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엑시트' 스틸컷)
3포, 5포, 7포 세대. 젊을수록 포기하는 게 많아진다고 한다. 확실히 1980~90년대와 다른 상황이다. 경제가 어려워서 그렇다고 하지만, 삶의 질이나 씀씀이를 보면 꼭 그렇다고 보기엔 어렵다. 근본적인 문제를 따지려 해방직후로 가는 사람도 있고, IMF 사태 때부터 따지는 이도 있으며, 근 10년 사이 한국 사회 변화를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요즘 세대가 말하는 ‘과거의 취업 잘 되던 세대’들도 과연 행복했을까. 어쩌면 모든 청춘들은 뭔가를 포기하면서 끊임없이 살았던 것 같다.
영화 ‘엑시트’는 재난 영화다. 도심 전체에 유독 가스가 살포되고, 일대 혼란이 일어난 가운데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건물 위로 올라가고, 탈출하는 영화다. 그런데 재난 이야기는 사실 별로 없다. 도심을 가득 채운 가스만 그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정부나 재난대책 기관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시야가 옮겨진다. ‘엑시트’는 사실 ‘재난 탈출 액션’이 아니라, 힘들게 살아가는 이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다.
대학교 산악 동아리 에이스 출신이지만 졸업 후 몇 년째 취업 실패로 백수로 살아가는 청년 용남(조정석 분)은 온 가족이 참석한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연희장 직원으로 취업한 동아리 후배 의주(윤아)를 만난다. 일단 여기서부터 청춘들의 ‘고난’을 보여준다.
친척들은 30대 어른에게 할 수 있는 뻔하고 영혼 없는 질문을 용남에게 던진다. 영화에서 다 보여주진 않았지만, “취업했니” “결혼은 준비 안하니” 등등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또 ‘영혼’ 없는 “다 잘 될거야”라는 위로를 던진다. 용남은 의주에게 “벤처회사에 취업했다”는 거짓말을 한다. 자격지심이다. 그렇다고 취업한 의주의 상황이 나은 것도 아니다. 부점장이지만, 아르바이트생이나 다를 바 없는 일과 격무에 시달려야 했고, 점장(강기영 분)에게 성추행에 가까운 대시를 받는다. 월급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의주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재난 탈출’이 아니라 ‘현실 탈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는 단순히 취업 때문이 아니다. 어찌 보면 어느새 우리 사회에 일정하게 제시되는 “그 나이 때는 이것을 해야지” 혹은 “이 정도는 해야지”가 얽매이게 한 것은 아닐까. 하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어’가 떠오른 이유다.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어’
책 제목만 보면 “야 인생 막 살아. 어차피 죽을 거, 인생 뭐 있냐” 수준으로 느껴진다. 어찌 보면 열심히 살지 말고, 오히려 열심히 사는 이들을 조롱하는 듯한 느낌도 준다. 때문에 이 책에 대한 비평에서도 “세상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의 세상 회피 이야기”로 비판하는 글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책 설명을 다시 보면 “노력이 배신하고 사사건건 내 인생에 지적질하는 현실, 열심히 ‘내’ 인생을 살기 위해 열심히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 사회에서 열심히 산다는 것은, 사회가 정해놓은 틀과 타인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춘다는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면 ‘섬’이 되고, 낙오자로 찍힌다. 용남이 취업을 못했지만, 그가 ‘실패한 인생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감(?)하게 말한다. 타인의 기준으로 말이다. 하완 작가는 여기에 반기를 든 것이다. 타인을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인생을 살기로 말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선차장(신은정 분)이 힘들게 맞벌이하면서 남편에게 “답이 없다 답이. 우리를 위해 열심히 사는 건데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네”라고 대사를 한다. 결국 어느 순간 다들 ‘남들과 다르게 살려고, 남들과 똑같이 살고’ 있는 이상한 사회를 서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