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의 독주가 이어진다. 상반기에 이어 3분기에도 증권사 가운데 타사들을 완전히 압도하는 실적을 내놨다. 그 배경엔 발행어음을 적극 활용한 운용 전략이 있다. 증권사들 역시 한투증권의 성과에 상당히 놀라는 눈치다. 그럼에도 각 사별 전략적 차이와 리스크 부담을 이유로 한투 전략을 선뜻 따라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뭘까.
■ 독주하는 한투증권, 비결은 발행어음 기반 운용전략
한투증권은 1~3분기 누적 영업이익 1조983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71.2% 급증했다. '2조 클럽' 입성도 목전에 뒀다. 영업이익 2위인 키움증권(1조1426억원), 3위인 미래에셋증권(1조694억원)에 비해서도 약 2배 가깝게 높다.
한투증권이 남다른 실적을 달성한 배경에는 높은 비중의 운용 수익이 꼽힌다. 3분기 순영업수익 8197억원 가운데 브로커리지(BK), BK 이자, 자산관리(WM) 부문은 전년 대비 20~30% 증가하며 고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익 비중은 세 부문 합산 35.1% 수준이다. 이에 반해 운용 부문은 단독으로 41.1% 비중을 차지하며 전년 대비 12.4% 늘었다.
이러한 운용 성과는 한투증권 특유의 발행어음 활용을 통한 강력한 레버리지 투자에 있다. 3분기 기준 한투증권의 발행어음 잔고는 18조7000억원이다. 자기자본 12조219억원 대비 155.6%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엔 170.8%까지 치솟으며 200% 한도를 거의 채우기도 했다. 비슷한 규모의 자기자본을 갖춘 미래에셋증권의 발행어음 잔고 비율이 64.3%란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증권업계 전문가들 견해도 이를 뒷받침한다. 박혜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한투증권의 레버리지 활용 능력은 타사 대비 압도적"이라며 "부동산 등 장기 투자가 아닌 즉시 손익으로 반영될 수 있는 방향으로 투자한 결과 경쟁사 대비 월등한 실적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강승건 KB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시장 강세에 대부분 증권사가 상당한 성과를 거뒀으나, 증시 민감도가 높은 한투증권의 트레이딩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며 "증시가 우상향하는 구간에선 한투증권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유지될 것 같다"고 했다.
이는 반짝 실적일까. 앞으로도 한투증권 리드가 이어질 것이란 견해도 있다. 강대권 라이프자산운용 대표는 "수수료 기반인 타사와 달리 한투증권은 발행어음으로 이자 차익을 거두는 은행과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업계 선두권의 이익 체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다만 경쟁사들과의 격차는 좁혀들 것이란 전망이 다소 높았다. 박혜진 애널리스트는 "3분기 실적엔 증권 펀드 청산 분배금과 해외 종목 상장 차익 등 일회성 평가이익이 꽤 많았다"며 "업황에 따라 평가이익이 달라지는 만큼 이번 분기 수준의 막대한 격차가 계속 유지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 한국투자증권 측은 "타사 애널리스트 리포트서 언급된 증권 펀드 청산 분배금 및 해외 펀드 상장차익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라면서 "이는 지주 내 다른 계열사 펀드에 유동성 공급자(LP)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운용, 벤처캐피탈(VC)의 해외펀드 이익 일부가 섞인 경우를 반영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자료=한국투자증권)
■ 회사별 전략 차이·신용 리스크 부담
한투증권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타 증권사들은 발행어음 규모를 늘리는데 조심스럽다. 이는 증권사별 핵심 전략의 차이와 공격적 투자 시 발생하는 리스크 확대 우려 때문이다.
한투증권과 비슷한 체급의 미래에셋증권은 수익극대화를 위한 리스크테이킹보단 헤지를 위한 리스크관리를 우선시한다. 이는 증시가 약세로 돌아서거나 디폴트 등 위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를 위해 수익 다각화에 집중하고 있다. 연금 자산과 해외주식 잔고 모두 50조원을 돌파하는 등 WM, BK에서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해외법인의 경우 선진지역(미국, 유럽)과 성장성 높은 이머징 지역(인도, 브라질)에서 특정 지역 쏠림 없이 3분기 누적 약 3000억원의 세전이익을 거뒀다.
이러한 리스크관리 기조에 맞춰 위험 투자처를 조절하고 있다보니 발행어음 잔고 증가 속도가 더딘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현재 심사 중인 IMA 인가가 승인된 이후에도 이 같은 전략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대형사인 삼성증권 역시 발행어음 확대에 신중한 입장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자사의 핵심 경쟁력은 초고액자산가 중심의 WM"이라며 "발행어음 인가를 받아 모험자본을 운용하더라도 안정적인 리스크관리 체계를 통해 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와관련, 증권가에선 발행어음 잔고를 높게 유지할 경우 신용평가가 낮아질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외국 신용평가사 무디스에서 한투증권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췄다"며 "한투증권처럼 발행어음 한도를 높게 채우는 방식이 무조건 정답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반면 한국투자증권은 자사 실적 배경에 대해 외부의 해석과 다른 입장을 내놓는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운용 부문의 수익 비중 확대에 대해 "회사가 대형화되면서 글로벌 IB처럼 운용 자산 규모가 자연스럽게 늘어난 결과"라며 "레버리지 등 위험 투자보다 채권·통화·상품(FICC) 중심인 만큼, 공격적인 리스크테이킹 결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증시 민감도가 높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꾸준히 고실적을 유지하는 등 실적 변동성이 낮은 편"이라면서 "높은 자기자본이익률(ROE) 기반으로 전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춰 성장한 점이 이번 호조의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조정에 대해선 "수익 창출이나 영업 능력보다 재무구조 중심의 평가"라며 "비산업·비은행 계열사란 점에서 조정 판단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