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가 출시한 ‘딥 말차 하이볼’. 제주 유기농 말차를 활용한 차(茶) 주류로 알코올 도수는 3.5%다. (사진=내미림 기자)

말차(抹茶)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말차 라떼, 말차 케이크 같은 메뉴가 인기를 끌며 초록빛의 이미지는 주로 디저트 카테고리에 머물렀었죠. 그런데 올해 겨울부터 국내 카페와 베이커리 업계를 중심으로 ‘말차 본연의 쌉쌀함’을 살린 신제품들이 빠르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편의점과 주류 시장에서는 아예 말차 풍미를 앞세운 ‘말차 주류’까지 등장했습니다.

디저트→주류까지 확장된 이 흐름은 과한 단맛에서 벗어나 원물 풍미를 찾는 취향 변화가 본격화됐다는 신호인데요. 한때 달콤함에 묻혀 있던 말차가 다시 차(茶) 본연의 성격을 전면에 내세우며 ‘초록의 귀환’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CU의 ‘딥 말차 하이볼’이 있습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지난 8일 자스민·말차 등을 활용한 차(茶) 주류 3종을 선보였는데요.

이중 ‘딥 말차 라거’와 ‘딥 말차 하이볼’ 2종은 말차 플레이버가 글로벌 메가 트렌드로 급부상함에 따라 내놓은 제품이었습니다. ‘딥 말차 라거’는 양조 단계부터 제주 유기농 말차를 넣고 발효해 말차 베이스를 5% 이상 함유했고, ‘딥 말차 하이볼’은 말차의 진한 풍미와 하이볼의 산미가 어우러진 차(茶) 주류였죠. 주류에서 말차라니, 조금 낯설고 조금 궁금해 ‘딥 말차 하이볼’을 선택해 봤습니다.

■ CU ‘딥 말차 하이볼’, 말차 ‘고운 입자’가 하이볼 감싸는 첫 맛

잔에 따른 CU ‘딥 말차 하이볼’. 말차 가루가 풀린 듯한 연한 황록색과 탄산 기포가 어우러지며 차(茶) 원료를 활용한 주류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사진=내미림 기자)

CU의 ‘딥 말차 하이볼’은 캔을 열어 잔에 따르니 말차 가루가 풀린 듯한 연한 황록색이 퍼졌습니다. 말차라테처럼 탁하게 진하지도 위스키처럼 투명하지도 않은 색입니다. 잔 바닥에 미세한 입자가 살짝 남는 점에서 실제 말차가 들어갔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첫 향에서는 우유 없이 풀어낸 말차 특유의 마른 풀향과 고소한 분말 향이 먼저 올라옵니다. 뒤이어 위스키 향이 강하게 치고 나오기보다는 말차 뒤에 조용히 받쳐줍니다.

마셔보니 단맛과 산뜻함이 먼저 나오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말차의 쌉쌀함이 위스키의 알코올감을 먼저 눌러주는 구조였죠. 말차 가루가 혀에 직접 닿으면서 입안을 한번 정리하고 그 다음에 하이볼 특유의 청량함이 이어집니다. 탄산은 과하지 않아 목을 자극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가볍게 정돈된 느낌을 줍니다. “알코올이 높은 술이 부담스럽다”는 사람도 쉽게 접할 수 있을 맛입니다.

치킨이나 튀김과 함께 마셔보니 말차의 쌉쌀함이 기름 맛을 끊어주듯 정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말차라테와 달리 단맛이 없어 튀김·치킨류와도 충돌하지 않습니다. 고소함은 남기고 느끼함은 털어내는 쪽에 가까운 조합이었죠. 하이볼이라기보다 녹차 맥주와 사탕 사이 어딘가의 맛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습니다.

말차를 활용한 주류는 시음한 CU를 비롯해 GS25와 세븐일레븐에서도 모두 만날 수 있는데요. 다만 3사가 말차 활용 주류를 다루는 방식이 차이가 납니다. 말차 하이볼을 가장 먼저 선보인 세븐일레븐은 초기에는 말차 하이볼을 중심으로 이색 주류 실험에 나섰고 말차 스낵·디저트 등과 함께 콘셉트형 상품으로 묶어 소개해 왔습니다. 말차 주류를 하나의 고정 라인업으로 확장하기보다는 화제성 있는 신상품을 통해 반응을 확인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CU는 말차 주류를 보다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편입니다. 말차 하이볼에 이어 말차 라거, 자스민 에일 등 차(茶) 원료를 활용한 주류를 동시에 출시하며 관련 라인업을 넓혔죠. 말차 아이스크림·디저트와의 병진열을 통해 차 주류를 하나의 취향 카테고리로 보여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GS25 역시 말차 풍미를 활용한 주류를 선보인 사례가 있습니다. 말차 맥주, 말차 사이다 하이볼 등 개별 상품 단위의 출시 이력은 확인됩니다. 그러나 이를 ‘말차 주류’로 묶어 전면에 내세우기보단 기존 하이볼·RTD 주류 안에서 맛 변주의 하나로 운영하는 방식에 가깝더군요. 말차를 주력 콘셉트로 확장하기보다 상품 단위로 반응을 살피는 흐름이었죠.

말차하이볼은 강한 한방을 노린 술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부담 없이 한캔 더 집게 만드는 술에 가깝습니다. 맛이 오래 남기보다는 “이거 신기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쪽입니다. 말차하이볼은 술이 주인공이 되지 않습니다. 음식의 맛을 방해하지도 존재를 과시하지도 않습니다. 편의점 주류 코너가 ‘세게 마시는 공간’에서 ‘가볍게 즐기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조용히 보여주는 술이 바로 이 한 캔이었습니다. 초록빛 한 모금은 단순히 예쁜 색이 아니라 편의점 술맛의 결을 바꾸는 신호탄처럼 느껴졌습니다. 세게 마시지 않아도 충분히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말차하이볼이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습니다.