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가 1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최종 확정됐다. (사진=연합뉴스)

■ 글로벌 RE100 달성한 삼성전자···국내에선 '30점' 이유는?

정부가 최근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상향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확정했다. 산업계는 목표 달성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은 술렁인다. 불황에 허덕이면서도 탄소 중립을 위한 예산은 줄줄 나가고 있는데 한국의 에너지·전력 시스템이 그 감축을 뒷받침할 준비가 돼 있는지는 미지수다.

기업이 불만을 표한다고 해서 감축 의지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이미 다수 기업들은 정부가 제시한 산업부문 감축 목표에 상응하는 내부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유럽·중국·베트남 등 해외 사업장에서 이미 전량 RE100을 달성했다. 그러나 국내 사업장만 놓고 보면 RE100 이행률은 31%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달성 시점도 2030년대 중반 이후로 잡고 있다. 재생에너지 자체가 부족하고 산업단지 전력망도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워 추가 계약 자체가 어려운 탓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RE100 주도 단체인 클라이밋그룹도 산업부에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 PPA(전력구매계약) 규제 완화 등을 요청한 상황이다.

■ 돈도 의지도 있는 기업···국가 인프라는 제자리 걸음

기업의 투자 의지는 분명하다. SK그룹은 수소·CCUS 등 저탄소 사업에 100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탄소중립 철강 전환에 이미 1조3684억원을 집행했고 향후 3조549억원을 추가 투자한다. 현대제철 역시 CDQ 신설, 당진 LNG 자가발전,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 등에 7조629억원을 들였고 앞으로 1조463억원을 더 투입할 계획이다.

문제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는 설비를 갖춰도 실제 감축은 국가 에너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업의 의지와 자본, 기술을 국가 인프라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13년 지연' 북당진∼신탕정 345㎸ 송전선로 준공 (사진=충남도)

■ 75% 감축 맡은 전력·전환 부문…재생에너지·전력망·수소 모두 부족

정부 NDC에서 가장 강도 높은 감축이 요구되는 부문은 ‘감축 전환(에너지 부문)’의 68.8~75.3% 감축이다. 탄소 배출을 감축하면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방법은 아직 구체화 되지 않았다. 재생에너지 100GW 돌파 시점을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보다도 5년 이나 앞당겨야 하지만 최근 2년 평균 태양광·풍력 연간 보급량은 3GW에 불과하다.

청정수소 공급망은 산업용 수소 수요 대비 공급능력이 크게 뒤쳐져 있다 CCUS(이산화탄소 포집·운송·저장)을 위한 국내 저장소·운송망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다. 경기·충청권 주요 산업단지의 전력망은 이미 포화 상태다. 기업은 더 많은 ‘무탄소 전력’이 필요하지만, 국가 전력망 증설 속도는 산업 수요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정부의 재정 역시 턱없는 수준이다. 재생에너지 확충만 해도 11차 전기본 기준 188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 투입은 매우 제한적이다.기획재정부에서 밝힌 ‘회복과 성장을 위한 2026년 예산안’에 따르면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가속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올해 6조원에서 내년에는 7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 188조원 vs 7.9조원···기반 없는 NDC가 만든 구조적 리스크

배출권 유상할당 확대 대응을 위한 감축설비 지원 예산 역시 합쳐봐야 3000억원 수준이다. 태양광, 풍력, 전력망,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등 녹색산업 육성을 위한 세부 추진과제는 아직 수립조차 되지 않았다.

한국 산업계는 분명 준비돼 있다. 감축 목표도, 투자도, 실행 로드맵도 이미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한국의 전력·수소·CCUS·재생에너지 인프라가 그 감축을 실제로 가능하게 해줄 준비가 돼 있는지는 미지수다. NDC의 본질적 리스크는 목표 수치가 아니라 목표만 앞서가고 기반은 뒤따르지 못하는 구조적 간극이다.

한껏 속도를 높인 감축 목표는 이대로 가다가는 탄소절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높은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실행할 수 있는 국가 에너지 인프라 구축 전략과 속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