐업코리아 위크’ 및 ‘인베스트 코리아 서밋’ 동시 개최로 중소·중견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플랫폼을 구축한다.

■ APEC 경제효과 7.4조…미·중·일 3각 정세와 한반도 변수

딜로이트 컨설팅의 분석에 따르면, 2025 경주 APEC의 단기 경제효과는 3조3000억원, 중장기 효과까지 합치면 총 7조4000억원에 달한다. 2만여 명의 방문객이 경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되며, 숙박·관광·문화산업의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과거 APEC도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효과를 남겼다. 2005년 부산 APEC은 3조원의 경제효과를 냈고, 글로벌 CEO와 정부 간 네트워크 구축의 전환점이 됐다.

이번 APEC 최고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참석 여부다. 방위비·관세·에너지 협력에 관한 트럼프의 메시지는 한미 경제협력의 향방을 좌우할 전망이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 방한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며, 반도체 공급망, 한한령 해제, 인적 교류 확대가 주요 의제로 부상한다. 한일 간 과거사 갈등은 정상회담 전반에 걸쳐 풀어야 할 난제다.

전문가들은 “APEC에서 자유무역과 미래기술 논의를 이어가는 한편, 한국이 미중 갈등 속 중재자 역할을 통해 실질적 성과를 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역사적 도시 경지가 경주는 실리와 외교를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주목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