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도나 제공


노래 한 곡이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재생되기까지 보이지 않은 수고가 교차돼 쌓여야 한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 뿐 아니라 작곡가, 작사가, 뮤직비디오 감독, A&R, 편곡가, 세션, 앨범 디자이너까지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으로 최고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듣고 싶은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 뒤에서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편집자 주>

작곡가 도나(본명 이정민)는 걸그룹 연습생이란 이색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에서 설계자가 돼 대중에게 자신의 음악을 전하며 음악을 통해 하고자 했던 말을 조금 더 명확하게, 이어나가고 있다. 2015년 SBS 드라마 ‘용팔이’ OST로 데뷔해 달샤벳, 수란, 손동운, 예성, 그리고 윤지성까지 다양한 아티스트의 곡을 만들었다. 

“원래 저는 걸그룹 연습생이었어요. 대학을 다니면서 연습생으로 4~5년으로 지냈죠. 데뷔가 밀리면서 나이가 차고, 결국 계약해지를 하게 됐죠. 이후로 여러 회사를 찾기도 하고 연기 오디션을 보러다니기도 하다 작곡을 해보는게 어떠냐는 권유를 받았죠. 음악으로 빨리 인정받을 수 있는 또 다른 길이라면서요. 그러면서 스물 여섯에 혼자 시작하게 됐어요. 제 인생을 걸고 연습생 생활에 매진했는데 다른 길로 돌아서 가는 느낌을 받아서 당시엔 너무 힘들었죠”

연습생 생활을 마치며 막다른 길이라 생각해 핸들을 꺾었지만, 도나는 지금 작곡가로서 인정받고 있는 지금을 더욱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지난해 드라마 OCN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 OST ‘후 리얼리 노우스’(Who Really Knows)를 만들어 직접 가창해 발표하기도 했다. 

“걸그룹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전 그 때 아티스트적인 면보다 걸그룹을 원했던 것 같아요. 그저 메이저 안에 있고 싶었던거였죠. 나만의 색을 스스로 알고 음악적인 포부가 뚜렷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혼자 개척해 나갔을 것 같아요.  작곡가로 활동하며 앨범을 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지난해 ‘모두의 거짓말’ OST를 불렀어요. 올해에도 제 이름의 앨범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사진=도나 제공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버텼던 연습생 생활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받은 시간들이었다. 연습생 때 듣지 못했던 인정과 칭찬, 격려를 작곡가가 된 후에는 들을 수 있었다.  

“연습생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노래를 들을 때 ‘이 멜로디에선 안무를 이렇게 하면 좋겠다’, ‘여기에선 뮤직비디오를 이렇게 찍으면 더 괜찮겠다’, ‘이 파트에선 카메라가 원샷으로 오겠구나’란 생각을 하곤 했었거든요. 노래를 시각화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죠. 연습생 때의 경험이 고객의 니즈를 알고 있는 메이커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생각해요.”

스물 여섯 살의 도나는 작곡가로 전향한 후, 혼자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노래와 춤엔 능했지만 작곡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작곡을 배우러 학원을 다니거나 레슨을 받은 적은 없어요. 프로그램 작동 방법도 몰랐죠. 그런데 따로 배우진 않았지만 도움을 주신 작곡가 분이 계세요. 오디션 보면 작곡가 분들이 심사를 해주셨거든요. 지금은 작고하신 주태영 선생님께서 제가 혼자 하다 막힐 때 찾아가면 모르는 걸 알려주셨어요”

도나는 ‘용팔이’ OST에서 용준형-허가윤의 ‘악몽’, 케이윌의 ‘내게 와줘서’, 정인의 ‘사실은 내가’, 백아연의 ‘이렇게 우리’ 총 네 곡에 참여했다. 당시 작곡가로서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때를 상기시켰다. 

“‘용팔이’ OST 네 곡을 서기준 작곡가 오빠와 함께 만들었어요. 그 때 6시에 음원 발표를 같이 작업실에서 기다렸던 기억이 나네요”

작곡가 도나는 가장 의미있는 작업은 지난해 워너원 출신 윤지성의 첫 솔로 타이틀곡 ‘인 더 레인’(In the rain)이라고 말했다.  

“워너원의 윤지성 솔로 앨범 타이틀곡을 하게 된 것이 가장 인상 깊네요.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가수를 하게 된 건 처음이거든요. 슈퍼주니어 곡을 하긴 했지만 일본 곡이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닌, 일본 사람들과 진행을 했었어요. 윤지성 곡은 저보다 훨씬 잘하시는 작곡가들과 경쟁해서 당당히 뽑힌거라 굉장히 기뻤어요”

그는 현재 군 복무 중인 윤지성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윤지성과는 작업하며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어요. 착하고 솔직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고요. 자신이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서 항상 노력하는 친구더라고요”

도나는 여성듀오 다비치가 언젠간 꼭 작업해보고 싶은 가수라고 고백했다. 연습생 때 다비치의 곡을 연습하며 점점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이유였다. 작곡가 도나는 이를 ‘로망’이라고 표현했다.  

“다비치와 꼭 작업해보고 싶어요. 제가 과거에 ‘뮤직뱅크’에 갔을 때 다비치 분들에게 싸인을 받았는데 그 때 ‘멋진 작곡가가 돼 꼭 만나자’고 써주셨어요”

 


작곡가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만으로 인정을 받을 때였다. 

“제가 만든 노래가 좋은 반응을 얻고 인정받게 되는 순간이 뿌듯한 것 같아요. 또 녹음하는 가수가 노래 좋다고 피드백을 줄 때도 기쁘고요. 의무적으로 부르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제 노래를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하는 가수를 만나고 싶어요. 그 한마디 들을 때 주인을 만났단 생각이 들면서 신나요”

도나는 작곡가가 되고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꼭 갖췄으면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음악은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감각적인 센스가 필요한 것 같아요. 센스의 있고 없고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작은 소재로도 콘셉트화 해서 스토리를 만들고 노래를 만드는 것, 어떤 방향으로 대중들의 이야기를 할지 감각적으로 발전시키는 것들은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음악을 만들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이건 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수단이지 목적은 아닌 것 같아요. 음악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처럼요. 내가 음악을 만들어서 어떤 사람을 위로할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명확하게 가져가는 것도 중요해요”

최근에는 학생 때부터 작곡을 비롯한 프로듀싱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만큼 자신의 나이를 늦었다고 생각해 고민하는 작곡가 지망생도 비례한다. 도나에게도 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하고 싶은데 늦은걸까요?’란 질문을 해오고 있다. 도나의 생각을 들어봤다. 

“언제 무엇을 시작하느냐는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열 다섯 살에 시작하든, 마흔 살에 시작하든, 들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음악을 하는건 똑같잖아요. 열 다섯 살에 시작한 친구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있을 것이고, 마흔에 시작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통찰력과 노련함이 있을 것이고요. 결이 다르고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도 각자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또 그는 작곡가 지망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빠른 시간 안에 결과를 도출해내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절박하게 음악을 하면 많이 힘든 것 같아요. 제가 연습생 때 절박하게 음악을 하며 느낀 점입니다. 빨리 음악을 하고, 라인을 타서 자리 잡고 싶어서 ‘1~2년 안에 무언가를 보여줄거야’라고 기간을 잡고 결과를 내려고 하면 스트레스만 받아요. 특히 요즘은 케이팝이 글로벌해져서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과 경쟁해야 해요. 유튜브나 소셜미디어로 음악을 시작할 수 있는 진입장벽은 낮아졌지만, 성공의 길은 더 좁아졌어요. 1년, 2년 가지고 절대 바뀌지 않아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생각 보다는 어떻게 하면 음악을 오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셨으면 해요”

사진=도나 제공


작곡가 도나는 향후 자신이 써온 가사를 바탕으로 에세이를 출간하는 것과 드라마, 영화 음악을 하고 싶다는 목표를 밝혔다. 

“전 작사에도 욕심이 많아요. 제가 지금까지 써온 가사를 바탕으로 에세이를 써보고 싶어요. 왜 이 노래엔 이 가사를 썼고, 이 가사를 쓸 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같은것들요. 저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썼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어요. 전 제가 쓰고싶은 가사만 써요. 아마추어 같은 마인드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제가 허용이 되야 가사가 잘 써지더라고요. 이게 저에겐 가치관이고 신념이 된 것 같아요. 평소에도 하고 싶은 말을 조금 참고 가사로 풀어내는 편입니다. 그리고 OST를 작업을 하다보니, 음악감독에 대한 꿈도 꾸게 됐어요. 음악의 의도, 음악 감독의 취향, 장면과 음악의 연결 등을 고민하면서 저도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도나는 인터뷰를 마치며 음악을 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털어놨다. 그만의 확고한 차별화가, 현재 많은 엔터테인먼트에서 러브콜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기발한 아이디어와 흥미로운 가사, 감각적인 멜로디, 이 세가지를 항상 유념하며 노래를 만들어요. 그러다보니 의미없이 넣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저 소비되는 노래를 잘 만들지 못해요. 어떤 분이 제 가사와 멜로디는 너무 힘이 있다면서 의미 없이 ‘아이 러브 유’ 여덟 번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해주신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도나 작가님처럼 진중한 가사를 쓰시는 분도 필요하다고 웃으면서 말씀하던 것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