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는 일은 언제나 묘한 긴장감을 준다. 2025년도 이제 달력의 마지막 장만을 남겨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불편한 변화로 가득하다. 계절의 변화가 인간의 뜻과 무관하게 흐르듯, 시장의 흐름 역시 공급자가 정한 질서에 머물지 않는다. 2025년 한 해 동안 우리가 목격한 경제의 풍경도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바둑판 위에서 인공지능이 오랜 상식을 넘어 새로운 수를 제시하듯, 전통적인 산업의 거인들이 데이터와 신기술로 무장한 후발 주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됐다. "원래 그렇게 해왔다"는 고정관념이 어쩌면 가장 위험한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 순간 조심스럽게 확인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변화의 현실 속에서 정작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불확실성'이라는 안개 속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운명, 그리고 그 선택이 부디 '확실한 정답'이기를 바라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때론 우리를 더 지치고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선택'이라는 저울 위에 놓인 대상들을 끊임없이 가늠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누가 봐도 명백한 이득이 보이는 길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겠지만, 대개의 선택은 저울추가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채 팽팽하게 수평을 유지한다. 두 선택지 모두 매력적인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거나, 둘 다 너무 평범해서 앞날을 가늠하기 어려운 애매한 순간도 있다.
이런 순간, 우리는 자칫 ‘완벽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세상에 처음부터 준비된 100점짜리 정답지는 어쩌면 환상일 지 모른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모으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미래의 모든 변수를 통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확률은 우리의 결정을 망설이게 만들지만, 결정이 어렵다 해서 그 결정이 반드시 틀린 것이라 단정할 순 없다. 진정한 지혜는 '이것이 옳은 선택일까'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린 선택을 천천히 '좋은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사후적 과정에 있지 않나 싶다.
씨앗을 심는 것이 선택이라면,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그 이후의 정성일 것이다. 어떤 씨앗을 심느냐도 중요하지만,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햇볕을 쬐게 하는 마음 씀씀이가 결국 열매의 크기를 결정한다. 만약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한 뒤에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설령 그때 다른 길을 택했더라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우리는 본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기 마련이고, 현재의 어려움을 '그때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이라는 가정 뒤로 숨기고 싶어 한다.
다가올 2026년은 우리에게 더 많은 '선택의 저울'을 내밀 것이다. 금리의 향방, 기술의 진보, 그리고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우산을 챙길지 말지 깊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때 우리가 견지해야 할 태도는 겸손하면서도 단단했으면 좋겠다. "나는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알 수 있는 만큼 차근차근 배워가겠다"라는 마음 말이다. 불확실성을 억지로 지워버리려 애쓰기보다, 만약 실패할 확률이 닥쳤을 때 어떻게 다시 일어설지를 고민하는 '확률적 사고'가 우리를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 줄지 모른다.
정치와 행정이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변화하듯, 우리 개인의 삶과 경영 현장에서도 스스로를 세상의 리듬에 맞춰 조금씩 바꾸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는 '진화'의 과정이다.
2026년이라는 미지의 시간을 앞두고, 지금 당신의 선택이 저울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해도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선택의 무게는 그 순간에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쏟을 헌신과 열정에 의해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것일지 모른다. 빗속을 달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느긋하게 걷던 그날의 풍경처럼, 우리에게 쏟아지는 불확실성의 소나기를 기꺼이 마주해 보는 건 어떨까. 당신의 노력은 결국 그 저울을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기울게 만들 가장 묵직한 추가 되어줄 것이다.
■ 김종선 대표는 경영학박사로, 현재 기업 경영 자문 및 밸류업 관련 전문컨설팅회사 '제이드케이파트너스'를 운영 중이다. 지난 30여년간 코스닥협회 등에서 상장회사관련 제도개선 및 상장회사 지원 업무를 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초기기업부터 상장회사까지 성장 과정 전반에 관한 전문적 자문을 활발히 수행한다. 아울러 벤처 및 상장회사 관련 제도개선에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 기업 애로사항 해소를 위한 부분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