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타워 (사진=두산)

■ 네 번의 세대교체···형제기업의 지분 분산

국내 최장수 기업가문인 두산그룹은 1896년 박승직 상점으로 시작해 5세 경영기에 접어들고 있다. ‘형제의 기업’이라는 독특한 승계 문화를 특징으로 해온 두산은 창업 이후 네 차례의 세대교체를 거치며 집단지도체제에 가까운 지배구조를 형성해왔다.

그 과정에서 총수 일가 간 지분이 폭넓게 분산되었고, 이는 외부 충격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장점도 있었지만, 내부 균열이 발생할 경우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구조적 리스크도 함께 안고 있다. 게다가 사모펀드 등이 합세할 경우 경영권마저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있다.

2000년대 초 박용오 전 회장이 형제 간 갈등 끝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사건은 ‘두산판 왕자의 난’으로 회자된다. 당시 박 전 회장과 그의 두 아들이 그룹 지분을 모두 정리하면서 집단경영 체제가 공고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명확한 권력 중심 없이 유지되는 체제의 취약성도 드러났다.

현재 그룹은 박정원 회장이 이끌고 있다. 두산중공업 구조조정, 두산밥캣 상장, 두산로보틱스 IPO 등 굵직한 변화를 진두지휘하며 신사업 중심 체제로 전환했다. 박 회장은 1962년생으로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을 확정지으며 2027년까지 두산을 이끌게 됐다.

■ 박정원 회장의 리더십···그러나 절대 권력은 없다

리더십과 별개로, 박 회장의 지배력은 견고하지 않다. ㈜두산의 최대주주이긴 하지만 그의 지분은 7.72%에 불과하다. 나머지 지분은 형제 및 사촌 등 오너일가 26명이 쪼개어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박지원 부회장 5.52%, 박용성·박용현 각 3%대, 박석원·박태원 등 주요 인물들도 각각 2~3% 안팎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는 단일 오너십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분산된 지배력은 외부 세력에게도 ‘틈’으로 작용한다. 특히 사모펀드(PEF)의 적대적 M&A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이다.

당시 MBK파트너스는 조현범 회장과 그의 형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는 틈을 노려, 공개매수를 시도하며 경영권에 개입했다. 비록 결과적으로 지분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그 사건은 대형 PEF도 대기업의 경영권 분쟁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사모펀드가 대기업 총수 일가 간 분쟁을 ‘기회’로 인식한다는 점이 명확해진 것이다.

두산 역시 유사한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 누구도 과반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너일가 간 연대가 약해지기 시작하면 MBK와 같은 사모펀드가 행동주의 전략을 구사하며 경영권을 흔들 수 있다. 최근 상법 개정으로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 외부주주 권한이 확대된 점도 이런 개입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독일 건설기계 전시회 ’바우마 2025’를 찾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왼쪽 두 번째) (사진=두산그룹)

■ 시작된 5세 경영 수업···‘핏줄’ 이상의 시스템 필요

두산 5세의 경영 수업은 이미 시작됐다. 박정원 회장의 장남 박상수 수석은 두산밥캣에서, 박지원 부회장의 장남 박상우 수석은 ㈜두산에서 각각 근무 중이다. 글로벌 MBA 수료 등 체계적인 교육을 거쳐 점진적인 승계를 준비하고 있지만, 승계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건 이들의 역량보다 지배구조다.

누구도 10% 이상의 확고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향후 오너일가 간 의견 충돌이 발생할 경우 경영권은 사실상 ‘공중에 붕 뜬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사모펀드 등 외부 세력에게 이상적인 개입 조건이 된다.

두산의 경영권 구조는 긴 시간 ‘형제애’와 ‘신뢰’를 기반으로 유지돼 왔다. 하지만 산업 지형이 빠르게 변하고, 외부 공격이 현실화되는 지금, 단순한 연대만으로는 경영권 방어에 한계가 있다. 5세 승계가 시작되는 지금이야말로, 분산된 권한과 불확실한 의사결정 구조를 재정비하고, 장기적 안정성을 고려한 시스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