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4일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 상무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한미 관세협상 진전과 산업 분야 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하였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시행과 미·중 전략경쟁 장기화로 한국 제조업의 핵심 수출 동력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자국 생산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중국은 배터리 핵심광물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자동차·철강·방산 등 한국 주력 산업은 양국 사이에서 압박받는 구조다.
2024년 기준 한국의 대미 수출은 전체의 18.7%, 대중 수출은 19.5%를 차지한다. 지난 5월 미국의 관세 장벽과 중국의 공급망 리스크가 겹치며 양 시장으로의 수출은 각각 0.5%, 2.7% 로 두 달 연속 감소했다. 그나마 ‘밀어내기’ 대미 수출이 늘어 감소 폭이 당초 우려보다 줄었다.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지정학 리스크에 대비한 교역 다변화 없이는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 관세 부과로 실적 흔들…현대차 “공급망 재편중”
미국 전기차 보조금을 올해부터 폐지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의 현실화로 현대차·기아의 전기차는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금까지는 미국에서 조립되고 배터리 요건 등을 충족한 전기차는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보조금 제도의 종료 시기가 당초 오는 2032년 말에서 올해 9월로 앞당겨지게 됐다. 중국은 리튬·니켈 등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강화하며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올해 2분기(4~6월) 관세 부과 영향권에 들어섰다. 매출은 역대 2분기 기준 최고 수준에 달했지만 영업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15.8% 급감했다.
현대차는 하반기 관세 영향 최소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승조 현대자동차 재경본부장 부사장은 24일 2분기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현재 부품 소싱 다변화를 위해 TFT를 가동 중이다"며 "지금 200여개 부품에 대해 업체에 견적을 받았고 여기서 수출하는 것이 나은지, 현지 소싱하는 것이 나은지 그런 부분을 검토하고 있고 다각도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철강, 中 저가공세 넘어 ‘고부가·친환경化’
철강업계는 자동차용 강판, 조선용 후판, 풍력 타워용 강재 등 고부가 제품을 앞세워 인도, 베트남, 사우디 등 신시장 진출에 나섰다. 인도와 중동 지역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반면 친환경 수요는 커지고 있어 한국 철강업계엔 중장기 수출 기지로 주목된다. 포스코는 베트남에 열연·냉연 생산 거점을 구축해 가전·자동차 수요 대응력을 높이고 있으며, 사우디 아람코와는 수소환원제철 분야 협력을 추진 중이다. 현대제철 역시 UAE·사우디향 구조용 철강 수출을 확대하고 있으며, 인도 진출도 검토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미·중 전략경쟁 격화로 세계 안보 불확실성이 커지자, 중동·동남아 국가들은 서방 무기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한국 방산이 그 대안으로 급부상 중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를 사우디에 수출하고, 현지 생산 공장 설립 MOU도 체결했다.
■ 中·러 리스크 속 ‘방산’ 퀀텀점프…제3지대로 진화
LIG넥스원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시장을 중심으로 지대공 미사일과 방공 레이다 수출을 늘리고 있다. 현대로템은 폴란드에 이어 K2 전차를 중동 및 동남아 시장에 공급하기 위한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무기 도입과 함께 자국 방산 산업 육성을 원하는 신흥국들과는 기술 이전·합작 생산 방식의 계약이 주를 이루고 있어 중장기 협력도 기대된다.
미국·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틈에서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 현지화, 친환경 전환, 전략시장 다변화라는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인도, 동남아, 중동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성장성과 협력 여지가 높은 전략지대다. IRA 개정과 디커플링을 발판으로 한국 산업은 새롭게 진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