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전차 운용 기본과정'에 참가한 폴란드군 교육생이 전차포를 실사격하는 모습 (사진=육군)

전 세계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조선과 방산이 동반 호황을 맞고 있다. 함정·잠수함부터 자주포·전차·전투기까지 해외 수주가 이어지고, 실적과 수주잔고 모두 역대급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미국·유럽의 자국 산업 보호 정책, 해외 수주 경쟁, 금융지원 한계 그리고 국내 업체 간 출혈경쟁 등 성장의 발목을 잡을 변수도 만만치 않다.

2025년 2분기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LIG넥스원·KAI 등 방산 빅4의 합산 영업이익이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이들 4사의 수주잔고는 한화에어로 31.7조원, KAI 26.7조원, 현대로템 21.6조원, LIG넥스원 23.5조원 등 총 100조원을 넘어섰다. 단순 계산해도 3~4년 치 일감을 이미 확보한 셈이다.

■ 반스-톨레프슨 수정법·MASGA의 변동성 ‘불안’

미국 함정 시장은 약 500조원 규모로 추산되지만 1980년대 제정된 반스-톨레프슨 수정법이 해외 조선소의 미군 함정 건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최근 미 의회에서 한국·일본 등 동맹국 조선소에 문호를 개방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 여부는 정치·외교 변수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미국의 MASGA(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와 MRO(유지·보수·정비) 시장 개방 역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실제로 HD현대중공업이 미 해군 수송함 USNS 앨런 셰퍼드 정기 정비를 수주하고 한화오션이 윌리쉬라와 유콘 정기 정비를 수행한 사례가 있지만 이는 전면 개방이 아니라 제한적 예외 적용에 불과하다.

■ 새롭게 열린 기회의 창…글로벌 내셔널리즘에 ‘유한’

업계에서는 이러한 제약이 장기적으로 일본, 인도 등 경쟁국과의 수주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우려한다. 일본은 미 해군과의 장기간 협력 경험이 있고, 인도는 미국과 안보·군사 협력 관계가 탄탄해 초기 시장 점유율을 선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역내 무기 공급망 강화를 위해 대규모 공동조달에 나섰고 미국도 자국 중심 방산 생태계 강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금은 ‘가성비·납기’ 경쟁력 덕에 반사이익을 보고 있지만, 2030년 전후로 유럽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강하게 요구할 경우 협상 결렬 시 한·미 방산 협력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방산 수출이 급증하면서 수출입은행의 금융 한도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폴란드 K2 전차·K9 자주포 2차 계약 때도 금융 부족으로 협상이 지연될 뻔했다. 전문가들은 ▲방산수출진흥기금 설립 ▲동일인 여신한도 완화 ▲정부보증 확대 ▲범정부 지원 체계 구축을 제안한다.

■ 내부 출혈경쟁, ‘승자 없는 전쟁’···지속 가능한 협력 절실

국내에서는 장비 선정 과정의 불투명성이 업계 갈등을 키우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해군 잠수함 사업 입찰 과정에서 설계·원가 문제를 두고 법적 분쟁 중이다. 양사 갈등은 KDDX(차기 한국형 구축함) 사업 당시부터 이어져 왔다. 당시 전투체계·설계 주도권을 두고 대립하면서 사업 일정이 지연되고 비용이 증가한 바 있다.

KAI와 LIG넥스원은 항공전자전기 체계 사업에서 수익 배분 갈등이 소송으로 비화했다. 이 같은 분쟁은 공정성 논란과 신뢰 훼손을 초래하며 대외 경쟁력 강화보다 내부 소모전에 자원을 빼앗는 결과를 낳는다.

업계는 ▲정부의 제도 장벽 해소 및 외교·로비 강화 ▲금융기관의 수출금융 확대 및 위험 분산 ▲업계 간 공정 경쟁 체계 구축을 삼각축으로 제시한다. 결국 기술력·금융·제도 지원이 맞물릴 때만이 K-방산과 K-조선이 세계 시장에서 장기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환경에서는 단순 기술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 차원의 전략적 외교·로비 지원이 필수”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