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DDR(저전력 더블 데이터 레이트(Low-Power Double Data Rate)이 AI 서버 시대의 핵심 메모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LPDDR은 전력 소비를 줄이도록 설계된 SDRAM(동기식 동적 랜덤 액세스 메모리)의 한 유형으로 주로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 배터리 수명이 중요한 모바일 기기에 사용돼왔다. 하지만 데이터센터의 전력 예산(Power Budget)이 물리적 한계에 다다르며, 저전력과 고성능을 동시에 갖춘 LPDDR이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의 선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자사의 고성능 CPU ‘Grace Superchip’에 기존 DDR5가 아닌 LPDDR5X를 전격 채택했다. 이는 하이퍼스케일러 전반으로 LPDDR 도입을 촉진시키는 방아쇠가 됐으며, 시장 수급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메모리 제조사는 수익성이 높은 HBM 생산에 집중하면서 LPDDR 공급이 빠르게 줄었고, 이에 따라 구형 제품인 LPDDR4X의 가격까지 20% 이상 급등했다.
이 같은 공급 쇼크는 ▲HBM 생산 쏠림 ▲선단 공정 전환 지연 ▲구형 라인 축소라는 세 가지 원인에서 비롯됐다. 특히, 중국 OEM의 재고는 6~7주 수준으로 떨어졌고, 일부는 3주 미만으로 고갈 위기를 맞고 있다. 그 결과, DRAM 가격은 2026년까지 우상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LPDDR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AI 서버의 전력 소모는 랙당 30~100kW 수준으로 기존 인프라가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LPDDR5X는 DDR5 대비 전력 소모를 75% 절감하면서도, 대역폭은 36% 높고 레이턴시도 낮다. 이는 고효율과 고성능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배경이다.
이러한 변화는 메모리 밸류체인 전반의 투자 기회로 이어지고 있다. 칩메이커는 서버용 LPDDR 수요 증가로 가격(P)과 출하량(Q)이 동시에 상승하고 있으며, 기존 모바일 대비 4~5배 이상의 수익성이 기대된다. 동시에, 탈부착 가능한 모듈형 LPDDR(LPCAMM, SoCAAM)의 부상으로 고사양 PCB가 필수화되면서 관련 업체도 수혜를 입고 있다.
대표적인 수혜 기업은 티엘비다. 메모리용 고부가 PCB 제조사인 티엘비는 LPDDR5X 기반의 차세대 모듈 생산에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고다층 설계와 HDI 공법을 통해 경쟁사 진입을 차단하고 있으며, LPCAMM 모듈 수요 확대에 따른 신규 매출원 확보가 기대된다.
삼성전자 역시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AI 서버당 LPDDR 탑재량은 스마트폰 대비 30배 이상이며, 서버 고객은 모바일보다 높은 가격 수용력을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DRAM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탈환했고, 업계 최고 속도(10.7Gbps)의 LPDDR5X로 프리미엄 시장 독점도 노리고 있다.
AI 서버 시대, 전력 효율과 성능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LPDDR의 부상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메모리 산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 필자인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SBS Biz 방송에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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